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면허, 첫 운전, 첫 차.

by 보라보라

아빠는 내가 빨리 고등학교를 졸업하길 바랐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중 하나는 대리운전 때문이었다.

아빠는 모임 후 자식들이 부모를 데리러 오는 게 그렇게 부러웠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대학 입학 후 첫여름 방학 때 재빠르게 운전학원을 등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또, 아빠는 분명 내가 시험에 여러 번 떨어질 거라는 생각으로 학원에서 교육-시험까지 한 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등록하게 하셨다.


압박에 못 이겨 면허를 취득해야 하니 편하게 2종 오토로 시험을 보려고 했으나, 아빠는 내게 1종 보통을 따야 한다고 했다. 혹시라도 생계형 운전사가 될 수도 있다는 꽤 딸의 미래를 걱정하며 확신 가득한 주장이었다.

학원비도 내주신 아빠에게 반박할 수도 없어서 난 그때 처음으로 트럭 핸들을 잡게 되었다.


SE-7abff2ae-65da-4c7c-8ffa-d6043da7aa05.jpg?type=w1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2000년 내가 등록한 운전 학원에서는 트럭 수업을 들으려는 학생 중 여학생은 나뿐이었다.

학원 선생님 역시 다 남자 선생님들 뿐이었고 기능 첫 수업 이후 맨날 핸들 조작이 미숙하다는 이유로 많이 혼났다. 수업받는 내내 운전석에서 너무 주눅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엄마한테 하소연을 했더니 다음날부터 엄마는 내게 박카스 한 병씩 챙겨서 학원을 가게 했다.

이후, 난 매일 바뀌는 학원 선생님께 박카스 한 병을 건네며, 화내지 말고 잘 부탁한다고 인사를 하고 수업을 시작했다. 이후 선생님 사이에서 난 <박카스 여학생>, <1종 준비하는 여학생>으로 통했다.


첫 장내 시험날 여름의 손님 장마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그날 난 와이퍼를 처음 써봤고, 비는 엄청 내리고 긴장감에 너무 겁이 나서 차에게 혼잣말을 하면서 시험을 시작했다.


“트럭아, 오늘 나 처음 장내 시험이야. 비는 내리지만 나랑 같이 잘해보자. 그래 앞으로 가서, 언덕 중간에서 잘 멈추자. 그래, 이제 다시 내려가자. 그래. 이제 속도 조절만 잘하면 되는 거야. 아, 이제 어려운 S 코스 나왔다. 그래 여기서 이렇게 맞추고 다시 핸들 돌리면 되지? 제일 어려운 주차 코스다. 주차 코스에선 우린 1점만 감점당하자 그래도 돼.” 이렇게 혼자 시험 내내 차 안에서 중얼거리면서 시험을 봤다.



다행히 첫 장내 시험은 통과했고, 차에서 내리는데 선생님들이 뛰어와서

“학생, 축하해! 한방에 됐네. 오래 볼 줄 알았는데 이제 도로 주행하겠네. 아쉽네~그래도 축하해!”

날마다 무서웠던 선생님들에게 이런 칭찬을 받아 너무 뿌듯했다.


그날 비가 억수로 쏟아졌지만, 신발이 다 젖어서 집에 갔지만, 들뜬 마음으로 난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엄마!!! 나 장내시험 합격했어!!!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데도 난 합격했어!!”

면허증 없는 엄마 “진짜?? 잘했다. 잘했어~~ 축하해”

한 번에 붙어 놀랐지만 기쁨을 자제한 아빠 "잘했네. 아직 도로 주행 남았어~."


이젠 도로주행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과 함께 이젠 난 겁쟁이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선생님에게 드릴 박카스를 챙기지 않고 수업을 들을 정도로 자신감이 생겼다.


바로 진행된 도로주행 시간. 코스도 외워야 하고, 진짜 도로에 나와서 주행을 하니 긴장이 배로 되었다. 또, 도로의 다른 선배 운전자들이 도로주행 학원 차임에도 불구하고 너그럽지 못하게 빵빵 클랙슨을 눌러서 첫날은 정말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일주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수업을 들었고, 나름 코스도 외우기 위해 혼자 걸어서 가보기도 하고 아빠랑 시뮬레이션도 해봤다. 이때 아빠랑 제일 말도 많이 하고 뭔가 공통 관심사로 오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도로주행 시험 전날 아빠는 트럭 뒤에 도로주행 메모지를 크게 붙이고, 나와 2-3시간 정도 시험공부를 함께 했다.


