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닭똥을 맞으며 일하는 게 그리 기분 좋지는 않지만 무서운 건 이것도 적응이 되었다. 계속 욕먹다 보니 닭에게 있던 미안한 마음도 사라져 죄책 감 없이 닭의 다리를 잡을 수 있었지만 일은 아직 서툴렀다. 그래도 그만둘 수 없었던 가장 큰 평균 150만 원씩 매주 화요일 받았다는 것이다. 이게 나에게 마약이었다. 다행히 주급을 능력제가 아닌 시간제로 받아 지각, 조퇴를 하지 않는 이상 일을 못해도 남들과 똑같은 돈을 받을 수 있었다.
공장의 시스템은 월요일에는 지난주의 주급을 확인할 수 있고 화요일에는 주급이 통장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3일만 더 일을 하면 주말이다. 하지만 목요일쯤 되면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고 이번 주까지만 일하고 그만두리라 다짐한다. 하지만 주말에 쉬다 보면 이러고 있는 것보다는 닭똥을 맞으면서 욕 좀 먹더라도 일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고 다시 월요일에 일을 나가 주급을 확인하고 화요일에 돈이 통장으로 들어오면 다시 한번 끝까지 일하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그리고 목요일에는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하고...
여전히 일은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물질적으로는 확실히 안정됐다. 이젠 거실 생활도 접을 수 있었다. 내가 혼자 쓸 수 있는 방으로 옮기지는 못했지만 거실보다 넓고 사생활이 보장되는 차고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차고라고 하지만 집주인이 임대료를 조금 더 벌기 위해 바닥에 장판도 깔고 침대도 들여놔 지낼만했다. 바퀴벌레가 가끔 나오기는 했지만 이젠 바퀴벌레는 나에게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모기도 많았지만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고 자면 나를 물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이젠 집주인이 티브이를 끌 때까지 잠을 설칠 필요가 없었다.
보통 워킹홀리데이를 가는 주목표는 돈, 경험 그리고 영어 크게 이 3가지이다. 돈은 갖 대학교를 졸업한 또래 친구들이 한 달 동안 버는 양을 노예같이 일하는 덕분에 일주일에 벌었다. 그리고 한국을 떠나는 순간부터 모든 걸 남들보다 처절하게 부딪처가며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영어만 는다면 그럭저럭 성공적인 워킹홀리데이 생활을 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루에 절반을 공장에서 보내고 잠도 자야 하니 학원을 따로 다닐 시간은 없었다. 그래서 과외를 찾던 중 식당에서 접시만 닦아도 한 시간에 20달러를 받는 나라에서 시간당 10달러짜리 과외를 발견했다. 게시물이 영어와 일본어로 함께 적혀있어서 영어를 잘하는 일본인 정도로 생각했다. 호주까지 와서 일본인에게 영어 과외를 받는다는 게 썩 달갑지는 않았지만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는 생각으로 첫 수업을 나갔다.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선생님은 호주인이었다. 게다가 여자에 나와 동갑이었다. 일본으로 영어를 가르치러 갈 계획이라 일본인 학생을 받고 싶어서 게시물을 일본어로 적었단다. 그리고 자기가 갖 졸업을 해 경험이 없어 돈보다는 경험이 목적이라 차비만 받는 거란다. 왕복 차비 7달러에 카페에서 커피 한잔 시켜놓고 공부를 하면 정말 그 친구에게 남는 돈은 없었다. 그냥 봉사활동이었다. 과외비가 부담스럽지 않고 돈도 많이 벌다 보니 하루 2시간씩 일주일에 3일을 만나서 공부했다. 솔직히 영어가 많이 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때부터 호주 생활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것 같다. 과외라는 핑계하에 만나 2시간은 책 펴놓고 떠들고 1시간은 책 덮어놓고 떠들었다. 그리고 집에 데려다준다는 핑계로 1시간을 같이 걸으며 또 떠들었다. 수업이 없을 때는 그냥 만나서 밥 먹고 영화도 보고.
과외로 만났지만 kate는 나와 호주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돼주었다.
주말에는 취미로 일주일에 한 번씩 낚시를 다니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못 낚아도 바다에 가고 그 앞에서 맥주는 마실 수 있으니 수영을 못하는 내가 섬나라인 호주에서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취미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혹시 뭐라도 낚으면 바로 라면에 집어넣고 회도 처먹었고 회가 남는다면 다음날 아침에 라면에 넣어 먹기까지 했다.
사실 아직까지 부모님에게 내가 호주에서 어떤 일을 한다고 이야기는 하지는 못했다.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하니 부모님이 호주에서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거냐고 물으면 공장에 다닌다고 적당히 둘러댔다.
돈도 벌고 영어 공부도 하고 친구도 생기고 새로운 취미생활도 시작했다. 정말 일만 빼면 완벽한 호주 생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