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분식 중 한 가지만 고르라고 하면 참 어렵다.
마치 아이에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물어보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골라보라 하면 김밥을 제외하고 가장 추억이 많은 분식을 하나 골랐다.
그건 바로 순대다.
예전 단독주택에 살 적에 우리 동네는 3개의 동으로 구성된 단지였는데 이곳은 슈퍼도 없고 주변은 학교와 공원뿐이었다.
간식거리는 학교 앞 문구점에서 파는 게 다였고, 휴일에는 문구점마저 휴일이라 특별히 가까운 곳에서 간식을 사 먹을 수 없었다.
대신 15분 넘게 걸어 나가면 아파트 단지가 시작되었고 그쪽에는 상가들이 많아서 선택할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우리 세 자매는 게을러서 휴일 씻지도 않은 얼굴로 어디를 나가는 일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 날 우리 세 자매가 믿고 기다리고 있는 차가 있었다.
바로 할머니 순대 차였다.
할머니 순대 차는 나름 코스가 있었고, 우리 동네에는 주로 주말 3-4시경이면 지나가는 코스였다.
그쯤 되면 우리가 아점을 먹고 저녁 먹기는 이른 시간이었기에 간식 먹기 딱 좋은 타임이었다.
그래서 창문 넘어 할머니 순대 차의 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얼른 채비를 갖추고 돈을 챙겼다.
"순대 사세요. 순대. 순대가 왔어요." 녹음된 테이프는 계속 우리의 발을 재촉한다.
얼른 3천 원-5천 원을 꺼내 들고 뛰어나가면 우리 집 근처에서 할머니 순대 차를 세우거나, 늦게 나가면 골목 아래까지 뛰어 내려가면서 소리쳤다. "할머니 여기요!!" 그러면 천천히 움직이던 순대 차는 한쪽에 자리를 잡고 우리를 기다려줬다.
그럼 순대 차 보조석에서 할머니가 내린다.
사실 운전은 할아버지, 순대는 할머니 담당이었다. 그리고 녹음테이프는 딱 할머니 목소리였다.
그래서 우리는 할머니 순대 차라고 했었다.
차에서 내린 할머니는 차 뒤에서 도마와 칼을 꺼내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대를 송송 썰어주신다.
이때 별말 없이 보고 있으면 간을 조금 썰어 주시고 그렇지 않고 호불호를 말하면 할머니는 그 주문에 맞춰 부속품을 챙겨주셨다.
이 순대 차의 순대는 찹쌀 순대에 따뜻하기도 했고 잡내도 없었다. 특히 부속품을 썰어 주실 때는 엄청 얇게 잘라주셔서 그게 더 부담 없이 먹기 좋았고 그 역시 특유의 냄새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했던 할머니 순대 차였다.
이렇게 순대를 사 오면 온 가족이 모여 간식으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대를 먹었다.
역시 기다린 보람이 있다고 하하 호호 떠들며 먹다 보면 금세 순대는 사라진다.
근데 순대를 먹을 때 조금씩 다른 점이 있었다.
세 자매 중 누가 사 왔냐에 따라 순대의 양이 달랐다.
나나 막내가 사 오면 순대가 좀 더 많고 둘째가 사 오면 순대도 많고 부속품도 많았다.
둘째가 우리보다 할머니와 더 친하기도 했고 동생이 이쁘다고 더 주시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가 순대를 살 때면 둘째를 빨리 일으켜 세워 나가라고 떠밀어야 우리는 같은 가격이라도 푸짐하게 먹을 수 있었다.
이점을 이용해서 둘째 동생은 사 오기만 하면 우리는 먹기 전 세팅을 하고 먹은 후 치워주며 제 역할을 분담했었다.
그 시절 3천 원으로 셋이 순대 먹던 때도 재미있었고, 평소 5천 원이면 온 식구가 맛있게 먹었고, 또 식구들 많이 모였을 때는 만 원어치 사면 할머니 엄청 서비스 주셔서 넘치게 먹었던 순대..
그러다 어느 날부터 할아버지 혼자 순대 차를 운행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할머니의 안부를 여쭈니 편찮으시다고 해서 얼른 쾌차하셔서 할머니 보면 좋겠다고 했었다. 이후 할아버지 혼자 운행하는 순대 차는 뜸하게 다니다 결국 할아버지 순대 차도 더 이상 오지 않았다.
그 후 우리 가족은 멀리 나가 순대를 사 와 먹긴 했으나 예전 할머니 순대 차에서 먹던 순대 맛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 시절 먹었던 순대가 제일 맛있었다고 해야 할까..
요즘도 가끔 거리에 서 있는 순대 차를 보면 그때 확성기에서 들려오던 "순대 사세요. 순대. 순대가 왔어요." 할머니 목소리가 생각난다.
순대 차, 할머니 그리고 할아버지 모습도 그립고 그 시절 얼른 뛰어가 사 온 순대를 기다리며 옹기종기 앉아 있던 모습도 모두 생각나 더더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