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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미 Oct 10. 2017

PostScript(6)

P.S 오래된 연인 이야기

오늘은 상사에게 크게 혼쭐이 났다, 서러움에 북받쳐 펑펑 울고도 쏟아낼 눈물이 남은 건지 빈 사무실에서 혼자 몇 분을 더 꺽꺽대고 울었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내 연락을 마냥 기다리고 있을 남자친구의 부재중 통화에 전화를 걸었다. "일 마쳤어?" 수화기 너머로 익숙한 음성이 흘러나오자 또 목이 메었다, "응.."

회사를 나와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저만치서 남자친구의 실루엣이 보였다.
절대 울지 말아야지, 절대 울지 말아야지.. 남자친구는 내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호주머니 속에 있던 내 손을 턱 잡고는
"바보야" 한다.

절대 울지 않으리라 다짐했는데 생각지 못한 남자친구의 온기에 바보같이 눈물이 또 맺히고 말았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요즘엔 우는 모습을 자주 보이게 되네..
그런 내 모습을 본 남자친구가 다시 한 마디 했다, "바보.."



이 주 전쯤 우리는 처음으로 크게 스파크가 일었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심하게 감정이 상할 일도 아니었는데 서로가 서로에게 서운한 것이 쌓여 있었고 우린, 그것을 한 번쯤은 풀 기회가 필요했을 지도 모르겠다.


보통의 연애가 그렇듯, 내 남자친구는 연애를 시작했던 지점과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더 이상 나를 보고 그저 헤벌쭉 웃지만은 않는 남자친구에게 서운함을 표현하기 시작했고 그는 나의 서운함을 계속 받아주기가 힘들었다,

한 달 반만이었다.


그 후, 우린 화해했지만, 서로 놓아버린 게 분명 생겼으리라.. 또 다시 싸움을 만들고 싶지는 않으니까. 이렇게 풀지 못해 깊었던 골을, 한 순간에 스르륵 모두 녹여버린 말이었다,

"바보야.."


세 음절 안에 수많은 감정과 위로가 담겨있다는 게 진심으로 다가왔다, 말로 눈물을 닦아주는 오묘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변한 거구나, 울지 말라며 호들갑 떨지 않아도, 내 편을 든다며 상사를 같이 욕해주지 않더라도, 조용히 꼬옥 잡아주는 손만으로 위로의 온기를 전해 받고 예쁘지 않은 단어라도 속에 담긴 진심을 그대로 이어받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구나, 어느 덧 벌써.


이 순간, 그가 변해서 다행이라고, 오히려 변해줘서 고맙다고, 변할 수 있는 사이가 되어 오롯이 듬직하다고 느꼈다. "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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