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습작

그 닭고기 공장 2

사진은 웃고 있지만 난 하나도 신나지 않다.

by 채리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Hanging이란다.


일단 왜 행잉을 해야 하는지 설명해야 할 것 같다.


떨어지는 닭피를 맞으며 닭털을 뽑을 때도 그리고 내 등을 타고 올라오는 엄지손가락 만한 호주의 바퀴벌레에 익숙해지며 닭장을 닦을 때도 위안거리가 있었다면 Hanging을 안 한다는 것이었다.

Red zone에서 일을 시작하고 제일 먼저 나에게 충격을 주었던 건 유니폼, 심지어 얼굴에도 닭똥을 묻히고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는 사람들을 봤을 때였다. 하지만 이젠 나도 그 일을 해야 했다.


처음에는 그냥 죽일 수 있는 닭을 왜 굳이 거꾸로 메달 아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이게 '할랄'이라는 무슬림 문화라고 한다. 동물은 살아있을 때 다친 곳이나 장애 없이 건강한 상태로 머리가 땅을 볼 수 있도록 거꾸로 매달려서 무슬림에 의해 목이 갈려 죽은 후 몸에 모든 피가 제거돼야 한단다. 무슬림은 돼지고기뿐만 아니라 할랄로 죽은 동물이 아니라면 먹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할랄 음식이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 무슬림이 아니더라도 할랄 음식을 찾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내가 무슬림이 아니니 다행히 닭의 목을 벨 필요도 없고 벨 수도 없었다. 하지만 살아서 그리고 살고 싶어 발버둥 치는 닭의 다리를 잡아서 거꾸로 메다는 게 내가 6개월간 할 일이었다.

3000명이 넘게 일하는 큰 공장에서 30명이 이 일을 하고, 10명이 나와 같은 워홀러인데 그중 한 명이 왜 하필 나일까 하는 이기적인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이게 내가 목표하고 온 공장이다. 식당일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건 진작에 깨달았고 정말 이것도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물론 권리도 없지만 혹시 잘릴까 봐하기 싫다고 말하지도 못했다.

행잉 방에 들어갔다. 어두웠다. 그리고 닭 냄새가 코를 찌르고 시끄러웠다.

닭이 어두우면 겁을 먹어서 움직이지 않는단다. 그래서 파란불을 켜고 일을 했다. 하지만 닭에게 어두우면 사람에게도 어두웠다. 그리고 밀폐된 공간에서 선풍기를 켜놓고 일을 했기 때문에 공기가 좋지 않아 일할 때는 꼭 특수 마스크를 써야 했다.

닭이 아무리 멍청하다고 하지만 적어도 자신들이 곧 죽을걸 알고 잔뜩 겁에 질려있었다. 그리고 닭의 다리를 잡는 순간 똥, 오줌 할 것 없이 아무 곳에나 쌌다. 앞치마를 입고 손에 토시도 꼈지만 아침에 지급받은 2개의 유니폼은 한시간만 일하고 나면 옷은 이미 닭똥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행잉을 하는 사람들이 점심시간에도 옷에 닭똥을 묻히고 밥을 먹었던 것이었다. 똥이 눈에 들어갈 때도 잦아 닭을 거는 기계 뒤에는 눈을 닦는 수도가 따로 있을 정도였다.


행잉 방에 들어가는 순간 이건 정말로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행잉방에서 쓰던 마스크와 보호경



처음에는 더러워서가 아니라 미안해서 닭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런데 공장 구조상 내가 내 역할을 하지 못하면 뒤에서 누군가가 내가 놓친 만큼 대신 닭을 걸어야만 했다. 큰마음먹고 닭다리를 잡았다. 장갑을 2개나 꼈지만 살아있는 닭의 온기가 느껴졌다. 내가 망설이는 만큼 또 뒤에서 누군가는 일을 더 해야만 했다. 자기 할 일만 하기에도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다 보니 처음 일을 시작한 내가 만드는 실수에 대해서도 그리 관대하지 않았다. 내가 메달 아야 하는 닭을 몇 개 놓치자 뒤에서 누가 자꾸 놓치냐고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다시 닭을 잡았을 때 그 닭이 나에게 똥을쌋다. 살면서 맞아본 첫 똥인 것 같았다. 처음엔 뜨거웠지만 곧바로 차갑게 식는 게 느껴졌다.

정말로 역겨웠다.

하지만 몇 년씩 그곳에서 일한 사람들에겐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듯 보였다. 아무도 닭똥을 맞은 나를 신경 쓰지 않고 자꾸 놓치지 말라며 소리만 질렀다. 집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호주에 올 때 왕복 티켓을 사놓지 않아 집에 가려면 일주일은 더 일해야만 했다.


asasdss.PNG 역겨울수도 있으니 자체 모자이크 :)



행잉을 시작한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아 매니저가 나를 불러 닭이 무섭냐고 조롱하듯 물어봤다. 그리고 나를 다시 닭털 뽑는 곳으로 보냈다.

30분 전까지만 해도 내가 닭털을 뽑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하였다.

닭털을 뽑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Red zone에 있는 사람들은 같은 돈을 받으며 쉬운 일을 하는 나를 싫어하기 시작했고 쉬는 시간에도 아무도 나에게 말을 시켜주지 않았다.

돈은 많이 벌지만 정말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의 고생은 예상하고 온 워킹 홀리데이였다. 하지만 이 건 너무한다.

일이 끝나고 공장을 나가는 길에는 White zone에서 일하는 것을 창문 너머로 볼 수 있었다. 웃으며 일하는 그들이 부러웠다. 마치 대학교 새 학기 같은 분위기였다.


나는 다시 행잉 방에 들어가기 하루에 30분 정도씩 일을 해야만 했다. 이제는 내가 욕을 먹던 말던 매니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점점 하루에 행잉 방에서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더니 며칠 되지 않아 나의 부서는 완전히 행잉으로 옮겨져 하루에 8시간 30분씩 닭을 걸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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