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로 이뤄진 취미 공유의 로망
어린 시절 <스타워즈>와 <스타트랙>이 너무 재밌었다. 그 시리즈들이 가진 심오한 의미까지는 몰라도 그저 저 멀리 있는 우주에서 일어날 수도 있을지 모를 그런 일들이 그저 신기했다. <엑스맨>과 <어벤저스> 시리즈를 기다렸고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의 원작을 읽으며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했다. 그 후에도 <닥터 후>와 <셜록홈즈>를 챙겨보고 <데스노트>와 <왕좌의 게임>의 세계관에 물개 박수를 보냈더랬다. 그 시절 보통 수준의 영화 관람과 독서를 즐기던 나 같은 사람들이 챙겨본 것들은 좀 챙겨봤던 것 같다.
큰 아이를 임신했을 때 나는 <트와일라잇> 시리즈에 흠뻑 빠져있었다. 책을 몇 번 읽고 단 한편 나왔던 영화를 몇 번을 봤는지 모른다. 뱃속의 큰 아이는 에드워드가 벨라를 위해 차를 손으로 막는 장면이 나오면 배에서 발길질을 해댈 정도였으니, 진통을 하러 들어가며 노트북에 그 영화를 담아갈 수밖에 없었다.
많은 육아서를 읽고 직접 육아를 겪으며 인상 깊은 것 중 하나가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였다. 이기적이고 호불호가 명확한 편인 엄마를 가진 우리 아이들은 안타깝게도 엄마가 좋아하는 다양한 활동을 어렸을 때부터 함께 해왔는데, 지금껏 함께 하지 못한 로망이 하나 있었다.
바로 아이와 함께 <해리포터> 시리즈 책을 읽고 영화 함께 보기.
명절만 돼도 영화채널에서 시리즈를 밤새도록 틀어주는 시대에 아직까지 왜 아이들과 함께하지 못했냐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가 ' <해리포터> 시리즈의 전반적으로 어두운 부분'을 싫어했다. 학창 시절에 다 읽은 <해리포터> 시리즈 책은 지금 집에 없는 데다 무섭다는데 영화를 어떻게 같이 볼 수 있겠는가. 로망은 로망일 뿐 이뤄지지 못한 채 그렇게 사라지고 있었다.
몇 년 전 출장으로 떠난 영국에서 '해리포터 스튜디오'와 옥스퍼드를 방문했던 적이 있다. 해리의 지팡이를 사 오고 잔뜩 담아온 영상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었지만 그때도 시리즈를 함께 즐기지는 못했다. 작년에 오사카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갔을 때 새벽같이 달려가 아이들과 처음으로 탔던 어트랙션은 다름 아닌 '해리포터 앤 더 포비든 저니'였는데 직접 타보고 호그와트 성과 야간 퍼레이드의 퀴디치 장면을 보고 나서야 조금 관심을 가져 주셨다.
매일 집콕에 할 일도 점차 고갈되어가는 요즘, 슬슬 함께 영화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묵혀둔 <해리포터> 영화들을 준비해 이번 크리스마스 연휴에 하루 한 편씩 보기 시작했다. 결과는, 오래 기다린 만큼 아이들은 크게 호응해주었고, 개인 톡 프로필에 '왜 이제야 <해리포터>를 알아봤는지 모르겠다'는 문구와 함께 어린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의 사진을 설정해두기까지 했다.
다들 알다시피 <해리포터> 시리즈는 영화 한 편이 3시간에 달한다. 맘먹고 봐야 한다는 말인데, 연휴에 매일 한 편씩 챙겨 보며 옛 추억을 되살리고 있다. 다시 보니 옛날에 놓친 퍼즐 조각 맞추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 스포 없이 아이의 궁금증을 유발하는 말을 해대는 재미도 발견하고 있다.
오늘은 우리 집 웰컴 테이블을 해리포터 특집으로 꾸며봤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치우고 허전하던 곳에 기존에 있던 아이들 사진을 꾸미기 전 '미나리마 스튜디오' 엽서와 해리포터 홀로그램 신문, 지도와 마그넷으로 꾸미니 아이들이 무척 좋아한다.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와 일을 병행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을 고민하고 찾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꽤 소비된다. 아직 세상에 대한 관심이 활짝 열려있는 아이들에게 어떤 것을 전해줄지는 부모의 몫이다. 보고 경험하고 상상한 만큼 아이의 세계는 커질 것이다. 언젠가 나는 아이들 손을 잡고 런던 해리포터 스튜디오에 가서 영화를 만들 때 이런 과정을 거쳤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위해 아이디어를 냈었는지 이야기 나눌 것이다. 에든버러에 가면 엘리펀트 하우스에 들러 에든버러 성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을 하고 조앤 롤링의 영감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함께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를 보지 않았다면 이루지 못했을 이야기다. 다음에는 어떤 시리즈로 아이와 함께 추억을 만들어갈지 즐거운 고민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