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습작

4개월 만에 다시 찾아간 Gold coast.

by 채리

아무것도 없이 온 호주이지만 짧은 시간에 생활은 안정됐고 일을 그만둬도 한동안 돈걱정을 할 필요 없을 정도로 돈도 모았다. 돈을 조금 덜 벌더라도 인간답게 일할수 있는 곳으로 직장을 옮기기로 다짐했을 때쯤 나와 같이 일을 시작한 한국인이 일을 그만두었고 공장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욕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그만둔다면 나도 일이 힘들다고 도망가는 것 밖에 되지 않고 공장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나쁘게 할게 뻔했다.

오기로라도 남들만큼 일할수 있을 때 도망가는 게 아니라 당당히 그만두기로 다짐했다.


공장에서 돈 말고 얻은 게 있다면 간절하면 정말 못할 게 없다는 걸 배웠다.

처음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이 일도 손에 붙기 시작했고 남들처럼 작업복에 묻은 닭똥을 신경 쓰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게 됐다. 처음엔 나에게 욕만 하던 사람들도 이젠 먼저 다가와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야기한다. 너 처음에 진짜 병신 같았는데 이제 너도 남들 만큼 일한고 그리고 네가 얼마 못 버티고 그만둘 줄 알았는데 잘 버텼다고. 내가 일 못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으니 이젠 나보고 새로 일을 시작한 사람들을 가르치란다. 정말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하니깐 되더라. 이등병 생활이 끝나고 상병 정도 된 기분이었다. 초반에 다른 사람들이 내일을 대신했으니 이젠 내가 일부러 남들일을 대신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남들만큼 일을 하게 되니 굳이 이 일을 그만둘 이유가 없었다.



DSCN0243.JPG 일이 끝난 후 몸에 묻은 닭똥을 씻어낼때가 하루중 가장 행복했다.



과외를 해주던 kate가 영어학원에 일을 구했다고 이젠 나를 가르칠 수 없단다.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었지만 이젠 과외라는 핑계가 아니라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만날 수 있었다.

같이 살던 호주 친구가 다른 과외선생님을 찾지 못한다면 도서관이나 교회에 무료 영어수업이 있다고 그곳에 한번 가보라고 나에게 제안했다.

영어수업 이라기보다는 은퇴하신 호주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영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일 자리와 함께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정도였지만 덕분에 많은 외국인 친구도 만들 수 있었고 그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주말에도 낚시를 갈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호주에 처음 도착해 돈을 모아서 다시 찾아오겠다고 다짐했던 Gold coast도 공장일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이탈리아, 대만 친구들과 함께 갈 수 있었다.



DSCN0146.JPG
DSCN0229.JPG
11258788_861892587193600_3809951207756179360_n.jpg
DSCN0174.JPG



모든 게 만족스러웠다. 애초에 세웠던 계획대로라면 1달 후에 일을 그만두고 여행을 시작하 해야 했지만 호주 생활도 더 하고 싶고 무엇보다도 영어공부를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영어로 외국인들과 대화하며 어울리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하지만 영어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일을 더해야만 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는 한 곳에서 최대 6개월을 일할수 있다. 더 일하고 싶어도 공장에선 앞으로 3개월밖에 이상 일할수 없었고 다른 일을 새로 시작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닭고기 공장에서 일할수 있는 동안 최대한 많은 돈을 모으기 위해 내 할 일이 끝나면 다른 부서로 오버타임을 찾아다녔고 하루에 12시간씩 일했다. 그리고 6개월이 됐을 때는 공장의 거의 모든 부서의 매니저가 내 이름은 몰라도 얼굴을 알정도였다.


이젠 부모님에게 내가 호주에서 무슨 일을 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일 년 더 휴학하고 돈을 더 모아 영어공부도 제대로 하고 여행도 오래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당연히 안된다고 하지만 부모님이 나를 한국으로 소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이렇게 1년을 계획했던 나의 여행은 2년이 되었다.


DSCN4499.JPG 후회하지 않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