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김부각이 싫다고 하셨어.

by 보라보라


엄마가 어느 날 손이 많이 가는 김부각을 만들어 주셨다.

나에게 김부각은

잘 마른 김부각을 한입 깨물면 바삭한 김 위에 깨의 고소함과 찹쌀 풀의 짭짤한 맛이 조화를 이뤄 입안에서 김 부서질 때 너무 맛있는 녀석이다.
또, 시골 넓은 마당에 김들이 한 장씩 펼쳐진 멋진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얼른 김부각을 집어서 맛보고 좋아하며 말했다.

"엄마, 이거 진짜 시골에서 먹던 맛이야! 맛있다."


KakaoTalk_20200619_201204246_01.jpg 우리 고향 표 김부각이자 나의 간식~♥


엄마 왈

"난 원래 안 좋아했는데 이번에 생각나서 만든 거야. 너네는 좋아하잖아."


의외의 발언에 놀란 나는

"엄마. 김부각 안 좋아했어?? 난 엄마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내 말을 듣던 엄마는 차분하게 말했다.

"야, 나는 김부각 보면 열불 나서 싫어했어. 너 임신 했을 때 양수 터졌는데 너네 할머니가 아직 안 나온다고 일하라고 하면서 김부각 만들라고 했잖아. 그래서 너 낳을 때 3일 고생했잖아. 난 만들어도 안 먹었어."


새로운 사실의 나는 무척 놀랬다.

"정말? 양수가 터졌는데 일을 했다고??"


김부각을 받아 집으로 오면서 별생각을 다했다.

엄마가 할머니한테 시집살이를 한 사실은 알지만 양수가 터졌는데도 일을 했다는 말이 뇌리에 박힌 듯..


얼마 전, 엄마의 무릎 인공관절 수술 후 간호하면서 엄마가 약기운에 잠들려고 하길래 다른 재미난 이야기가 없을까 생각하다 잊고 있던 김부각에 대한 에피소드를 물어보았다.


엄마는 약기운에 졸렸던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아주 상세히 이야기해 줬다.




일단, 우리 집 김부각 만드는 법부터~


★ 김부각 만드는 법 ★


◆ 재료 : 김, 찹쌀가루, 깨, 참기름, 소금, 파, 풋마늘, 물엿, 실고추.


◆ 만드는 시기 : 구정이 지난 봄날.


◆ 만든 이유 : 날이 따뜻해지면 김이 변색되기 시작, 김양식 후 남은 김을 저장하기 위해 만들었다 함.


① 찹쌀가루로 풀을 쑨다.

② 냄비에서 찹쌀 풀이 팔팔 끓을 때 풋마늘 쪽파 소금 물엿 참기름 넣어서 한번 끓이기.

③ 김발장을 쟁반에 놓고 그 위에 마른 김을 꺼내 놓고 풀을 발라준 후, 깨를 뿌려준다.

④ 깨 외에 실고추를 올려 살짝 매콤하게 만들기도 한다.

⑤ 작업이 끝난 김을 한 장씩 널기

⑥ 하루 정도 후 김이 말랐으면 끝.


※ 우리 시골 방식으로는 김부각을 따로 튀기지 않음. 아이들은 간식으로 먹고, 어른들은 반찬이나 안주로 드신다. 간이 싱겁게 느껴질 경우 고추장에 찍어 드시기도 함.



<맛남의 광장>에서 하는 방식과 비슷함.




엄마는 신혼 시작부터 시골로 내려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함께 살았다.

그래서 바로 시집살이가 시작되었고 낯선 곳에서 하루 종일 눈치를 보며 살았다는 것이다.


그 와중 나를 임신하셨고, 내가 3월생인데 엄마는 3월 12일 할머니가 김부각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시골집 살림은 일반 대가족 수준보다 규모가 있었고, 할머니 손도 워낙 크셨다.


김부각 작업을 한다고 했는데 정미소 큰 넓은 마당에 찹쌀 풀이 묻힌 김을 잔뜩 널고도 김이 남아

집 마당에까지 자리를 마련해 말렸다고 하니 작업량이 얼마나 많았을지 상상이 된다.


내가 어릴 적에도 김부각 말리던 모습을 기억한다.

마당 가득 검은색 김들이 깨를 안고 잔뜩 누워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날 오후 갑자기 엄마는 양수가 터졌고, 겁먹은 엄마는 할머니께 말씀드렸다고 한다.

