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쓰기로 시작한 편지
얼마 전 매일 지나던 길인데 이제야 발견한 것이 있다. 그건 빨간 우체통이다.
정말 오랜만에 봐서 너무 반가웠다. 아직 빨간 우체통이 있구나!라는 안도감도 들었고, 요즘도 빨간 우체통에 편지를 넣는 사람이 있을까? 과연 빨간 우체통이 일하고 있는 게 맞을까 하는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중 내 어린 시절도 떠올랐다.
또각또각 눌러쓴 시골집 주소가 쓰인 흰 봉투에 우표를 붙여서 누구 혹시나 볼까 봐 딱풀로 완벽하게 봉인한 편지를 우체통에 넣고 등교했던 적이 생각났다.
어느 날 엄마는 내게 문방구에 가서 흰 편지지와 봉투를 사 오라 하셨다. 평소 어버이날 부모님께 쓰는 편지를 위해 예쁜 편지지를 산 적은 있지만 그냥 줄만 인쇄된 딱딱한 편지지와 흰 봉투를 사 오라 하셔서 궁금한 마음으로 심부름을 했다.
엄마는 내게 편지 쓸 준비를 해서 식탁으로 앉으라고 하셨다. 9살인 내가 얼마나 문장력이 있겠는가.. 어버이날 기념 편지 또는 새해 연하장이나 겨우 쓰는 나였다. 그런데 편지를 쓰라고?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 혼자 이 깨끗한 편지지를 어떻게 채우라는 거지?’
흰 편지지와 우두커니 앉아있는 내 옆에 엄마가 앉으면서 그제야 내게 설명해주셨다.
“이제, 한 달에 한 번씩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편지를 쓸 거야. 일단, 엄마가 불러줄 테니, 잘 받아쓰고, 나중에는 네가 직접 쓰는 거야. 알았지?”
“한 달에 한 번씩 편지를 쓰라고? 나 할 말도 없는데..”
우선 엄마가 옆에서 불러주면 나는 흰 편지지에 받아쓰기를 시작했다. <사랑하는 할아버지 할머니께><보고 싶은 할아버지 할머니께>라는 시작과 함께 첫 문장은 꼭 계절 인사를 했다. <장마가 시작되었는데 시골은 괜찮으신가요?>,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가을이 왔네요.>, <부천은 함박눈이 펑펑 내렸는데 시골은 어떤가요?><이맘때면 탱자섬 유채꽃이 많이 피었겠네요.>
처음에는 엄마가 불러주는 이런 낯간지러운 인사말에 피식 웃었지만 진지한 엄마의 얼굴을 보면 더 웃을 수가 없었다.
이후, 편지가 시골에 도착하면 어김없이 할아버지, 할머니께 전화가 왔다. 편지 잘 받았다고, 잘 지내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들뜬 목소리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편지는 발신만 있지 회신은 전화였던 것이다.
이후, 엄마와 나는 한 달에 한 번은 꼭 할아버지, 할머니께 편지를 쓰는 게 당연한 일 중 하나가 되었다. 또, 어느 순간부터는 엄마의 도움 없이도 편지 쓰기는 즐거운 나의 일상 중 하나가 되었었다. 그렇게 시작된 편지 쓰기는 내가 중학생 때까지는 꾸준히 했던 것 같다.
내가 대학생일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이후 시골집을 정리하다 발견한 편지 뭉치를 보고 울컥했었다. 난 단순 외로움을 달래 드리기 위해 엄마의 도움으로 쓴 편지였는데 할머니는 한 달에 한 번씩 배달되는 편지를 기다리셨고, 그 편지를 소중히 여기셨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고등학생이 되고는 편지 쓰는 일을 생각도 못했는데.. 그사이 할머니는 내 편지를 기다렸을 것 같아서 더 슬픈 마음이 들었다.
그때 그 편지도 함께 다 태웠다. 할머니께서 편지를 받을 때 마음을 온전히 갖고 가셔서 하늘에서 외롭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그랬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한두 개는 남겨 둘 걸 그랬나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이 이야기를 쓰다 보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립고, 또 그 시절 엄마와 함께 식탁에서 편지 쓰던 모습이 더 그립게 느껴진다.
엄마는 왜 편지 쓰기를 시키셨을까.. 아마도 우리가 부천으로 올라온 후 할아버지, 할머니는 우리 가족의 빈자리로 매우 적적해한다는 것을 엄마는 알고 고민하다 시작한 일이었을 것이다.
오늘은 빨간 우체통에 편지 한 통을 써 보내고 싶다.
p.s. 2019년도 열심히 살았습니다. 내년에는 더 좋은 글로 함께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독자님들도 한 해 마무리 잘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