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본다면 울만한 이야기.
하지만 난 영어를 하지 못한다.
그간 한국에서 영어를 과목으로 배웠다면 영어가 모국어인 나라에 온 만큼 영어를 언어로 배우고 싶었다.
영어를 어어로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영어에 최대한 많이 노출되고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멍청해도 호주에서 태어난 2~3살짜리 애기들보다는 똑똑할 거라고 생각해 굳이 영어공부를 따로 하지 않아도 많이 듣고, 많이 이야기하다 보면 호주를 떠날 때쯤은 호주인들과도 욕하면서 영어로 언쟁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캐나다에서 캠브릿지 대학에서 주관하는 영어 시험에서 Advance level까지 취득했지만, 난 한국인이다. 보통 여행하며 만난 한국사람들은 처음에 나를 한국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영어로 말하는 순간 "아~ 한국사람이세요" 하면서 다가올 정도로.
호주에는 한국사람이 정말 많아 한국인들과 살고, 한국인 밑에서 일을 하며 한국인이 운영하는 슈퍼와 식당을 가면 한국어만 쓰며 사는 게 가능할 정도이다. 그래서 한국을 떠나며 스스로 한 약속이 있었다. 무조건 한국인이 없는 집에서 외국인과 살기, 그리고 한국인 커뮤니티에는 가입하지 않기.
그렇게 일본인 4명, 말레이시아인 1명, 인도인 1명, 그리고 독인인1명이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갔다. 문제는 보증금과 일주일치 방값은 선불이라는 것이다. 아낀다고 아꼈지만 방을 구하기 전 4일간 호스텔에서 지내며 쓴 방값이며 밥값이 100달러가 넘었고 보증금과 방값을 내고 난 후 내 주머니에는 가지고 온 돈의 절반도 체 남아있지 않았다.
도움 따윈 필요 없다고 큰소리치며 한국을 떠난 지 4일 만에 어쩌면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일을 구하기 전까지는 일단 타지에서의 생존이 가중 중요했다. 그때부터 음식을 살 때는 일부러 마트가 문을 닫을 때쯤 가서 폐기 직전의 80~90% 할인하는 1달러 이하의 음식을 찾아먹기 시작했고 최저시급이 19달러인 나라에서 일주일에 식비로 20달러밖에 쓰지 않았다.
일이 없는 2주간 말 그대로 매 끼니를 '때웠다'
식비를 아무리 아끼더라도 이 주일 안에 일을 찾지 못하면 한국에 돌아가던가 부모님한테 도움을 구해야만 했다.
Brisbane으로 온 이유는 대학 동기가 닭고기 공장에서 일을 하며 일주일에 평균 100만 원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미 인터넷으로 닭고기 공장에 지원을 했지만 연락이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 공장의 연락을 기다릴 수만은 없다. 호주에서도 물론 인터넷으로 일을 구할 수 있지만 이력서 들고 직접 일하고 싶은 곳을 찾아가는 게 일을 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다들 바쁘게 일하고 있는데 이력서를 가지고 들어가 " I am looking for a job"을외치는건 처음에는 정말 큰 용기가 필요했다. 용기 내서 레스토랑 앞까지 찾아가 "그래! 노래 한곡만 듣고 들어가자!"라고 다짐하고 노래를 듣는 사이에 손님이 들어오면 "괜히 바쁜데 들어가면 내 이력서 보지도 않고 버리겠지? 다음에 다시 찾아와야지"라고 변명하고 떠나곤 했다.
똑같은 변명을 하며 첫날에는 이력서를 한 장도 건네지 못했다.
후회스러운 하루를 보내고 나니 그다음 날에는 식당에 들어가 " I am looking for a job"이라고 외치고 이력서를 던지다시피 주고 도망 나오는 게 가능해졌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호주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인 Brisbane의 거의 모든 식당에 이력서를 던지고 나왔다. 하지만 아무 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고, 그사이에 방값을 한번 더 냈다.
이제 내 주머니에는 200달러밖에 남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워킹홀리데이 실패 사례를 많이 보았지만 나는 다를 줄 알았다. 자신감이 바닥까지 떨어졌고 들여다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한국인 커뮤니티에서 일을 찾기 시작했다. 한국 워홀러들이 일을 그만둘 때쯤 그 일을 친구한테 양도하고 간다는 이야기를 들어 한국인 친구를 사귀기 위해 방까지 옮기려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매일같이 웃고 있지만 이때는 아침에 일어나는 게 싫었다. 일찍 일어나 봤자 혹시나 어딘가에서 연락이 올까 싶어 핸드폰을 옆에 두고 확인을 하는지 안 하는지도 모르는 이메일을 보내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술을 마시고 싶어도 더 이상 돈도 없고 신세한탄을 들어줄 친구도 없었다.
같이 사는 친구들은 일 끝나고 돌아와 내 걱정한다며 오늘은 어땠냐고 물어보는데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어 나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는 것 자체가 짜증 났다.
이러려고 호주에 온 게 아니다. 다시 이력서를 들고 식당을 찾아다녔다. 이번에도 일을 구하지 못한다면 부모님에게 도움을 구해야만 한다.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고 호기롭게 떠난 만큼 이제 와서 용돈을 받는 것만큼 자존심 상하는 일도 없었다.
"나 기억해? 너 지난주에 나한테 사람 필요할 때 연락 준다고 했는데 아직도 연락 안 줘서 다시 찾아왔어, 혹시 내 이력서 잃어버렸을 수도 있으니깐 이거 다시 줄게! 꼭 연락 줘". 집에서 달달 외운 문장을 힘껏 뱉으며 전에 찾아갔던 식당들을 다시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2일을 간절히 노력하니 한 식당에서 오늘 밤 6시에 다시 오라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사실 정확히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되물으면 영어 못하는 게 티가 날까 봐 웃으며 Yes만 외치고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같이 사는 친구들과 토론 끝에 6시에는 인터뷰가 있을 거라고 우리끼리 결론을 냈다. 물론 내 냄새를 맡지는 않겠지만 샤워도 다시 하고 가지고 있는 옷 중 가장 단정한 옷을 입고 일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식당으로 찾아갔다.
예상과는 다르게 나에게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고 바로 앞치마를 건넸다. 그리고 간단하게 내 역할을 설명해주고 바로 일을 시켰다. 어안이 벙벙하다. 이렇게 쉽게 일을 구할 줄 몰랐다. 그렇게 2시간 내내 접시만 닦았다.
그간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누군가가 뒤에서 기계같이 접시를 닦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호주에서 내가 접시를 닦으면서 기뻐할 줄은 더더욱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런데 2시간이 지나니 나보고 앞치마를 벗고 나오란다. 그리고 뭐가 먹고 싶냐고 물어보며 그간 호주에서 먹어보지 못한 맛있는 음식과 맥주 한 잔을 줬다.
바쁜 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밥을 다 먹고 집에 가도 좋단다. 언제 다시 오면 되냐고 물어보니 연락 준단다. 더 일할수 있는데 2시간밖에 하지 못해 아쉬웠다. 그리고 집에 와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게 Trial이란다. 호주에서는 누군가를 고용하기 전에 무료로 2시간 동안 일을 시켜보는 게 합법적으로 가능하다고 한다. 처음 하는 접시 닦이인데 제대로 했을 리가 없다. 다시 연락이 올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이력서를 들고 돌아다녀야만 했다. 점점 더 상황이 간절해지다 보니 더욱더 강하게 어필하기 시작했고 기회는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12시에 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제 한번 경험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Trial일 거라고 예상하고 일을 하러 갔지만 8시간 동안 일을 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오란다.
드디어 일을 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