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기 때문에 편도 비행기 표값만 100만 원이 넘는 아시아나 직항 비행기는 타지 못하고 가장 저렴한 에어아시아를 이용했다. 에어아시아는 Brisbane에서 약 2시간 떨어진 Goldcoast까지만 운행했다. 나의 최종 목적지는 brisbane이었지만 일단 호주땅에 떨어지면 어딘든 쉽게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Goldcoast는 유명한 휴양지이다. 하지만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은 휴양이 아니기에 성공해서 돌아오겠다는 다짐을 하고 Brisbane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사실 나의 해외여행 경험은 베트남 여행 딱 한 번뿐이다. 그것도 일 주일을 계획했지만 베트남에 도착한 첫날에 핸드폰과 지갑을 잃어버려 다음날에 돌아와야만 했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다르다. 군대에서 여행을 책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진정 헝그리 한 여행객이라면 히치하이킹이지!라고 생각하며 종이에 당당히 목적지를 적었다.
여행책을 읽을 땐 히치하이킹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지만 지나가는 차를 세우는 것보다 힘든 건 자존심을 버리고 용기 내 대로 한복판에 서서 엄지를 치켜세우는 것이었다.
끝내 나는 제대로 시도 한번 못해보고 버스를 탔다. 분명 공항에선 이 버스를 타면 Brisbane에 도착할 거라고 했지만 30분도 체 가지 않아 버스가 종점에 도착했다. 여기서 버스를 갈아타야 한단다. 속았다.
이곳에서 더 이상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다. 드디어 엄지를 세울 용기가 생겼다. 아니, 용기라고 하기보다는 오기다. 하지만 쪽팔린다. 지나가는 차 안에서 나를 비웃고 있는 것 같다. 복학해서 학점이나 채울걸. 머릿속엔 온통 부정적인 생각뿐이다. 그런데 웬걸 5분도 지나지 않아 차 한 대가 내 앞에 멈춰 섰다. Brisbane까지는 아니지만 차가 많이 다니는 곳에 내려주겠단다. "WHY NOT! LET'S GO!" 내가 한 말은 이것뿐이다. 영어는 수능 공부를 한 게 다인 나는 할 말도 없고, 할 수 있는 말도 없었다. 그리고 그 친구가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지도 못하겠다. 공짜로 이동하긴 했지만 가시방석에 앉아야만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버스는 공짜로 환승이 가능했다.
이 친구는 Goldcoast에서 최고로 인기 있는 관광지인 Surfers paradaise에 나를 내려주었다. 호주에 대한 별다른 환상은 없었지만 Surfers paradaise는 한 번도 해외여행을 제대로 해보지 못한 나에게는 정말 Paradaise처럼 보였다. 파란 하늘 그리고 그보다 더 파란 바다. 어차피 수영도 못하고 가지고 있는 짐이 많으니 바다로 들어가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paradaise처럼 느껴진 이유는 저가항공을 이용해 30시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후 첫끼를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눈물 젖은 햄버거였다.
Sufers Paradaise! 내가 곧 성공해서 돌아오리!
그리고 다시 엄지를 들었다. 이번에도 차는 쉽게 잡혔다.
나라가 크다 보니 2시간 운전의 개념이 다른 것 같다. 한국에서는 2시간이면 서울에서 대전을 갈 수 있는 거리이고 그 누구도 서울에서 대전이 가깝다고 하지 않지만 이 친구들은 가깝다고 타란다. 그렇게 가시방석에 다시 앉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차비를 아꼈다는 것이다 :)
2시간을 달려 Brisbane에 도착했다.
진정 헝그리 한 여행객이라면 숙소는 카우치서핑!
메시지만 보내면 공짜로 잠자리를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호스트들 나의 요청을 거절은커녕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에게는 브리즈번에 친구도 없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24유로를 가지고 200일 넘게 유럽여행을 한 류시영 작가를 만난 적이 있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냐고 물어보니 길에서 친구를 사귀고 그 친구들이 집에 초대해주고 다른 도시에 사는 자기 친구를 소개해주기도 해 숙박비를 아낄 수 있었단다.
처음엔 시도도 못했던 히치하이킹을 성공해 엄지손가락과 목적지가 적힌 종이 한 장이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과 함께 길바닥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도 히치하이킹만큼 쉬울 거라고 생각됐다.
그래서 가방에 "Looking for a couchsurfing friend"라 적힌 종이를 붙여놓고 Brisbane 도심을 걸어 다녔다.
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이지만 이건 철판이 두꺼워질 데로 두꺼워진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부끄럽고 다시는 못할 짓이다.
해가 질 때까지 20KG 가까운 가방을 앞, 뒤로 메고 브리즈번 도심을 걸었다.
그렇게 난 호스트는 찾지 못하고 8인실의 호스텔에서 잠을 자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