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적 원인, 근원적 원인
허리디스크는 본격적인 치료에 앞서 원인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허리디스크 치료 과정에서 원인을 배제하지 못한다면 치료의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에는 근본적인 원인과 근원적인 원인이 혼재해 있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보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볼 때 어느 사건의 실체적 원인으로서 그 자리에 오래동안 존재해 있던 것이고, 근원적인 원인은 단기적인 시각에서 볼 때 어느 사건의 실마리를 보다 직접적으로 제공했다는 정도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허리디스크는 심각한 외상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근본적인 원인과 근원적인이 둘 다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저의 경우를 봐볼까요.
근본적원인
1) 가족력: 모계혈통에 디스크 환자가 많습니다. 어머니는 목디스크로 예전에 휴직을 한 적이 있고, 최근 허리디스크쪽에 염좌가 생겼습니다. 큰이모는 작년 여름 목디스크, 허리디스크 모두 확진받았다고 합니다. 작은이모는 최근 허리디스크가 생겼다고 합니다. 외삼촌도 목디스크를 겪었습니다. 외사촌동생들 5명 중 둘째가 최근 허리가 아프다고 합니다. 외가쪽 장손자로서 책임감이 느껴집니다.
신기한 것은 부계혈통에는 디스크환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 부계혈통의 튼튼한 허리 우성유전자를 받지 못한것입니다. 따라서 허리디스크는 일종의 숙명이었던 것입니다. 가족 내에서도 거의 대부분이 최근에 증상을 겪어 자체적인 경각심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유전학적으로 한 쪽의 허리가 튼튼하다고 해서 그 유전자를 받는다는 보장은 없으니 허리가 안 좋은 쪽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신체구조: 팔다리가 얇은 것에 비해 상체와 머리가 큰, 대표적인 태양인입니다. 태양인은 오래 걷거나 앉질 못하고 눕는걸 좋아한다던데 다 허리가 좋지 않음을 암시하는 바입니다. 머리통이 큰건 부계혈통인데 운이 나쁘게 디스크에 안 좋은 특성만 골라서 선택적으로 물려받았습니다.
3) 업무적 특성: 하루 8시간 의자에 앉아 컴퓨터를 보며 일합니다. 전형적인 사무직입니다. 다른점이 있다면 혼자 하는 일이 최근에 많았다는 것입니다. 한 자리에서 몸을 움직일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차라리 동료와 일해야 되기 때문에 자주 움직여 줬더라면 허리디스크에 부담이 가지 않았었을텐데 아쉽습니다.
4) 여가활동: 일을 하고 돌아오면 허리디스크를 위해서라도 편히, 좋은 자세로 쉬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작년부터 가벼운일본어 학습지를 통해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당연히 의자에 앉아 허리를 구부리고 필기해가며 공부를 했습니다.
일본어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가만히 앉아 글을 썼습니다. 특히 주말 아침에 의자에 앉아 여유롭게 글 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허리가 쉴 시간은 없었습니다.
5) 운동: 물론 매일 운동도 했습니다. 달리기를 하거나 근력운동을 했습니다. 달리기는 그나마 허리에 좋은 운동이었지만 날이 추워지며 근력운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근력운동으로 허리디스크를 보호할 수도 있었습니다. 신체적으로 디스크에 불리하다면 저/중강도의 코어운동과 하체의 힘을 길렀어야 합니다. 하지만 어느 상남자들처럼 하체운동은 스킵하고 상체운동에 집중했습니다. 운동루틴은 무조건 가장 쉽고 그 효과도 좋은 가슴운동부터 했습니다. 이미 머리의 무게가 허리에 부담을 주는데 거기에 가슴근력을 얹어버린 셈입니다. 밀리터리 프레스를 통한 어깨운동은 허리에 바로 그 스트레스가 전달됩니다.
6) 따릉이: 날씨가 좋은 4월부터 10월까지는 따릉이를 타고 출퇴근을 했습니다. 천천히 움직이면 하체근력이나 코어에도 좋았겠지만, 괜히 자전거만 타면 3단기어로 최대속도를 내고싶은 욕구가 생깁니다. 최대속도를 내려면 안장에서 일어나 허리를 구부린 상태로 페달을 쎄게 밟아야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이상한 자세로 자전거를 탔던 것 같습니다. 내 나름대로 치질도 예방하기 위한 대책이었는데 허리디스크를 보호하는 것에 대한 대책은 없던 것이었습니다.
7) 요가: 사실 원인인지 가장 파악하기가 힘듭니다. 요가입문 5년차, 요가는 항상 하다가 안하면 몸이 찌뿌둥한 느낌입니다. 그래서 더 요가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요가에는 허리디스크에 무리를 주는 동작이 굉장히 많습니다. 마지막에는 사바사나로 그 긴장을 풀어주어 튼튼하게 만들어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원래 허리가 매우 뻣뻣하던 편이었는데 요가로 허리가 많이 유연해졌습니다. 유연성은 얻었지만 오랜시간동안 추간판 탈출도 같이 얻은게 아닐까 의심이 됩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요가가 디스크를 감지할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2월에만 하더라도 모든 요가자세가 이전처럼 가능했었습니다. 1월에 들어서고 나서 되지 않는 요가자세가 하나둘씩 생겨났습니다. 처음에는 쟁기자세가 안됐습니다. 가장 잘하는 동작이었는데 자존심 상했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다리를 뻣는 모든 동작이 힘들어졌습니다. 허리디스크에서 꽤 회복한 지금도 요가를 할 엄두를 못냅니다.
