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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언 Oct 23. 2019

건강한 이별 프로젝트

슬프지만 좌절하지 않는 우리만의 추모식

브런치 다음 글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온 동네를 벗어나 낯선 환경으로 옮긴 아이들을 위한 글을 써야지,라고 생각했었다. 아이가 건강하게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고민도 했었다.

그런데.

결국 그 건강한 이별은 준비되지 못한 나에게 불쑥 다가와버렸다. 매일 만나고 매일 대화하고 매일 웃던 나의 친한 친구가 갑자기 먼저 하늘로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힘들어도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이야기했던 엄마가 불쑥 엉엉 울기도 하고, 멍하게 있기도 하며, 성당에서 대성통곡을 하기도 했던 것.

여전히 아이에게 배우는 부족한 엄마가 건강한 이별 중인 그간의 일상을 기록해둔다.


2017년 2월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조금 슬픈 일이지만 곧 다가온 설렘을 알기에 어른들은 이별을 어느 정도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첫 이별을 준비하는 꼬마 아가씨는 오늘의 맑은 하늘이 더없이 슬펐나 보다.

삼 년을 매일 다닌 정든 어린이집 친구들과 이별을 해야 하는 것이 이제 여섯 살을 맞이한 아이에게는 힘든 일이었을 터. 출근 준비하는 엄마를 안고 계속 눈물을 흘릴 만큼 아이는 오늘의 이별이 어렵다.

하지만 엄마는 이 이별에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 힘들지만 아이는 스스로 겪고 이겨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고작 엄마가 출근하며 한 말은 새로운 유치원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으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현관문을 닫으며 아차 싶었다. 그건 아이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일 테니까.

그보다 "오늘 선생님과 친구들 꼭 안아주고 슬프면 울어도 돼. 너무 슬프면 엄마에게 전화도 하고. 대신에 다녀와서는 아빠랑 엄마 회사로 와서 맛있는 거 먹자!" 라며 준비해둔 일정을 이야기해줄걸 그랬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즐겁게 이별할 수 있게 말이다.

이별은 슬프다. 그렇다고 안 하고 살 수는 없다. 세상에 많은 것을 배워야 하는 아이들은 이별도 배워야 한다. 나 역시 그랬을 테고. 이왕 배울 거 이별도 더 건강하게 배웠으면 좋겠다. 건강한 이별이란 슬프지만 좌절하지 않고 다음을 기약할 수 있으며 그것으로 인해 다음을 배울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이별도 다 견뎌낼 수 있을 것처럼, 이별은 조금 가슴 아프지만 견뎌낼 만한 것이라며 누구나 다 하는 것이라고 인생의 어른처럼 쉽게 말을 했었다. 그 이후로도 많은 이별에.

다시 만날 약속을 하고 잠시 헤어지는 이별을 겪으며 우리는 얼마나 단단해질까. 혹시 단단해진다는 것이 이별에 무뎌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또 만나자는 진짜 진심이 담기지 않은 인사를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하는지 모른다. 모든 관계에 애정을 쏟으며 살아갈 수 없기에 적당히 적당히 그러나 예의 바르게 우리는 그렇게 지낸다.


이사를 준비하며 회사와 집안일로 정신이 없던 그때, 그 친구와 함께라 매일이 즐거웠다. 나에게 이런 친구를 지금이라도 만날 수 있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도 했었다. 한동안 남편과의 대화에서 내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그 사람이 덕분에 바쁘고 상처 받은 회사의 일들이 사르르 녹아내리곤 했었지.


이사 전날, 휴가를 앞둔 나는 잘 다녀오라는 친구의 카톡을 받고 즐거운 인사를 나누었다. 다음 날, 회사 직원의 연락을 받고 그것이 둘이 나눈 마지막 대화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나와 메시지를 주고받은 친구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혼수상태가 되었고, 일주일도 버티지 못한 채 장기기증으로 또 많은 사랑을 나누어 주고 하느님께로 먼저 떠났다. 드라마 도깨비에 나오는 이생의 마지막 차를 마시고 긴 계단을 올라갔을 것이다. 분명 그렇게 좋은 곳으로 하느님을 만나러 갔을 것이다.


