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조끼 입은 손녀
중앙에 있어 중앙리
서쪽에 있어 서생리
남쪽에 있어 남생리
북쪽에 있어 구북리
그리고 새로운 마을 새마을
그리고 가장 많은 사랑을 주고받은
믿음 병동과 행복병동
믿음 사랑 소망 행복이 가득한 병동에서도
보리피리
그리고 그 공간을 지키는 나폴레옹 고양이까지
사슴을 닮았고 새벽녘엔 움직이는 사슴을 만나게 되는 곳. 아픈의 땅이라고 하지만 나는 소록도를 꽃 친정이라고 부른다
소록도엔 장기봉사자와 단기 봉사자가 있다.
장기 봉사자는 노란 조끼를 입고
단기 봉사자는 파란 조끼로 입는다
장기는 최소 2주부터 많게는 매년 오는 사람들
단기는 봉사경험 개념으로 1박 2일, 혹은 2박 3일
나는 노란 조끼를 입는 사람이고
신분확인하고, 숙소에 짐 풀고, 가장 먼저
하는 것도 마을어른들께 인사드리기
히죽히죽
가족을 만나는 일은 가장 즐거운 일이니깐 말이다
중앙리부터 한 바퀴 도는데 마을에 나와 계시는 어르신들은 언제 왔어? 지금 왔어?라고 할 만큼 나에게는 또 하나의 꽃 친정이 되었다
그때야 비로소 나 집에 왔구나를 느끼며
한 마리의 강아지처럼 온 마을을 다닌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저 왔오요-
그럼 그 말에 언제왔어? 지금 온거야? 밥은?
얼마나 이리도 정겨운 말인가
장기봉사자는 대부분 병실에 킵이 되어있고
봉사자 스케줄 근무로 돌아가는데, 그 스케줄
매뉴얼을 내가 만들었다, 오래된 역사의 유물
내 사랑 침대 옆에는 20대의 내 증명사진이 있고
내 사랑은 손도 꼬까손이고, 눈도 예쁜 눈인데
한 이틀 정도는 손도 안 보여줄라고 하고, 눈도
안 보여줄라고 했는데, 시간이 쌓인 관계는 봉사자들이 자주 바뀌어도, 병실 입구에서 내 목소리만
들리면 바로 내 이름을 부르실 정도로 우린 서로의 오른팔 왼팔이 되었다.
매번 언제 왔냐? 물으시고, 언제 가냐? 는 묻지
못하시고, 그리고 언제 또 오냐는 더더욱 못 하시고, 그 마음을 너무 잘 알고 늘 기다리시는 걸 알기에 먼저 내가 먼저 며칠 날 가고, 며칠 날 다시 올 건데, 못 오면 통화해요라고 사전에 말씀드리는 게 우리의 약속. 그리고 나는 그걸 6년째 반드시 지켰다.
병실과 마을을 오가면서 병원 간병도 같이 나갔고
장기 봉사가 안 되어(직장생활) 1박 2일로 얼굴만
뵈러 들어갔을 땐 안방을 내어주실 정도로 많이
품어주셨고, 가끔 카스테라를 더 드시겠다고 더 달라고 요청하시면 당뇨라서 안 됨을 설명하면 입 삐죽거리시면서 너 가라, 라며 다른 봉사자를 부르시지만, 그럼 나 진짜 가요?라고 말을 하면 서랍 아래 있는 박카스 먹으라며 쓱 알려주신다.
박카스를 나눠 먹으며 당뇨라서 조절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드리면, 나도 안다.라고 하시지만
그게 사랑 섞은 투정이라는 걸 알기에
다음 날 아침에 가장 먼저 카스테라 먹기로
약속하며 그렇게 서로의 곁에서 살았다.
가끔 같은 호실 어르신께 집중케어 하고 있으면
산책 가련다 라며 나를 부르신다. 이 말은 어서
내게 오니라 라는 질투 섞인 공주의 요청
그럼 나는 내 지정석으로 쪼르르 간다,
할머니 침대 옆 의자가 내 지정석이니깐,
한쪽엔 여자 어르신 방, 한쪽엔 남자 어르신방
병실에 오랫동안 있었고 모두 알고 계셔서 한 번은
나의 혼담이 이뤄지고 있었다.
시집을 가야 한다는 할아버지파와
시집은 안 된다는 할머니파
점심을 먹고 잠시 쉬다 올라왔는데, 본인 의사와는
상관없는 나의 혼담논쟁
공보의를 소개해준다는 등, 아직은 시집가면 안 된다의 파와, 땅 있는 남자한테는 가야지 하는 파와. 정작 나는 생각이 없었는데 어린 처자(어르신들 입장에선)가 와서 집에를 안 가니 애정 섞인 농담판이 열린 것. 나는 조용히 커피만 홀짝홀짝 마셨다.
그게 어르신들끼리의 소통이고, 그 재미가 나로
인해 벌어지는 거면 얼마나 더 즐거운 일인가
결국 모든 결론은, 땅 있는 남자의 승리
근데, 그거 아실까? 소록도에 들어와 있어서
없는 게 아닌데, 괜히 씁쓸해지던 순간이었다.
한 번은 대장 할머니가 넌지시 말을 했다.
결혼할 남자는 있어?라고 그래서 없다 했더니
결혼하기 전까진 오지 말란다 왜요? 묻더니
여기 오니라 연애도 못하는 거 아니냐길래
여기 와도 연애하는 사람들 수두룩이고
말을 하는 내가 어찌나 씁쓸하던지, 쳇
나는 여전히 몇 년이 지났지만 그때의 장면을
떠올리면 웃음이 난다. 마음이 와닿아 마주한
사이는 그런 장면들을 만들어내니깐 말이다
그리고 내게도 어려운 말은 봉사 끝나는 날
차마 언제 다시 오냐는 말을 못 물으셔서
그냥 손만 잡고 쓰다듬으며 조심히 가거라만
말했던 나의 꽃사슴 할머니
우리 할아버지는 나 가는 날 병실에서 눈물 흘리다
간호선생님이 할아버지 우신다고 할 정도로
봉사자 때문에 우는 건 처음이라고 할 정도로
그곳에서 난 봉사자가 아닌 손녀였다.
사랑을 품고 사는 곳
그곳이 나의 꽃 친정 소록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