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를 줄 알았었다.
일을 구 할 때는 식당 문으로 들어가서 계산대에 이력서를 주고 나와서 몰랐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고 나서 내가 일하는 곳이 호텔에 붙어있는 식당이란 걸 알게 됐다. 요리사는 10명이 넘고, 주방이 1,2층으로 나뉘어있으며, 접시를 운반하는 엘리베이터까지 따로 있었다.
문제는 접시를 닦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접시는 내가 오기 전부터 쌓여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추가되는 접시까지 다 닦아야 했다. 접시뿐만이 아니다. 프라이팬 냄비 등 요리할 때 쓰는 도구들까지 모두 닦아야 했다. 돈을 받고 일하지만 이건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요리사들은 자기네들이 닦는 게 아니라고 대충 쓰고 나한태 던져 버린다. 난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일하려고 앞치마도 두르지 않고 고무장갑도 안 끼운 체 뛰어다녀도 접시는 계속 쌓인다.
주방에서 일하다 보면 맛있는 음식도 얻어먹고 영어도 늘 줄 알았다. 그런데 내 옆에는 뜨거운 김을 내뿜는 식기세척기 밖에 없다.
가끔씩 요리사들끼리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게 보여도 내가 닦아야 하는 그릇이 쌓여 있어 한 번도 같이 먹어 본 적이 없다. 더욱이 내가 일을 못해 누구도 먼저 나에게 쉬엄쉬엄 하며 와서 같이 먹자고 재안 하는 사람도 없었다.
요리사들은 어디서 배웠는지 자꾸 나에게 한국말로 "빨리빨리!"를 외쳐 댔다. 그리고 성질 급한 요리사들은 나를 옆으로 밀치고 "이거 니 일인데 지금 내가 프라이팬 필요해서 대신하는 거야"라고 이야기하며 내 대신 접시를 닦기도 했다. 일을 제대로 못하다 보니 내가 일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첫날엔 하루에 8시간으로 시작했지만 일주일도 체 지나지 않아 내 근무시간은 하루에 4시간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점점 일하는 날도 줄어 주에 3일밖에 일을 못하게 됐다. 자존심은 상했지만 시간당 21달러를 준다는 이유 때문에 섣불리 그 일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자를 때까지 버티기로 다짐했다.
자존감이 낮아질 데로 낮아졌다.
하지만 이렇게 일해서는 세계여행은커녕 방값 내기에 급급했다. 다른 일을 찾아보려 했지만 영어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외국인인 내가 타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접시 닦기, 새벽청소, 농장 그리고 공장밖에 없다. 한국 있었다면 내일 당장이라도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웨이터, 그리고 편의점 점원도 언어라는 장벽 때문에 감히 지원하지도 못했다.
워킹홀리데이 제도에 대한 회의감까지 들기 시작했다. 경험이라는 명목 하에 허드렛일만 하는 것 같았다. 성질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었지만 이 일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다시 폐기 음식을 찾아 먹어야만 했다. 어쩔 수 없이 호주인이 외치는 "빨리빨리"를 하루에 백번도 넘게 들으며 계속 접시를 닦았다.
고생은 끝났다!
포기했던 닭고기 공장에서 전화가 왔다. 이메일로 지원한 이력서가 통과한 것이다. 고작 닭고기 공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닭고기 공장에서 일할수 있는 기회를 얻기는 그리 쉽지 않았다.
닭고기 공장에서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서류, 전화 인터뷰, 면접, 신체검사, 최종 시험을 통과해야만 했다.
일도 구하기 힘들고 급여도 높아 호주의 삼서이라 불리는 공장이었다.
호주에서는 일을 그만두기 2주 전에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있도록 미리 통보해주는 게 매너라고 한다. 그래서 전화를 받은 다음날 2주 후에 그만두겠다고 말을 했다. 내 나름의 계획은 혹시 공장 면접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식당에서 일하는 2주 동안 다른 일을 찾는 것이었지만 내가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2주 더 일할 필요 없이 내일부터 나오지 말란다.
갖은 수모를 당하면 2주간 기계같이 접시를 닦았지만 모은 돈은 없다. 그리고 그 일마저 잃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공장에서 나에게 다시 전화를 주기를 기도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집을 지키기 시작했다.
내가 아무리 한국에서 공부를 열심히 안 했지만 한국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24살에 타국에서 닭고기 공장에 목을 멜 것이라는 상상은 한 번도 해보 짐 못했었다. 하지만 이것마저 못하게 된다면 도시를 떠나 농장으로 들어가 딸기를 땋야만 했다. 딸기를 따느니 한국을 돌아가겠다는 생각으로 인터넷으로 닭고기 공장에서 일했다는 사람들의 블로그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면접에서 물어봤다는 예 상질 물을 추려서 나름대로의 답안을 준비했고 더욱 확실히 하기 위해 같이 사는 친구들을 앞에 앉혀 놓고 가상 인터뷰까지 했다.
다행히 일을 그만둔 지 얼마 되지 않아 공장에서 면접을 오라는 전화를 받았고 면접장에 가서 그간 준비했던 답안을 쏟아내고 신체검사 약속까지 받아낸 후 면접장에서 나왔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한국에서 계획했던 워홀계의 삼성, Brisbane의 닭고기 공장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이 당시에는 호주 생활을 즐길 수가 없어 찍어놓은 사진이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