같은 날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떠나간다. 순리고 섭리다. 너무나 알지만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이기는 이렇게 다 큰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어렵다. 이런 갑작스러운 이별을 처음 접해본 나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자주.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갑자기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눈물을 뚝뚝 흘리고 만 것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이모부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그렇게 갑자기 엉엉 울지는 않았던 것 같다. 관계와 상관없이 이별의 온도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갑작스러운 온도차를 견뎌내기에 나는 아직 너무 부족했다.


그 후 회사에 가는 일은 곤혹이었다. 매일 생각나고 매일 눈물이 났다. 하지만 다들 그렇게 견뎌냈다.

그러다 갑자기 그녀가 함께 뛰자고 했던 춘천마라톤 생각이 났고, 이제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는 그녀를 위해 내가 대신 뛰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춘마 경치가 가장 좋은 것 같아요."라고 웃으며 이야기했던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 남편 없이 마라톤 한번 뛰어보자, 그녀와 함께'


그리곤 나의 생각을 함께 슬퍼하는 동료들에게 털어놓았고, 하나 둘 함께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들 마라톤은 처음이었지만, 나의 마음을 이해하고 나의 제안에 흔쾌히 함께 도전해준 것이다. 번호표에 그녀의 사진을 작게 넣어서 사진으로라도 보고 싶었던 춘마의 가을 풍경을 보여줘야지. 그렇게 우리만의 추모식을 해야지.


나는 바로 움직였다. 팀명을 정해 춘천마라톤 등록을 했고, 단톡방을 만들어 조금씩 달리기를 시작해보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별일 아닌 것 같은데 이 작은 행동들이 우리 모두에게 작은 치유의 불씨가 된 것 같다. 나는 이사 준비로 멈췄던 운동을 다시 시작했고, 운동량을 체크하는 시계도 마련한 동료도 있고 조금씩 달리는 동료도 있었다. 맞다, 몸이 움직이면 머리도 바뀌고 생각도 바뀐다. 이렇게 우리는 또 하나를 이뤄내고 있었다.


그렇게 두 달이 흐른 며칠 전, 드디어 마라톤 사무국에서 보낸 공식 티셔츠와 번호표가 도착했다.

팀명 "당신과 함께 뜁니다" 

그리고 먼저 신청했던 친구의 번호표도 도착했다. 고민 끝에 내가 그녀의 번호표와 내 번호표를 앞뒤로 붙이고 달리기로 했다. 기록보다 친구와의 추억을 그리며 친구가 보았으면 행복해했을 그곳을 동료들과 함께 달릴 것이다. 준비도 미흡하고, 날씨 예측도 불가능한 데다, 멀리 춘천까지 새벽에 출발해야 하는 일정이지만 우리는 기대하고 있다. 그렇게 우리만의 추모식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을 너무 늦게 경험한 나는 이렇게 찐하게 이별을 공부했다. 여전히 생각나고 그리운데 그것이 건강한 이별을 한 결과라 생각된다. 충분히 슬퍼했고 조금 더 기억하려고 한 스텝 더 나아간다. 매일 겪던 일상이 쉬운 것이 아님을, 당연한 것이 아님을 이별을 통해 다시 한번 배운다.

지난봄 세월호 추모미사에서 들었던 충분히 애도해야 한다는 신부님 말씀을 이제야 제대로 이해한 것 같다. 세상살이 제대로 배울 게 너무 많다.


여러 사정으로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몸도 마음도 힘든 여름을 보낸 후라 아직도 일상의 루틴을 제대로 잡아가지 못하고 있지만 조금씩 준비해 처음 잡았던 마음가짐으로 돌아가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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