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지 않는 나, 흙을 마주했다.

로맨틱한 공허를 마주하다

by charming

나는 도망치듯 자연으로 돌아갔다.

비 오는 날에 목탁 소리를 듣는 로맨틱함.

빗방울이 바닥에 닿는 물방울 소리와

코에 느껴지는 젖은 흙길이 주는 털털한 향

가끔 보이는 물 안에 무지개를 만날 때는

내가 지금 나를 잘 만나고 있구나라는 안도감

그 순간 나는 내가 잘 회복되고 있음을 알았다


하늘을 쳐다보고 구름이 많이 보이면

오늘은 어디 누군가는 잘 지내고 있겠구나

하늘을 봤는데 날이 흐리면

오늘 누군가는 마음이 울퉁불퉁한 날이구나라고

괜히, 확인되지도 않은 마음에게, 안부를 보냈다

누구나 가슴엔 그리운 사람 한 명 정도는

가지고 사는 게 로맨틱한 공허라고 생각하니깐


그 시기에 나는 소나무를 좋아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올곧게 곧은 소나무를

사람은 곧아야 한다는 내 주관과도 어울리고

나는 역시 곧은 사람이 되길 원하는데

곧게 서 있는 곧은 소나무를 볼 때마다

내가 지금 틀리지 않았구나 라는 괜스레

합리화 혹은 내 일상의 힘을 많이 얻었다


소나무

곧은 자세로 서 있는 중심체가 너무 좋았다

바람 따라오는 솔나무의 향이 감미로울 정도로

그때마다 나는 소나무 노래를 들었다


흙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배웅을 하는 일을

했던 일하는 나는 , 일하지 않는 동안 온전히

누군가의 배웅도, 마중도 아닌 나를 위해

그 시기에 도예를 배웠다.


흙을 주무르고

내 온도로 모양을 만들어가는 시간.

그건 단순히 형태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내 안의 무너진 중심을 다시 세우는 작업 같았다


누군가의 배웅도, 마중도 아닌

오직 나를 위한 손의 움직임.

그 시간 덕분에 나는 다시, 단단해질 수 있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어떤 것에 위로를 받고

어떤 것을 꺼려하고

어떤 것들을 어려워하고 어떤 것들에게서

힘을 얻는지를

퇴사 49일이 준 일하지 않는 나에게 준 선물


다시 현실로 돌아온 나는 일을 하지만

일하지 않는 내가 누군지, 더 잘 알고 있다.

그게 내가 다시 일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안정 대신 선택한 불안정, 그리고 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