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이 가장 자주 하는 말 중 하나는 "엄마, 아빠는 바빠요"라는 말이다. 참 아이러니하다. 부모의 손길과 관심이 가장 절실한 영유아기, 유년기에, 정작 아이들 곁엔 부모가 없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은 혼자 자라는 법을 익히고, 그 과정에서 서운함을 느끼거나 마음이 삐뚤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물론 부모가 바쁘게 일하는 이유 또한 그 아이들을 키워내기 위함이지만, 아이들의 어린 마음이 어른의 복잡한 사정까지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법.
사실 나도 부모님이 바쁘지 않으셨던 건 아니었다. 특히, 아빠는 회사에 영혼을 바친 사람처럼 일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일했고, 자정이 넘어서야 겨우 귀가하시는 날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상하게도 외로웠던 기억이 없다. 왜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 기억 속 부모님은 내가 필요할 때 항상 곁에 있었다. 그게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는 두 분의 직장이 모두 우리 동네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빠 직장은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불과 200m 거리에 있었다. 등교할 때면 아빠의 오토바이 뒤에 타고 등교했고, 하교할 때는 아빠 회사 앞을 지나며 살짝 들여다보곤 했다. 아빠가 안 보일 때도, 그곳에 아빠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든든했고 안심이 되었다. 필요하면 아빠 회사에 언제든 찾아갈 수 있었고, 아빠의 동료들은 마치 친이모, 삼촌처럼 반갑게 맞아주었다. 엄마는 집에서 놀이방을 운영하셨다. 직장이 집이었기에 늘 집에 계셨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집에 와서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할 대상이 있다는 것, 그 인사에 따뜻하게 대답해 주는 엄마가 있다는 것이 어린 나에게는 가장 큰 정서적 안정감이었다.
엄마는 서른다섯 살이 된 나에게 여전히 말씀하신다. “너랑 동생 어렸을 때, 항상 가까이에 있었던 게 내가 제일 잘한 일이야.”라고 말이다. 예전엔 그 말을 가볍게 들었지만, 이제는 다르게 들린다. 부모가 되어보니, 그 말의 무게가 얼마나 큰지 알 것 같다. 엄마, 아빠처럼 ‘늘 곁에 있어주는 부모’가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실히 느낀다. 맞벌이를 해야하는 상황에서 우리 아이에게 어떻게 안정감을 주어야 할지는 내게 남겨진 숙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