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습작

나에겐 제주도 같은 하와이

by 채리

고모가 미국에 사신지는 20년이 넘었다.


내가 고모를 볼 수 있는 기회는 아주 가끔 치과치료를 받으러 한국에 들어오실 때뿐이었다. 비행기 왕복표값을 합쳐도 한국에서 이를 치료받는 게 미국보다 낫단다.

그리고 내가 고모에 대해 기억하던 건 미국에서 한국에 들어오실 때면 스팸과 허쉬 초콜릿을 질릴정도로 많이 사온 다는 것뿐이었다.


고모도 오랜만 보는 조카가 호주에서 고생하고 하와이로 온다고 하니 조금 부담스러웠나 보다. 내가 3주 정도 하와이에서 있을 거라고 하니 보기 안 좋으니 똑같은 옷 입지 말라며 반팔티 21장을 미리 사놓으셨다.

정말 감사하지만 21장의 티셔츠는 하나같이 내가 외국인 관광객이라는 걸 자랑하는 "I LOVE HAWAII", "2015 HAWAII"라는 문구가 적힌 옷들뿐이었다.

하지만 입어야 했다.



IMG_6445.JPG 'HAWAII 2015' 누가봐도 관광객이다.



하와이는 정말 관광객 천지였지만 그중에서 나와 같이 혼자 여행을 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모두 가족 혹은 친구들과 함께 왔다.

하지만 혼자 여행을 하기에도 좋았다. 어딜 가든 산과 바다가 펼쳐져있고 지대가 그리 높지 않은 화산섬이다 보니 조금만 올라가도 태평양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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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최고는 하산 후 땀에 절은 몸을 바로 바다에 던질 수 있다는 것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계획한 건 아니지만 호주에서 나와 같은 워홀러 생활을 했던 한국 친구도 하와이에 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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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는 첫날에는 밤늦게 하와이에 도착해 숙소를 예약하기가 아깝다고 노숙을 할 계획이란다. 나도 손님이기에 고모집에 손님 한 명을 더 초대하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를 공항에서 다시 만나 와이키키 비치로 돌아와 같이 노숙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공항 노숙은 2번 해봤다. Noosa생활을 하며 해변에서 낮잠은 많이 자 봤지만 이렇게 진짜로 노숙을 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런데 둘이니 그리 걱정은 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나 해변에서 술을 한잔하고 잠이 들 때쯤 되니 비가 오기 시작해 지붕이 있는 벤치로 자리를 옮겨 야만 했다. 그리고 다시 잠을 자려 했지만 노숙자가 우리에게 다가와 6시 이전에 그곳에서 자면 경찰이 벌금을 물린다고 이야기해줬다. 그렇게 그 노숙자와 6시까지 떠들었다. 그리고 6시에 벤치에 누워 다시 잠을 자려하니 이번에는 청소를 해야 한다며 청소부가 깨운다.

그날은 잠을 못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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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떠나고 9개월 만에 처음으로 밥걱정 없이 2주를 보냈다. 군대에서 살이 빠지고 호주 생활을 하며 살이 더 빠져 66킬로 밖에 나가지 않았지만 고모가 한국에서 나를 봤을 때 85킬로가 넘었었다.

하와이에서 나는 의무적으로 많이 먹고 의무적으로 많이 자야만 했다.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미국 본토 날씨가 추워 얼어 죽는 노숙자가 생기자 본토에서는 날씨가 좋은 노숙자들을 하와이로 보냈단다. 그리고 하와이 정부는 그 노숙자들을 다시 본토로 돌려보내려 했지만 대부분이 날씨가 좋은 하와이를 떠나지 않고 남아 위험하다며 헤가지면 나를 집 밖으로 못 나가게 했다.


다들 하와이에서 뭐 그렇게 오래 있었냐고 물어보면 난 아무것도 안 했다고 이야하기 한다.

그냥 한국에 돌아온 느낌이었다. 잘 먹고 잘 자고 오후나 돼서 나가 해지면 집에 돌아와 고모와 "왔다! 장보리"를 챙겨보던 게 낙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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