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못하는 것을 글로 쓰기 시작한 이의 이야기
출근길 남편의 한 마디에 발끈했다. 남편의 로망이었던 아침상을 결혼 12년 차에 차려주기 시작한 휴직자 와이프는 식탁 앞에서 남편의 그 한 마디에 갑자기 머릿속을 떠돌던 수많은 생각들이 일렬종대로 모여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복직을 앞두고 복잡한 심정을 풀 데가 없어 힘들었던 것 같다. 히스테리를 부리듯 카톡으로 요 며칠 쌓였던 이야기를 잔뜩 보내고 나니 내심 후련해졌다.
그리고 보낸 마지막 카톡 한 문장.
"여보도 힘들겠다. 이런 감정의 백만장자 부인과 사느라."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화가 나고 감정이 격해지면 메모장을 펴고 내가 지금 왜 화가 나고 이런 기분이 드는지 구구절절 적기 시작했다. 말보다 글이 편한 사람이라 그랬던 건지, 나의 상태를 스스로도 잘 모르기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화가 난다고 아무에게나 아무 때고 화를 낼 수도, 속상하다고 아무 때나 울 수도 없으니 직장인이 가져야 할 스트레스 해소에 적당한 행동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회사생활을 하며 가끔 내가 감정의 쓰레기통인가, 싶었던 적이 있다. 내가 왜 상사의 스트레스를 받아주며 그를 위로해야 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나의 감정을 차단하고 회사를 다녔던 것 같다. 그리고 막상 나의 감정을 전달해야 할 순간에는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전달하고 후회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지금처럼 자신의 감정을 알고 표현하고 살자는 에세이가 흔치 않던 시절, 나는 아이를 낳고 수많은 육아서를 읽으면서 아이에게 감정의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조언을 읽고 나서야 '아 내가 그동안 다른 사람의 감정의 쓰레기통 역할을 자처하고 있었구나'하고 깨달았다.
감정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다 보니 나의 감정은 물론 타인의 감정도 느껴진다. 나의 이 행동이 그 사람에게는 어떻게 느껴질까를 또 생각하며 아까운 나의 시간을 허비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 회사에서 겪은 억울한 일을 누구를 붙잡고 이야기해도 내 감정을 다 전달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구구절절 써내려 갔던 것.
SWOT 분석을 하듯이 내가 지금 화난 이유와 배경, 내가 이렇게 행동했을 때의 결과와 예측까지 그냥 생각의 흐름대로 써내려 갔다. 그랬더니 어느새 나의 화가 난 감정은 사그라들고 화가 난 그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화가 풀림과 동시에 내가 잘못한 부분도 눈에 들어오고 다음에는 이렇게 행동해야겠다는 생각까지 났던 것.
휴직 전 회사에서 나는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였다. 알 수 없는 권위를 내세우는 새로 온 상사는 나를 비롯해 회사 내에 여러 명에게 비슷한 행동을 했고 결국 징계위원회까지 열렸었다. 처음 그 상사와 일을 시작하고 상황에 대한 원인도 이유도 알 수 없이 당했을 때 내가 한 일은 그 상황에 대한 세세한 설명과 그때의 나의 감정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또한 자꾸 위축되는 스스로를 위해 휴대폰 메모장에 '내가 옳다, 내 생각이 맞다, 이기적이어도 된다, 나는 감정의 쓰레기통이 아니다'라고 적고 수시로 읽었다.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해 했던 행동이었지만 다시 읽어보니 참 짠하다. 여전히 말보다 글이 편하고 매 순간 느끼는 감정은 무수히 많은 사람이 하는 소극적 반항 중에 하나일지 모른다. 하지만 감정을 글로 풀어내는 작업은 의외로 장점이 많다.
공간의 제한은 물론 시간의 제한도 없고 간편하다. 나 혼자만 읽는다는 행위 자체도 자유롭게 털어놓을 수 있다. 마음속에 어질러진 생각과 감정들을 그대로 쓰기만 하면 되니 그것들이 스스로 정리가 된다.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다독이며 종이에 써 내려가 보자. 화든 슬픔이든 분노든 차분히 정리가 되어갈 것이다. 마음의 이야기를 언어로 바꾸어 내는 그것만으로도 감정은 정리가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