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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언 Sep 24. 2020

그 눈물은 내 손이 보낸 감사 인사였다

서른아홉 여행에서 깨달은 것들

몇 년 전 서른아홉을 위한 이벤트에 응모했고 당첨이 되었다. 그 당시 나는 멘털이 탈탈 털리던 회사생활을 막 정리하고 혼자 여행을 떠나려고 준비하던 중이었다. 마침 일정이 딱 맞아 혼여의 마지막을 제주에서 새로운 동갑내기 친구를 만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혼자 여행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특히나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서는 나의 모든 신경은 아이들을 케어하는 데 사용되다 보니 여행 내내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들이 사뭇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누군가를 챙기고 정리하며 다음 시간을 준비하던 나의 신경이 나만을 위해 사용되니 책 읽을 시간도 늘어나고 생각할 시간도 많아져 즐거웠다. 그렇게 나를 채우며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했다.


일주일의 여행 기간 동안 비도 맞고 많이 걸어 다소 초췌한 모습이었지만 마음만은 설레었다. 맑디맑은 제주에서 만날 새로운 사람들에 대한 기대도 한껏 부풀었다. 스무 명 정도 되는 서른아홉의 여자들이 모여 곶자왈을 걷고 식사를 하고 그림도 그리고 춤도 추며 끝도 없이 이어지는 대화의 시간을 보냈다. 어디를 가나 무리에 속해 이야기를 잘 나누는 사람도 있고 무리 속에서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이들도 있다. 프로그램이 맞는 사람도 있고 맘에 들지 않는 사람도 있고 목소리가 커지기도 하고 웃음소리가 이어지기도 하며 시간이 흘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프로그램은 서른아홉의 여성들, 그러니까 가정이 있건 없건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시간을 보낸 여성들이 마흔을 맞이하며 겪을 성장통을 어루만져주는 무척 고마운 프로그램이었다. 당시엔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 낯선 이들과 내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야 하나 싶었는데 그런 시간을 갖고 나니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나의 사회생활을 돌아보며 반성도 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도 가늠해보는 어디서도 해보지 못할 소중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마지막 프로그램은 곶자왈에서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을 몸으로 맞으며 내 몸의 이야기를 듣는 행위 치료였다. 갑자기 춤을 추라고 하지를 않나 손과 발을 주무르며 대화를 해보라고 하지를 않나, 심리상담 한번 받아본 적도 없는 나 같은 생짜 일반인에게는 너무나 낯선 시간이었다. 말 잘 듣는 나는 과정 내내 집중해서 참여했고 강사가 의도한 일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잠시나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날의 곶자왈

걷기 좋아하고 조몰락거리기 좋아하는 내가 정작 내 몸인 손과 발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한 적이 없구나, 마음이 힘들면 여행을 가고 머리가 힘들면 달리거나 잠을 자며 쉬는 방법을 알아줬으면서 정작 그것들을 위해 움직여주는 손과 발의 컨디션은 언제 한번 주의 깊게 들여다보지 못했구나, 싶은 생각 말이다.


그리곤 고맙다 고맙다, 수고가 많다, 네 덕에 내가 이렇게 살아간다,라고 이야기해주며 프로그램이 흐르는 대로 움직였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 다른 사람의 손에 내 손을 맞대며 손들에게 수고했다고 이야기해주는 순서가 흐르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 시작했다.


눈물이 흐르는 이유를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나의 감정은 전혀 울 생각이 없었다. 나는 눈물이 나는 이유를 전혀 몰랐다. 눈물은 흐르는데 이유를 모르니 내 표정은 정말 이상했을 거다. 강사 선생님을 찾아가 다짜고짜 물었다.

"도대체 제 눈물은 왜 흐르는 건가요?"


선생님은 '당신이 모르는데 제가 그 이유를 어떻게 알겠냐'라고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반문했다. 눈물은 흐르는데 이유를 모르겠고 창피하기도 한 너무나 이상한 시간이 흘렀다. 나의 이 모든 감정과 상관없이 눈물은 어느 순간 멈췄고 숨을 고르는 나에게 여러 가지 생각이 휘몰아쳤다.


작은 나의 발은(225mm) 내 몸과 무거운 배낭을 모두 짊어지고 이번 여행도 걸어내었다. 걷기를 좋아해 어디를 가든 잘 걷는 나는 아주 가끔 족욕을 하거나 발 마사지를 하며 피로를 푼다고 생각했었다. 발에게 고맙거나 수고했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그거 발이 하는 일이 그것이니 그러려니 했던 것 같다. 당연한 것, 손과 발은 고맙기보다 당연한 것을 해내었다 여겼던 것이다.


프로그램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가 없어 진주까지 비행기를 타고 진주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었다. 집으로 오는 길이 무척 멀었던 건데, 버스에서 혼자 3시간을 멀뚱히 앉아 그 생각을 계속했다.

'왜 눈물이 났을까'


집으로 오는 시간 내내 생각한 결과 그 눈물은 내 손과 발이 보낸 감사의 인사였다. 서른아홉 해 동안 몰랐겠지만 이제라도 알아줘서 고맙다고 손과 발이 보낸 감사의 메시지라 생각하기로 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당연히 해내야 하는 일은 없다. 그것이 비록 손과 발일지라도. '희생함으로 해서 누군가가 조금 더 편하고 행복하다면 내가 조금 힘들어도 그것을 해내어 주리라'라고 생각한 것이 있을 뿐, 무엇이니까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은 없다.


그리고 또 하나, 몸과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일 것.

나의 머리나 글의 필터를 거쳐 나오는 스토리 말고 몸과 마음에서 오는 이야기를 찾아 들어주고 행해줄 것.


서울에 도착해 프로그램을 진행하셨던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내 이야기를 들으시곤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글을 쓰며 사는 사람들은 머리에 드는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살기 때문에 몸에서 하는 말이 머리에 드는 생각인지 마음의 이야기인지 몸이 하고 싶은 말인지 전부 머리를 통해 인식해버린다고(몇 해가 지나 기억이 가물하지만 이런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내가 몸이 하는 말을 너무 늦게 인지한 게 아닌가 싶다.


몸이라고 통칭하지만 사실 각각의 역할을 가진 나의 일부이니 이제라도 또 다른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살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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