"어머니, 양수가 터지는데 병원에 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김부각 만들기에 집중한 할머니 차갑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양수 터져도 바로 애 안 낳아. 아직 일해도 된다."


엄마는 첫 아이고, 겁은 났지만 할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시니 옷만 갈아입고 김부각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얼마나 서러웠을까.. 요즘 시절이라면 난리 날 상황이다.)


그날 밤 엄마는 아빠에게 이런 상황을 이야기했지만, 아빠도 경험이 없으니 할머니 말이 맞을 거라고 통증이 오면 병원 가자고 했단다. (그 상황을 듣기만 했는데도 열불이 났다. 화가 난다!!!)


그리고 다음날 엄마와 할머니는 김부각 말리는 일에 더 집중했고, 빨리 작업한 것들은 다 건조되어 보관용으로 정리 작업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 옆집에 살던 형님이 오셨길래 엄마가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형님. 어제 양수가 터지고 지금 허리도 너무 아픈데 저 병원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놀란 형님이 말씀하셨다. "아니. 왜 병원을 안 갔어. 양수 다 빠지고 낳으려면 엄청 힘들어. 얼른 가."

억울한 엄마는 말했다. "아니.. 어머님이 바로 애 나오는 거 아니라고.. 그런데 지금은 허리도 너무 아파요."


결국 엄마는 그날 집안일을 다하고 밤에 병원에 가는데 비가 장마처럼 억수로 쏟아졌다고 한다.

이틀 동안 김부각 작업할 적에는 해가 쨍쨍했다는데.. 아마도 하늘도 엄마 마음을 위로하려고 비가 내렸나 싶다.


어렵게 병원에 도착한 후 의사 선생님에게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양수가 터졌는데 왜 이리 늦게 왔냐고..

엄마는 엄청난 진통 끝에 다음날 새벽 날 낳으셨다.

양수가 터지고 꼬박 3일 만에 출산을 한 것이다.


출산을 하면서 엄마의 설움은 컸다.

6남 1녀로 자라면서 외동딸이라 귀한 딸이었는데, 첫 출산이 이렇게 서럽고 힘들지 몰랐던 것이다.

자연분만이라 3일 만에 집으로 돌아오니, 아직 정리되지 않은 김부각이 보였고..

꼴 보기 싫은 김부각의 마무리 정리도 엄마가 했다고 한다.


그 후 엄마는 김부각을 만들기는 했지만, 전혀 먹지 않았다고 한다.

서러워서, 억울해서, 슬퍼서.. 나 같으면 절대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 같다.


이런 사연으로 엄마는 우리가 부천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 딱 10년 동안 할머니의 김부각 보조 역할을 하면서 김부각을 만들기만 했지, 맛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 후, 할머니도 돌아가시고, 가끔 시골 큰엄마가 김부각을 만들어 보내주셨다.

그러면 우린 엄마의 속도 모르고 이런 배부른 소리를 했던 것이다.

"할머니랑 엄마가 만들었던 김부각보다 맛이 덜하다.."


그러다 올해 새로운 냉장고가 들어 오면서 냉장고 정리를 하다 김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

그래서 엄마는 28년 만에 시골에서 할머니 보조 역할을 하며 만들었던 김부각을 기억하는 대로 만들어봐야겠다 마음먹은 것이었다.


KakaoTalk_20200619_201204246_02.jpg 음식 건조기 외 베란다에서 직접 말리는 김부각들.


그래서 완성된 김부각!

우리 가족 모두 기뻐서 말했다. "엄마! 예전 시골에서 먹던 김부각이야!! 정말 맛있다."


별일 아니다 하며 차분하게 엄마는 말했다.

"그래? 예전에 김부각 만들었던 기억으로 한번 해봤어. 맛있다니 다행이네."


이런 사연을 이제 알게 된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귀한 김부각 깨 한 톨도 버리지 않고 다 먹을게. 진짜 맛있어 엄마."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마는 날 위해 김부각 한 뭉치를 싸주셨다. 난 마치 보물을 갖고 온 것처럼 기뻤고, 집에 오자마자 먹기 편하게 또 오래 보관해서 먹기 위해 5장씩 팩에 정리해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정리된 김부각을 보니 먹지 않아도 부자가 된 기분이 들면서 행복했다.


KakaoTalk_20200619_201204246.jpg 귀한 김부각 부자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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