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과 흉 사이, 가족 아닌 가족으로
할머니는 병실에 계셨고, 할아버지는 집에 계셨다.
두 분은 자녀가 없었다.
그래서일까.서로를 향한 마음은
말보다 더 조심스럽고, 눈길보다 더 단단했다.
나는 그 두 사람 사이를 오갔다.
하루는 병실에서, 하루는 마을에서.
그 중간에서 나는
어느새 ‘가족 비슷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할머니는 병문안 간 나를 붙잡고 말했다.
“우리 영감, 혼자 있어. 잘 좀 봐줘요.”
“내가 없으면 뭐가 뭔지 모르거든.
찬장도 제대로 못 찾아.”
며칠 뒤,
할아버지도 똑같은 말투로 말했다.
“할머니 몸 약하잖아.
가거든 뭐 필요한 거 없는지 꼭 봐줘요.”
말 끝은 다 흐렸지만
나는 알았다.
이건 그냥 부탁이 아니라, 사랑의 모양이었다.
서로를 너무 걱정해서 직접 말은 못 하고
나를 거쳐 마음을 돌려보내는 거였다
그러면서도 서로 흉은 기가 막히게 봤다.
할머니는 나를 보며 입을 삐죽 내밀고 말했다.
“또 냉장고 그냥 닫고 지나갔죠?
영감 정리는 못 해요.”
할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나지막이 웃으며 말했다.
“할매가 병실에서 TV 볼 거면서
리모컨 찾지도 못하고 나한테 전화 올걸?”
나는 속으로 웃었다.
‘이게 바로 진짜 부부지…’
그렇게 서로 챙기고, 흉보고, 걱정하고,
사실은 매일 그 사람 생각만 하고 있는 거.
내가 특별한 무언가를 한 건 아니었다.
그저 두 사람의 마음을
조용히 옮겨주는 다리가 되었을 뿐.
나는 그날, 누군가의 간병인도,
지나가는 봉사자도 아니었다.
그날 나는, 두 사람 사이의 조용한 ‘식구’였다.
그리고 그 자리는, 꽤 따뜻하고 익숙했다.
그리고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