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을 떠올리다 보면 내가 처음 혼자만의 산책을 나섰던 때가 생각난다.
대학 1년 때 첫 동아리 MT 갔을 때 밤새 시끄럽게 떠들던 사람들이 모두 잠든 시간.
아침인데도 아무도 아침인 줄도 모르고 자던 아침.
나 혼자 부지런히 일어나 전날의 흔적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들의 꿀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혼자 숙소 밖으로 나왔다.
놀러 왔지만, 숙소에서 떠드느라 근처 구경도 하지 못한 아쉬운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었다.
조용히 출입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아주 신선한 공기가 내게 남아있던 전날의 숙취를 싹 깨워줬다.
숙소 앞 작은 산책길이 보였다.
평소 겁 많은 나는 누군가 동행해야 움직였지만 그날 그 길은 한번 걷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아침 풍경은 낯설었지만 햇살에 모든 곳이 환하게 비추고 있어 무서워 보이지 않았기에 발걸음을 옮겼다.
대신,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어느 변수가 생길까 하는 생각도 들어 손에 든 핸드폰을 체크했다.
충전이 가득 된 핸드폰을 들고 안심하며 나 혼자 산책길을 따라 걸었다.
숲 속의 아침 공기를 오롯이 혼자 맡으며 걷는 숲 속 산책이 마냥 좋았다.
마치 숲 속의 주인 허락도 없이 이상한 나라 앨리스가 된 것처럼 말이다.
높은 나무에서 들리는 아침 새소리, 어디서부터 시작된 지 모르겠지만 내 눈앞에 보이는 좁은 계곡의 잔잔히 흐르는 물소리가 내 귀를 기분 좋게 해 줬다.
산책길 따라 나무들이 작은 꽃망울을 선보이며 자랑하는 것 같았던 꽃길.
봄은 벚꽃만 있는 게 아니라고 노란색 분홍색 키 큰 나무에도 키 작은 나무에도 자신만의 예쁜 꽃들이 멋지게 햇살 받으며 뽐내고 있었다.
산책길을 걷는 내내 ‘예쁘다’, ‘좋다’, ‘상쾌해’, ‘왜 이런 풍경은 보지도 않고 놀았단 말이야.’ 등 나 혼자 있지만 옆에 누군가 있는 듯 계속 혼잣말을 한 듯하다.
한 30분 정도 혼자 산책을 하다 이제는 사람들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어 숙소로 돌아가는 길.
주변 구경하며 시작된 산책길이 짧다고 생각했는데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 꽤 멀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그 사이 친구 선배들이 깨어나 하나둘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고, 분주하게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좁은 산책길에서 툭 튀어나와 숙소로 들어오는 날 보고 다들 어디 갔었냐고 찾고 있었다고 한 마디씩 거든다. 그들이 날 찾고 있었다는 소리가 싫지 않았다.
나도 서둘러 그들과 함께 짐을 정리하고 숙소를 떠나는 길.
멀어져 가는 숙소 풍경을 보며 난 그날 아침 이상한 나라 앨리스처럼 비밀 숲 속을 여행하고 온 기분이었다.
이후 난 여행을 가면 다음날 아침 일어나는 대로 숙소 풍경을 한참 구경하는 버릇이 생겼다. 특히 아침 일찍 일어나는 편이라 아무도 없는 아침 세상과 나 혼자 직접 만나는 순간은 언제나 기분 좋고 상쾌하다.
아.. 여행을 떠나고 싶다.
이번 봄에는 화려한 꽃구경이 아니라도 조용한 봄을 느낄 수 있는 작은 숲이 있는 곳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