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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언 Jun 22. 2020

이건 나의 몇 번째 문일까?

어떤 문이라도 닫아야 새로운 문을 열 수 있지

페이스북 '과거의 오늘' 기능이 있어 작년 혹은 몇 년 전 나의 일상이 보인다. 과거의 기록을 보는 즐거움도 있지만 가슴 아픈 일과 고민스러운 일까지 덩달아 생각나 참 시간이 제일 무섭다 싶다. 그때 나에게 중요한 사건도 시간이 흐르면 부질없는 일이 부지기수니까. 요즘, 또 한 번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시간을 기다리며 다시금 그 '문'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하고 싶은 일이 있지만 당장 결정하기 어려워 미루고 미루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급하게 결정하게 될 때가 있다. 어렸을 때는 그 마지막 상황을 받아들이고 결정을 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나이를 조금씩 먹고 나니 그렇게 결정하는 것 또한 나였음을, 그것이 나의 방식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결단력 있게 딱 결정하고 쿨하게 인정하고 수긍해버리면 되었을 일을 나는 미련을 갖고 기대를 버리지 못해 늘 아쉬워했다.


언젠가 머릿속에 무수히 많은 폴더의 문을 수시로 여닫고 일을 해내야 비로소 유능한 팀장 혹은 대표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실제로 그분은 그 많은 폴더를 하루에도 수십 개씩 열고 닫으며 일을 깔끔하게 처리했다. 부러웠다. 늘 문을 반쯤 혹은 약간 열어두고 다니는 나는 다시 돌아가 빼꼼히 보기도 하고 닫지도 열지도 못한 채 바라보기만 했던 적도 많았으니까.


그래서 그분처럼 좀 냉정하고 결단력 있게 행동하려고도 노력했었으나 역시 가랑이 찢어지는 것처럼 힘든 일이었다. 그렇게 내 스타일을 돌아보고 그 안에서 장점을 골라 더 극대화시키고자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분은 그렇게 나에게 좋은 자극제가 되어 주셨다.(사실 자극만큼 아픔도 주셨던지라 꽤 한참 힘들었었지)

'문' 하면 떠오르는 <나니아 연대기>의 상상이 시작된 바로 그 문!

문은 사전적 의미로 '드나들거나 물건을 넣었다 꺼냈다 하기 위하여 틔워 놓은 곳'이다. 문은 열어야만 비로소 들어가거나 안에 있는 것을 꺼낼 수가 있다. 또한 문을 닫아야 다른 문을 또 열 수 있다. 나처럼 닫지 않고 나오면 다시 돌아가 헤매거나  지금 새롭게 연 문에서 자꾸 지난번 문을 찾게 된다. 


돌이켜보면 직장생활을 하며 재밌을 것 같거나 배워보고 싶은 분야가 있어 도전을 한 적이 꽤 많았던 것 같다. 보통은 취미로 배우거나 회사를 다니며 서브로 새로운 일을 시작하곤 하는데, 나는 이상하게 취미보다는 업무 반경을 바꿔버렸던 경험이 여러 번 있었던 것이다. 내가 가진 스킬은 정해져 있지만, 그걸 통해 할 수 있는 분야가 너무나 다양했고 그걸 통해 새로운 분야를 접하고 경험하는 것이 무척 재미있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그런 도전은 자의적이기보다 타의적이거나 환경적인 부분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자꾸 문을 제대로 닫지 못하고 돌아가기도 하고 아쉬워하기도 했던 것 같다. 


안정적인 회사에서 나와 맞지 않는 부분을 발견하고 나니, 나의 머릿속에는 또다시 문이 떠오른 것이다. 

부당하고 맞지 않는 것을 참고 다녀야 할 만큼 나는 굳건하지 않으며 지금 이 문을 닫지 않고서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문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문이라는 건 나이를 따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러면 이건 나에게 다가온 몇 번째 문일까?


이왕 문을 닫을 거면 예전처럼 조금 열어두지 말자. 꽉 닫아버리고 이제 내가 잡은 문고리를 힘껏 당겨 새로운 문을 열어보자. 또 모르잖아? 그 문에서 내가 그토록 원했던 것들을 만날 수 있을지.


나이 좀 먹었다고 겁먹지 말자. 나이 먹어도 새로운 문 뒤에 어떤 일이 있을지 기대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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