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누구나 그렇듯 부모님이 보여주시는 삶의 모습을 당연하게 여기며 자랐다. 모든 친구의 부모님도 우리 부모님과 같을 거라 막연히 믿으면서 말이다. 그 생각이 처음으로 깨진 건 스무 살을 막 넘긴 무렵이었다. 한창 페이스북이 유행하던 시절, 내가 올린 가족사진에 초등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댓글을 남겼다. "너희 부모님은 여전히 너무 좋으시구나. 그때도 참 부러웠는데, 지금도 너무 부럽다"라고 말이다. 그 친구는 재혼 가정에서 자란 친구였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아픔까지는 헤아려 본 적이 없었다. 짧은 댓글 하나가 내게 많은 생각을 안겨주었다.
누군가에게는 내 엄마, 아빠 같은 부모가
당연하지 않을 수 있겠다
엄마가 성인이 된 내게 말씀하시길 우리 집은 넉넉한 집안은 아니었다고 한다. 가진 것 하나 없이 단칸방에서 시작한 엄마아빠의 결혼생활이었기에, 그저 성실함 하나로 회사를 다니며 삶을 꾸려왔다고 하셨다. 돈 때문에 힘든 적도 많았고, 특히 IMF시절은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그렇듯 우리 가족도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단 한 번도 우리 집이 가난하다거나, 내가 부족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답은 엄마아빠의 '삶을 대하는 태도'에 있었다.
범사에 감사하라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엄마, 아빠 그리고 나와 동생까지 우리 집 식구들은 모두 크리스찬이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에겐 '믿음의 가문'이라는 거창한 칭호를 받을 수 있는 그런 집안이랄까. 그런 가정에서 자라 서였을까. 부모님은 성경에서 말하는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말을 삶으로 살아내는 분들이었다. 좋지 않은 일이 생겨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닥쳐와도 부모님은 그저 감사하셨고 언제나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셨다. 어린 나는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자랐다. 그러다 보니 내게 세상은 감사할 것들 투성이었다. 학창 시절, 친구들이 내게 종종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너는 참 걱정이 없어 보여. 항상 행복해 보여". 그 말이 꼭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가 느끼던 행복의 뿌리에는 범사에 감사하는 부모님의 삶의 태도가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 와서야 알겠다. 우리 집이 넉넉했던 이유는 형편 때문이 아니라 마음 때문이었다는 것을. 엄마, 아빠가 내게 물려주신 것은 눈에 보이는 넉넉함이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의 고백을 할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이라는 것을 말이다. 부족함보다 감사를 먼저 보여주셨던 엄마, 아빠 덕분에 나는 세상을 원망하기보다 고개 숙여 감사할 줄 아는 어른으로 자랄 수 있었다. 이제 나도 부모가 되었고, 가끔은 어떤 어른으로 살아가야 할지,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 역시 내 아이에게 '감사의 유산'을 물려줄 수 있는 부모가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