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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마음 Jun 18. 2021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feat. 영화 '증인'과 책 '아들러의 인간이해')



완전한 의미에서 인간은 인류애라는 깊은 감정을 고양시키지 않은 채로는,
그리고 인간 존재로서의 의무를 실천하지 못한 채로는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

아들러의 인간 이해





온라인으로 효과적인 비대면 교육을 위한 스팟 기법들을 배우는 스터디에 참여했다.  파이팅 넘치는 리액션과 환호성으로 2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리는 스터디 모임이다. 다양한 토크 레시피와 레크리에이션, 주의집중의 기술들을 전해주시던 강사님께서 영화 속 명대사와 관련한 스팟을 진행할 때였다.


- '증인'이라는 영화 보셨나요? 영화 속 자폐 소녀의 명대사가 있습니다. 

-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인데요. 변호사로 열연한 주인공 정우성은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 보기 1번 좋은 사람입니다.

- 보기 2번 좋은 사람 아닙니다.(나쁜 사람입니다.)


당시 그 영화를 보지 못한 나였다. 보기 1번과 2번 모두 답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에 3번을 외치며 말했다.


- "좋은 사람이고 싶습니다?!?!?!?!?!"


평소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던 내 마음이 나도 모르게 표현됐다. 아쉽게도 오답이었다.

정답이 궁금한 사람은  영화 '증인' 을 감사해보길 추천한다. 나 역시 스터디를 마친 후 이 질문과 대답이 마음속 깊이 남아 넷플릭스를 켜고 말았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영화 '증인' 속 자폐 소녀 지우의 대사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 '지우'와 '순호' 이해하기


영화 '증인' 속 여주인공 지우는 자폐증(자폐스펙트럼)이라는 발달장애를 가진 소녀로 등장한다. 영화는 일반인과 다른 자폐특성으로 인해 지우가 학교에서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대신 지우는 한 번 본 것을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엄청난 기억력을 지녔다. 우연히 건너편 집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목격한 유일한 목격자가 된 지우가 법정에 '증인'으로 선다. 자폐 아이가 세상에 진실을 알리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세상은 완전하게 잘 발달된 신체 기관을 가진 인간을 전제로 한다. 지우를 둘러싸고 있는 영화 속 모든 문명 조건 역시 성숙한 신체 기관의 힘과 건강을 요한다. 하지만 자폐증은 중요한 신체 기관의 결함이고 결함을 지닌 지우가 법정에 서서 삶의 여러 가지 요구에 제대로 대응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자폐증에 대한 어른들의 편견, 발달장애가 있는 지우를 배려하지 않는 법정 공방 등 영화 속 여러 장면들은 보는이에게 우리 사회의 좋지 못한 어른들의 민낯을 보여준다.


심지어 '진실'을 말하는 순간에도 지우는 신체적, 정신적 질환의 이유로 법정에서 모욕을 당하고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또 다시 법정에 증인으로 설 것인가' 선택하는 과정에서 지우는 건강한 정신세계와 의지를 바탕으로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엄마, 나는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읽지? 그렇지만 나는 아마 변호사는 되지 못할 거야. 자폐가 있으니까.
하지만 증인은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증인이 되고 싶어. 증인이 되어서 사람들에게 진실이 뭔지 알려주고 싶어.

                                                                                        영화 '증인' 속 지우의 대사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서 아이의 점진적인 발달 과정에 대해  보호 역할을 하는 공동체의 존재 없이는 어떤 인간의 생명도 진화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아동과 사회의 유기적인 연계성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유아기부터 유년기, 성년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마음속에 거세게 휘몰아 닥치는 인상들이
전 생애에 걸쳐 한 인간의 자세에 영향을 끼친다.


아이의 영혼은 유년기의 여러 가지 상황과 함께 태어나며 그것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기능을 가진 통합기관을 필요로 한다. 그 통합기관인 정신은 각각의 상황을 평가하고 유기체를 차례로 지휘하면서 본능의 최대 만족을 추구하고 갈등 최소화를 도모한다. 


유아의 발달 장애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은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그 사이 아이가 느끼는 정신적 고통의 쓰라림이 아이의 마음속에서 절망적 태도로 발전하지 않는다면, 또 경제적인 문제가 더해지지 않는다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런 어려움은 어떤 정신적 상처도 남기지 않을 만큼 자동적으로 치유되는 경우도 많이 존재한다. 영화 속 지우가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것 같다. 사회와 편견 속에 갇힌 어른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스스로 극복해내는 강인한 내면의 힘을 가졌다.


뿐만아니라 사람의 감정이나 기분을 판단하는 능력이 일반인에 비해 부족한 지우는 스스로의 부족한 능력을 발전시키면서 자신의 연약함을 극복하고자 노력한다. 지우 엄마의 사랑이 지우가 건강한 정신세계를 가진 채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영향을 끼치는 환경이 되어주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을 사진을 통해 학습하는 지우


변호인으로 등장하는 정우성이 똑똑하고 퀴즈도 잘 푸는 지우를 칭찬하는 과정에서 지우 엄마에게 "자폐만 아니면 참 좋았을 텐데.."라고 이야기하는 순간 지우 엄마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말한다.


