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하지만 따뜻한 온기가 있는 집.

by 보라보라


내가 사는 곳이라는 주제에 제일 먼저 집이 떠오르고, 어릴 적 살았던 시골집, 부천의 첫 집, 친정집 마지막으로 현재 내 집이 차례대로 떠오른다.


얼마 전 친정에 들렸다. 추석 이후 새 집 단장하고 바쁘다는 이유로 너무 오랜만에 방문했다.

현재 부모님 집은 완공된 지 이제 10살 된 아파트다.

그런데 오랜만에 방문한 탓인지, 아니면 내가 지난 9월 집 리모델링을 해서 그런지 외부는 최신 아파트인데 이번에 보니 내부는 엄청 올드해 보였다.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오랜만에 집에 와서 그런지 이제 정말 할아버지 할머니 집 같아.”

엄마는 말했다. “그렇지, 이제 범이 연이한테는 할비 할미 집인데 그리 보이겠지. 근데 난 아직 그리 올드하다는 생각 안 하는데 그렇게 보여?”

“응. 짐도 많고, 벽에 걸린 사진들을 보니 정말 우리 아빠 엄마도 예전 할아버지 할머니 집처럼 꾸며놨네라는 생각이 드는데?”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친정집을 찬찬히 둘러봤다.


우리 세 자매가 썼던 방은 아직도 우리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내 방은 이 집에 이사 오고 6개월 후 결혼으로 나와야 했지만 부모님이 내 방을 신경 써서 꾸며주신다고 분홍색 옷장과 하단 수납형 책장을 만들어주신 게 있다.

그 가구들은 내 신혼집을 꾸밀 때 괜찮으면 갖고 가야지 했는데 작은 신혼집에 들어갈 자리가 마땅하지 않았고 분홍색이라 남편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지금까지 부모님의 서브 옷장 및 수납장으로 쓰이고 있다.


둘째 동생 방은 동생이 썼던 침대 프레임과 책장+책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조카들이 태어나서 머물렀던 기저귀 수납장이 새로 추가된 후 지금도 그 수납장은 조카들의 임시 옷장처럼 쓰이고 있고, 침대 프레임 위에 새로운 매트리스가 놓여있고 평소 조카들이 잠들었을 때 또는 부모님이 낮잠 주무실 때 쓰이는 곳이기도 하다.


셋째 동생 방은 기본 붙박이장이 있고 천장형 수납장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 방에는 엄마의 서브 냉장고 2대와 건조기가 자리 잡고 있는 가전 방이자 조카들의 큰 장난감을 보관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거실에는 소파와 조카의 트램펄린과 화분들이 있고 벽에는 딸들의 결혼사진 조카들 성장 사진 그리고 리마인드 웨딩으로 찍은 가족사진들로 가득 차있다.

20210102_121223.jpg 반대편 거실은 사진으로 가득.


특히 부엌에는 8인용 식탁이 있는데 이 식탁은 언제든 누가 오든 불편함 없이 식사를 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 주며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가구다.

그리고 엄마의 손맛 덕분에 맛집으로 소문나 엄마의 부엌은 엄청난 식재료들과 많은 그릇들로 가득 차있다.

이 부엌만큼은 쉴 틈 없이 움직이는 장소이자 맛있는 요리로 우리를 살찌우는 곳이다.


마지막으로 부모님 방은 침대와 화장대 그리고 계절에 따라 나와있는 가전이 달라지는 작은 협탁들이 있다. 그래서 친정집에서 부모님의 온기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공간이다.


친정집을 쭉 둘러보니 내가 살았던 곳이자 지금도 가끔 내가 살아 숨 쉬는 이곳이 왜 이리 정겹게 느껴지는지..

우리가 한 명 한 명 출가할 때 부모님은 얼마나 시원 섭섭한 마음이 들었을까.

딸들이 출가한 후 시간이 멈춘듯한 가구에 온기를 불어넣으시며 함께 살아가고 있는 부모님을 보니 괜히 쓸쓸함도 느껴진다.


올드해 보인다고 엄마에게 놀리듯 말했지만 찬찬히 둘러보니 우리 가족의 온기가 그대로 살아 숨 쉬고 내가 언제나 편하게 쉴 수 있는 이곳 친정집이 괜히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부모님은 우리의 공간을 살아 있게 만들어주시듯 우리도 부모님 계실 때 그 공간에 더 온기를 불어넣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서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 같은 방침이 없어지길.

친정집에 우리 가족 모두 모여 오순도순 왁자지껄 떠들며 식사할 날이 빨리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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