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파트에 사는 동생네와 우리는 퇴근시간이 비슷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보면 운이 좋을 때는 조카들이 집에 들어온 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
이 녀석들이 막 현관에 들어와서 중문으로 들어가는 도중 쫑알쫑알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그럼 나랑 치즈군은 피식 웃는다.
"이 녀석들 이제 집에 왔구나. 귀여워."
"오늘도 서로 먼저 들어가겠다고 쫑알쫑알 말도 많아. "
하지만 조카들의 엄마인 내 여동생은 지친다고 한다.
현관에서 서로 먼저 신발 벗고 들어가겠다고 별걸 다 경쟁하며 동생은 퇴근 후 지쳐서 그저 시끄럽다고 한다.
그 외에도 <오빠가 내 신발 밟았다.> <과자가 쏟아졌다.> 등 별별 이유로 매일 신발장 앞에서 쫑알거린단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도 서로 먼저 신발 신겠다고 하고 어린이집 앞에서는 서로 먼저 내리겠다고 하기도 하고..
3살 5살 꼬맹이들이 자기주장이 있어서 그런지 이유도 많고 말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그 녀석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난 마냥 귀엽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
12월 첫 주에 우리 집은 한쪽 벽면 결로 보수공사를 했다.
이틀에 걸쳐 진행했고 마지막 날은 도배로 마무리하면 끝이었다.
그런데 나이 든 남자 사장님과 나보다 어려 보이고 향수 냄새가 향긋하게 나는 아가씨가 도배지를 갖고 집으로 왔다.
의외의 조합이다 생각하며 나는 그분들과 왜 한쪽 벽면만 도배를 하게 됐는지 등등 이야기하다 두 분의 사이를 알게 됐다. 아빠와 딸 사이였고 엄마도 함께 도배 일을 한다 했다.
<다정하게 같이 일하셔서 보기 좋으세요.>, <아빠께 기술을 배워서 좋을 것 같아요.>
이런저런 할 말들이 많았지만 난 한마디만 했다.
만약 내가 같은 상황이 아녔더라면 좋은 점만 생각나서 말했을 테지만, 나 역시 가족 회사를 운영하면서 그 고충을 알고 있기에 그 한마디면 족했던 것이다.
왜냐면 이들도 고충은 있을 테니깐.
누가 먼저 같이 일하자고 했을까.
어쩌다 같이 일하게 된 걸까.
딸도 이 힘든 기술직을 한다고 했을 때 아빠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매일 도배 작업하느라 예쁜 옷 못 입고 작업복만 입고 있을 아가씨.
그래서 그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고 향긋한 향수로 자신을 뽐내고 있는 걸까.
아빠께 기술 배울 때 집에서 보던 아빠가 아닌 모습을 보지 않았을까.
아빠는 현장에서 딸이 고객에게 핀잔을 듣지 않도록 얼마나 모질게 가르쳤을까.
귀하게 보면 더 좋은 사이가 될 텐데 매일 함께하는 이 부녀 사이는 어떨까.
혹시 일감이 떨어지면 가족이 함께 초조해하겠구나.
등등 아빠 입장에서 딸의 입장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어쩌다 가족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좋은 점도 있지만 힘든 점도 알기에..
아가씨의 모습이 마치 내 모습 같았고, 그녀의 아빠 모습이 마치 우리 아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아빠 회사에 입사하고 출근복이 현장 작업복이라 많이 아쉽다.
예쁘게 차려입고 출근하는 여자들을 보면 나도 저렇게 입고 출근했었는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아직도 있기 때문이다.
도배 아가씨가 언젠가 아빠와 엄마의 그늘을 벗어나 혼자서도 도배일을 척척해내는 그날.
그녀의 부모님은 더 대견해하시겠지.
나 역시 아빠의 그늘을 벗어나 결재권까지 쥐게 되면 우리 부모님도 날 대견하게 생각하실까.
우리 부부가 아빠가 일궈낸 일들을 지금보다 더 잘 이끌어 갈 수 있을까.
나에게 그런 날이 올까.
그냥 지나치기 쉬운 순간이었지만 나의 마음은 복잡 미묘했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인 가족 사업이 남 일 같지 않아서 난 그 부녀에게 차 한 잔을 대접했다.
"잠깐 쉬시면서 커피 한잔하세요. 아메리카노 괜찮으시죠?"
"아이고, 감사합니다. " 남자 사장님은 연실 고맙다고 하신다.
"감사해요. 저는 믹스 안 마시거든요!" 젊은 딸은 자기 취향도 이야기하며 고맙다고 한다.
"돌체 아메리카노 방금 내렸어요. 저도 덕분에 한잔하려고요. "
부녀의 꼼꼼한 도배 마무리로 우리 집 인테리어 하자 보수는 드디어 끝이 났다.
수고 인사를 하며 혹시나 도움이 될까 싶어서 아가씨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명함 한 장 주실래요? 이번에는 업체 통해서 이렇게 만난 거지만, 다음에 도배 필요하면 직접 연락할게요."
"아 네! 명함은 못 챙겨 왔는데 번호 알려드릴게요."
"기회 되면 다음에 또 봬요. 수고하셨어요. "
"네. 저도 커피 맛있게 마셨습니다. 다음에 기회 되시면 연락 주세요. 안녕히 계세요."
부녀를 뒤로하고 문을 닫으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그녀의 가족 사업이 승승장구하길.
힘든 만큼 더 번창하길.
나는 희망한다.
멀리서 보는 이들에게 더 희극처럼 보이길.
나 역시 우리 가족 회사가 더 희극처럼 보이길 바라는 마음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