근원적원인
1) 수술실 생활: 허리디스크가 터지기 직전 항문치열수술을 위해 2박 3일 입원을 했었습니다. 때는 11월 18일, 기업의 3분기 실적이 쏟아지던 시기였습니다. 투자를 늘릴지, 중단할지 결정하기 위해 제가 원래 갖고있던 틀을 이용해 4~5개 기업의 재무제표를 분석했었습니다. 수술 들어가기 전에 쉬는 3시간동안 그 일을 집중해서 했는데 침상에 앉아서 하기 때문에 허리디스크에 무리가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수술을 끝내고 난 그 다음날 저녁에 팔레스타인과의 축구경기가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병실 환우분들께 TV연등을 건의했어야 했는데 용기가 없었습니다. 침상에서 노트북으로 봤는데 엉덩이도 불편하고 진통제 위치도 좋지 않아 매우 불편한 자세로 새우처럼 누워 경기를 시청했었습니다. 다행히 경기내용이 재미없어 전반전만 끝내고 잤지만, 허리디스크는 45분 내내 고통받았습니다.
2) 좌욕 자세: 입원하고 나서 변기에 앉아 하는 좌욕기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놓고 쪼그려 앉아 엉덩이를 집어넣는 좌욕을 해왔었습니다. 허리굽힌 자세를 10분정도 유지했습니다.
문제는 퇴원 후에도 기존의 잘못된 좌욕자세를 유지했다는 것입니다. 변기에 앉아서 하는 좌욕은 매번 변기와 맞닿는 좌욕기도 닦아야 해 보다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항문이 아물기 전이니 잘못된 자세를 자주 했습니다. 많을 때는 하루에 4번씩 좌욕을 했습니다. 좌욕을 끝냈을 때는 이미 허리디스크가 많이 진행된 다음이었습니다.
3) 운동중단: 항문수술 이후 그 어떤운동도 하지 말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을 너무 곧바르게 받아들였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걷기운동은 해도 괜찮다는 얘기를 더 귀기울여 들었어야 합니다. 걷기운동만 하더라도 좌욕을 통해 허리디스크에 가해지는 스트레스가 일정부분 완화되었을 겁니다.
평상시 근력운동 주 2회 이상, 요가 주 2회 이상, 달리기 주 1회 이상을 하는데, 항문수술 직후 3~4주동안 그 어떤 운동도 하지 못했습니다. 날도 추워지는 터라 걷기운동도 조금 무리가 있었습니다. 운동량이 급격하게 줄어들었습니다. 운동을 다시 시작하려고 할 때는 이미 좌골신경통이 진행된 이후였습니다. 디스크확진을 받고 뒤늦게 다시 달리기, 하체운동, 코어운동에 집중했지만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4) 스트레스: 좌골신경통으로 내원을 한 날이 정확히 계엄사태와 겹칩니다. 계엄이 실패하고 탄핵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큰 스트레스는 받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윤석열의 계엄을 옹호하고 선거결과를 부정하며 중국음모론을 신봉하는 극단적인 친구들이 인스타그램, 스레드 등 소셜미디어에서 등장했습니다.
4~5명의 친구들과 매우 길게 대화를 했습니다. 이 친구들이 제시하는 근거는 찌라시 수준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입장을 바꿀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제게 남은건 스트레스 뿐이었습니다. 제 옆지기가 이걸 보고 타인이 아닌 자신과 이런 이야기를 해달라고 해 문답형식의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1주일 뒤에 디스크통증이 더 크게 찾아왔습니다.
원인을 기반으로 대처해보기
다시 정리해봅시다.
근본적 원인
1) 가족력
2) 신체구조
3) 업무적 특성
4) 여가활동
5) 운동
6) 따릉이
7) 요가
근본적 원인 중 가족력, 신체구조는 제가 그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나머지는 다 통제할 수가 있습니다. 오래 앉아있는것이 허리디스크에 좋지 않은 이상, 오래 앉아서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실제로 저는 2월에 디스크가 악화되자마자 회사에서 스탠딩데스크를 신청했습니다. 서서 일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점차 적응해 나아갔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이 아닌거 생각했지만,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늦었습니다. 스탠딩데스크는 허리디스크를 더 악화되는 것을 방지하는데 탁월한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앉아서 공부하거나 글을 쓰는 여가활동은 과감히 없앴습니다. 허리에 부담을 줄 수 있는 달리기나 근육운동도 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모든 여가활동을 걷기와 걷기운동으로 변경했습니다. 몸이 찌뿌둥하니 근육운동을 해야한다는 강박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무엇인가를 하는 것 보다, 하지 않았던 것이 허리디스크 회복에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걷기 외에 그 어떤 근육운동이나 스트레칭도 하지 않았고, 이를 통해 허리디스크를 회복했습니다.
근원적원인
1) 수술실 생활
2) 좌욕 자세
3) 운동중단
4) 스트레스
수술실 생활이나 좌욕은 일시적이었던 만큼 더 이상 신경쓸 필요는 없습니다. 운동을 중단한것도 걷기운동을 하는 것으로 대체가 되었습니다. 스트레스 요인을 파악했다면 그 소스로부터 스스로를 완전히 차단해야 합니다. 저는 그런 방식의 일환으로 스레드를 지웠습니다. 차마 그 친구들을 차단하지는 못했지만, 만약 그랬더라면 허리디스크 회복은 더 빨라졌을거라고 확신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원인을 파악해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의 디스크는 어떤 근본적, 근원적 원인을 갖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