그건 지우가 아니죠. 지우가 자폐만 아니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해본 적 없어요


지우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바라보고 사랑해 준 지우 엄마의 마음이 대사에서 드러난다. 지우가 세상에 적대적이지 않은 아이로 자랄 수 있었던 큰 이유라고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가정 내에서의 성장환경 외에 또 다른 사람과 환경들이 지우의 마음속에 작은 상처를 남겼을지 모른다. 일반적인 아이의 성장과정보다 더 많은 상처를 받았거란 짐작은 하기 쉽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변호사는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다'라는 논리를 가진 지우가 변호사 순호에게 처음 던지는 질문이다. 변호사라는 꿈을 가지고 있던 지우가 제 방, 제 눈앞에 앉아있는 변호사 순호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게 어쩌면 자연스러울 수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지금껏 성장과정에서 겪어왔던 또 다른 인상들(웃으며 잘해주지만 본인을 이용하며 괴롭히는 친구, 일반학교에서 받았던 놀림)이 지우 내면의 상처로 자리 잡아 경계와 의심이 되었을 수 있다. 자연스럽게 그런 경게와 의심을 순호에게 질문으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신혜는 늘 웃는 얼굴인데 나를 이용하고, 엄마는 늘 화난 얼굴인데 나를 사랑해요.
아저씨는 대체로 웃는 얼굴이에요. 아저씨도 나를 이용할 겁니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대사다. 영화에서는 자폐증을 가진 아이라면 사람의 감정과 기분을 분석하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정도의 질문을 한다는 것은 사람의 감정과 기분을 완벽하게 분석하고 있는 것 아닐까? 현실 속에 이런 사람이 얼마나 많던가. 웃는 얼굴을 한 채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오지만 사실 나를 이용하는 그런 사람 말이다. 한 번이라도 이런 사람을 경험하게 된다면 이후에 웃으며 다가오는 또 다른 누군가를 신뢰하기에 앞서 의심과 경계의 마음이 먼저 앞선다.


그렇다면 지우의 질문에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등장인물 순호는 좋은 사람일까?


정신생활은 그 근본에 있어서는 변하지 않는다.
개인들은 유년 시절이나 성인이 된 후에나
똑같은 생활 궤적을 따라가며 
똑같은 목표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속 순호는 배우 정우성이 연기한다. 한때 민변의 파이터로 불렸으나 아버지의 보증으로 인한 빚을 갚아나가며 현실에 순응하고 현실과 타협해가는 대형 로펌 변호사다. 더 잘 나가는 변호사가 되기를 바라며 유력한 살인 용의자에게 무죄를 받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변호한다. 그렇지만 본인의 변호로 무죄를 받아낸 용의자가 실제 살인자였음을 알게 되고 그는 지우의 '진실'을 밝히는데 힘을 쏟아주는 정의로운 모습을 보인다.


변호인으로서의 옷을 벗어야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정의'의 기준을 두고 실수했던 일을 만회하고자 행동하는 모습에서 아들러가 말한 "참회하는 죄인"의 모습이 이런 것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는 삶의 그 수많은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사람, 
일상의 늪에서 자신을 구해 내고 더 나은 길을 찾아가는 사람, 
나쁜 길로 빠질 수 있는 유혹을 벗어던질 수 있고 
자신을 고양시킬 힘을 찾아내는 사람, 
삶의 좋은 면과 나쁜 면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 누구도 그와 비교될 수 없고, 
아무리 정의로운 의인이라도 그에 미치지 못한다. 



순호 역시 좋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아버지의 영향이 작용한다. 

"돈 많이 벌면 좋은 거냐?" "네가 좋으면 좋은 거네~ "라고 말하는 대사도 인상적인데 순호 아버지는 영화 말미에서 순호의 선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존재다.




아들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아버지가 남긴 손편지 속의 따뜻한 마음과 가르침은 순호가 잃어버릴 뻔했던 삶의 본질과 가치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자신의 근본적인 정신세계의 궤적에 따라 다시 건강한 삶의 목표를 추구하게 만든다.


정의라고 부르는 것들, 인간 성격의 가장 귀중한 특성으로 생각되는 것들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사회적 요구에서 발생하는 조건들을 충족시키는 것임에 다름 아니다.  이런 조건들은 우리의 영혼에 형태를 부여하고 활동과 방향을 결정한다.  신뢰성, 충성심, 솔직함, 진실에 대한 사랑, 그 밖의 것들은 공동생활의 보편타당한 원칙에 의해서만 설정되고 유지될 수 있는 미덕들이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은 그 미덕들을 잘 지키며 사회적 존재로서의 기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 '증인' 속 장면들과 [아들러의 인간 이해]를 읽으며 마주한 문장들을 간단하게 연결해봤다.

'인간 존재로서의 의무', '좋은 사람'에 대한 고찰뿐만 아니라 '편견'과 '진정한 소통'과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하는 좋은 영화 '증인' 꼭 한 번 감상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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