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사는 인생 2년 정도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과목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맹목적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을 보며 도리어 반항심만 커져갔다.
매일 같이 놀기만 하는 나를 다른 동기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지 못하지만 나는 내 스스로 의식 있는 멍청이라 생각했고 내 눈에는 오히려 동기들이 고등학생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는 더 나은 대학이라는 목표 하에 현재의 행복을 포기했다면 대학에 온 친구들은 더 나은 직장이라는 목표 하에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했고 심지어 재수도 했다. 고 3 때는 머리 감는 시간도 아까워 2주에 한 번씩 9mm로 머리를 밀고 다녔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건 내가 생각하던 대학생활이 아니었다. 고등학생 때와 마찬가지로 불확실한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행복하고 싶었고 그러다 보면 미래의 나도 행복할 거라 생각했다.
후회 없이 놀았고 학사경고를 받았다. 컴퓨터실에서 밤새 과제하는 친구들 옆에서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봤고 1교시를 가는 친구들을 보고 잠들기 위해 5시부터 편의점에서 의자를 펴놓고 술을 마셨다.
그런 나를 보며 선배들은 내 미래를 걱정했단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내가 2년간의 세계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전시회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이미 졸업해 안정적인 직장을 구한 그 선배는 아직도 2학년인 나를 부러워했다.
등록금 450만 원을 내고 한 학기 동안 내가 학교에서 배운건 단 하나도 없다. 학교가 필요 없는 집단라는 뜻은 절대로 아니다.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었기 때문에 꿈을 키울 키울 수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세계여행을 꿈꿔본 적 없다. 단지 새로운 곳에서 혼자의 힘으로 살아보고 싶었다.
우선 돈이 필요했다. 부모님이 한국에서 뼈 빠지게 일해서 번 돈으로 외국에서 놀고먹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호주에서 4개월을 일을 하고 6개월간 여행을 한 후 돌아올 계획으로 출국했지만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오니 2년이란 시간이 흘러있었다. 물론 부모님은 하루빨리 돌아와 복학을 하고 최대한 빨리 졸업 해 안정된 삶을 살기 원했지만 한국을 떠나고 나서부터 100원도 받지 않고 있는 나를 강제로 소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살았고 기회다 싶으면 잡았다. 그게 내가 여행하는 방식이었다.
할까 말까 할 때는 했고 먹을까 말까 할 땐 먹지 않았다. 그 결과 게이 파티에도 초대되고 마약을 운반 중이던 딜러의 차도 얻어 탈 수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젤라토는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지만 그건 나이가 조금 더 들고 경제적으로 풍족해졌을 때 얼마든지 다시 가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차비를 아끼기 위해 히치하이킹을 하고 방값을 아끼기 위해 공원에 텐트를 치고 자는 건 무식하고 잃을 게 없는 젊은 나이의 특권이라 생각했다.
나는 지금 27살의 나이에 22살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고 있다. 이미 동기들은 졸업을 했고 결혼을 한 친구들도 많다. 지난 2년간 모든 선택의 주체는 나였고 책임도 내가 져야 했지만 한국에 돌아온 후 여전히 난 우리 집의 막내아들일 뿐이다. 아침에는 5분 더 자려고 알람을 늦추고 동네 친구들을 만나면 욕 없이는 대화가 되지 않는다.
33개국, 200여 개의 도시를 여행하고 다양한 경험을 했지만 내 인생이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시간에 열심히 공부를 했다면 어디에든 취직을 해서 조금이나마 돈을 벌며 운이 좋다면 부모님에게 용돈도 드리고 차도 한대 굴리고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과거로 돌아간다면 같은 선택을 할 거냐고 물어본다면 난 한치의 고민도 없이 'YES'를 외칠 것이다. 오히려 조금 더 무모하게 즐기지 못한 게 후회가 된다.
100년 사는데 2년 정도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