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행잉은 큰 닭을 매다는 라인 1과 작은 닭을 매다는 라인 2, 이렇게 2개의 파트로 나뉘었다. 닭이 큰만큼 일은 더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주로 뉴질랜드 원주민, 인도인 그리고 아랍인 같은 나보다 덩치가 좋고 일도 오래한 친구들이 라인 1에서 일을 했지만 나와 같은 한국인 워홀러도 라인 2에서 어느 정도 일을 잘 하면 라인 1에서도 일을 해야만 했다.
라인 1은 닭이 힘이쎄 마취가 돼서 행잉 방으로 넘어왔다. 하지만 문제는 닭이 누워있기 때문에 다리를 찾기 위해서는 등덩미를 잡아 올려야 했다. 닭이 무거워 등덜미를 잡을 때 계속 손톱에 힘을 줘야만 했고 라인 1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손톱 2개가 죽어버렸다.
워홀러로서 완벽한 호주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쯤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이번에는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것도 적응하리라 믿었다. 일 끝나는 날만 생각하며 그냥 버텼다. 오래 서서 힘쓰는 일을 하다 보니 허리도 아파지기 시작해 어느 순간 누워서 자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일끝 나는 날만 생각하며 허리가 괜찮아질 때까지 앉아서 잤다. 그리고 라인 1 구조상 닭이 얼굴에 더 가까워 눈에 이것저것 더 많이 들어갔다. 그것 때문인지 눈병을 달고 살았다. 허리랑 손톱은 시간이 지나면 나을 거라 생각했지만 눈은 조금 걱정이 됐다. 하지만 이젠 일할 날이 정말 몇 주 남지 않아 이 일을 그만두면 다른 일을 구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약을 먹으면서 일을 했다. 미련하지만 지금 한 달 고생하면 앞으로 일 년 반의 여행이 조금 더 편해질 거라는 생각으로 무조건 버텼다.
드디어 닭고기 공장에서의 6개월이 끝났다. 고작 6개월이지만 군생활 21개월 끝났을 때 보다 기분이 좋았다. 세계여행을 하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한지 모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아끼고 모았다.
과정은 내 계획과 많이 달랐지만 군대에서부터 목표했던 꿈과 한 발 더 가까워졌다. 스스로 축하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뛰었다.
1년 더 계획을 연장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영어공부였다. 그래서 일이 끝나기 전 마지막 몇 주는 짬짬이 유학원을 돌아다니며 어학원을 알아보았다. 수능처럼 오래 앉아 공부하는게 좋아 필리핀에 가려했지만 필리핀을 권유하는 유학원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중 한 곳에서는 만약 내가 자기 동생이었으면 필리핀 가서 공부하겠다고 우기는 나를 때려서라도 말리겠단다. 다행히 동생이 아니라 맞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미 호주 물가에 적응을 해 비행기 값으로 목돈을 내야 하는 필리핀에서 공부하는게 오히려 비싸게 느껴졌다.
고향 같은 Brisbane생활을 정리하고 Noosa라는 곳에서 새로운 호주 생활을 시작했다. 100만 원으로 시작한 호주 생활이지만 7개월간의 고생 덕분에 부모님 도움 없이 어학원 비도 스스로 낼 수 있었다.
이젠 나는 워홀러가 아니라 호주 유학생이다.
Noosa에서 Cambridge를 공부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간단했다. 한국인이 싫어서가 아니라 영어공부를 하는 동안은 한국어를 최대한 적게 쓰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인이 적은 바닷가 마을에서 한국에서 쓸모없는 Cambridge 자격증을 공부하며 일부러 한국인을 피했다.
누사에서 3개월간 지낼 방을 찾기 위해 코스가 시작하기 일주일 전에 미리 누사에 도착했다. 바다는 정말 아름다웠지만 수영을 못하니 내가 바닷가 마을에서 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3일 만에 누사에 온 걸 후회했다. 이곳에서 3개월을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 걱정스러웠다. 한국인이 없다고 해서 온 곳이지만 나도 한국인이다. 작은 마을보다는 할 것도 많고 술집도 오래까지 문을 닫지 않는 큰 도시가 더 좋다. 그리고 공급이 적다 보니 방값도 비쌌다. 하지만 학원비는 누사에 오기 전에 미리 다 냈다. 싫던 좋던 이곳에서 3개월을 지내야 했다.
옛날처럼 하루에 12시간씩 일을 하지는 못하지만 하루에 3~4시간이라도 일하며 용돈이라도 벌어보려 했다. 하지만 휴양지인 Noosa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접시 닦는 일 밖에 없었다. 조금 덜먹으면서 지내더라도 다시는 접시를 닦고 싶지 않았다.
방을 구하는 일주일간은 호스텔에서 지냈다. 한방에서 오래 머물다 보니 숙소에서 일하는 사람들과도 친해졌다. 숙소 규정상 술을 마시면 안돼 Staff들이 저녁마다 방을 순찰하며 누군가 술을 마시고 있으면 그 술을 압수했다. 그리고 그 술을 내방으로 가지고 들어와 같이 마시기도 하고 여자들에게 술이 공짜인 날은 나에게 여자 옷을 빌려줘 같이 공짜술을 마시러 다니기도 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호스텔을 나갈 때가 되자 돈은 못 받지만 숙박비가 공짜라고 나보고 호스텔에서 봉사활동을 하라고 제안했다. 만약 그곳에 머물면 매일같이 공짜술을 마시고 좋았겠지만 공부가 우선이었다. 그리고 3개월간 지낼 집도 미리 찾아 놓았다. 화장실이 2개인 한 집에서 10명이 살고, 차고에서도 3명이 잠을 잘 정도로 환경은 열악했지만 누사에서 가장 싼 집이었다. 10달러 더 내고 조금 더 좋은 집에서 살 까고 고민하기도 했지만 같이 살게 될 친구들이 만약 내가 들어온다면 BBQ파티를 하겠단다. 고기 먹고 싶어서 그 집으로 이사했다.
이젠 나는 유학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