SE-4b831aaa-5dbc-4c52-923c-26584aff059a.jpg?type=w1 © denizen, 출처 Unsplash


드디어 도로주행 시험 날!!! 화창한 날씨에 기분이 좋았고, 내가 완벽하게 외운 코스로 시험을 보게 돼서 시작이 좋았다. 그런데 고가도로에서 내려오는데 갑자기 앞에 운행 중이던 차가 고장으로 서게 되는 바람에 난 당황했지만, 차 안에 있던 시험관님이 침착하게 대응해 주셔서 다행히 무사히 시험을 마무리했고, 한 번에 합격이라는 영광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진작에 전화로 나 합격했다고 소식을 전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집에 가자마자

“나 최종 합격했어!!!” 신나서 날뛰었고,

아빠도 덩달아 “축하한다!! 이제 나도 딸한테 대리 운전시켜도 되겠다!!” 신나 했다.

엄마도 못 따서 한 맺힌 운전면허를 한 번에 딴 날 대견해했다.




엄마의 한 맺힌 운전면허증이란 아빠 때문에 운전면허 필기시험만 준비하다 끝난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아빠는 엄마의 대범한 성격에 운전하면 맨날 사고 내고 다닐 거라고, 또 차 운전할 줄 안다고 혼자 훌쩍 차 키 갖고 나가서 안 들어올 수 있다고 불안해하시면서 엄마의 운전면허 시험 도전을 매번 막았다.

그래서 결국 엄마는 운전면허증이 없다.


내가 생각하기엔 나무꾼이 선녀에게 선녀 옷을 꺼내 주지 않은 마음일까 싶다.

아마도 엄마가 운전을 하면 아빠는 차 키 감추기 바쁠 거라 미리 겁먹고 그러시는 걸까. 만약 엄마가 운전을 했더라면 그 차를 타고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면서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상상을 해본다.




이런 내가 운전면허를 딴 후 추석 연휴에 아빠랑 같이 시골 할아버지 댁 근처에서 도로 주행을 했다.

경운기도 가볍게 추월하는 나. 자아도취에 빠진 나는 흥분한 나머지 우회전을 하다 논두렁에 빠질 뻔했다.


SE-e2536b06-2d50-4d34-abdc-e55fbb838ac1.jpg?type=w1 © octoberroses, 출처 Unsplash


그때 아빠는 무척 놀랬고, 그 후 아빠는 내게 키를 주지 않았다. 이후 난 거의 10년 동안 운전을 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렇게 원했던 딸내미 대리운전도 주문하지 않았다.




내 나이 29살에 초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강화도로 1박 2일 여행을 하기로 했는데 친구 중 제일 얌전했던 친구가 운전을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차를 렌트를 해서 가겠지 생각했는데 나를 픽업 온 것은 그녀의 차였다. 심지어 그녀는 차주였고, 운전하는 멋진 신여성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때 1박 2일 동안 여행의 별다른 기억은 없다. 대신 운전을 멋지게 하는 친구의 모습만 눈에 들어왔다.


SE-fcc620cb-e68e-4db8-a9db-3cde491b9a1a.jpg?type=w1 © spencerdavis, 출처 Unsplash


그래서 여행을 다녀온 후 난 가족들에게 선언했다. “나도 차주가 되겠어!!”

부모님은 처음에는 콧방귀를 쳤으나, 그다음 휴일 자동차 매장에 함께 가자고 하니 나의 결심이 장난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셨다.


차주이자 신여성 같아 보였던 친구를 본 후 딱 한 달 만에 난 정말 빨간 모닝의 차주가 되었다. 겁은 많아서 면허 따고 10년 만에 자동차 연수도 새로 받고, 난 빨간 모닝으로 어디든 갈 수 있는 내 나름의 신여성이 되었다.


이후 난 엄마의 쇼핑 운전수가 되었고, 동생들 학교나 학원에 픽업도 가끔 하고, 아빠 대리운전을 자처하면서 난 완벽한 가족들의 운전기사가 되었다.


엄마는 매번 내가 운전할 때마다 그런 말씀을 하신다.


“네 아빠 때문에 난 운전에 한이 맺혔는데, 우리 집에서 제일 곰 같은 네가 이렇게 운전해서 다닐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잘했다. 백번 천 번 생각해도 운전은 잘 시작한 거야.”


“엄마, 나도 친구 덕분이야. 그 친구한테 자극받지 않았으면 나도 아직 장롱면허일 수 있어. 그때 진짜 그 친구는 멋진 차주의 모습이더라고, 잊히지 않아. 나의 운전 선배.”




이후, 여동생들도 현재 모두 운전을 하고 있다. 내가 구입한 빨간 모닝은 둘째 여동생을 걸쳐, 현재는 막내 동생이 차주로 운행 중이다. 엄마의 한 맺힌 운전면허증에 대한 마음을 알고 그런 것처럼 우리들은 모두 운전을 한다. 엄마가 언제든 어디를 가자고 하면 누구든 운전해 줄 수 있는 대기조처럼 말이다.


“엄마 운전면허증은 이제 포기해! 대신 운전기사 항시 대기 중이잖아~!”


SE-8a96f2a5-1c5b-406d-9bb0-0353959b76a6.jpg?type=w1 © olav_tvedt,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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