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알았더라면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환상은 사라졌고, 돈을 벌고 있다는 현실만 남았다. 하지만 돈을 번다는 사실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렇게 벌어서는 방값 내기에만 급급 할 뿐, 여행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일은 했지만 아직도 폐기 음식이나 먹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어느 날 길바닥에 떨어진 초코바 앞에서 주춤거리는 나를 발견했다. 주웠다. 하지만 최소한의 자존심이 남아 입에 갖다 대지는 않았다.
화가 났다. 워킹홀리데이 제도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20대의 특권인 것 마냥 광고했던 워킹홀리데이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경험이라는 명목 하에 한국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허드렛일이 전부였다. 접시 닦이, 농장일, 공장일, 새벽 청소 같은.
그마저도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식당에서 첫 주가 지나니 하루 8시간, 주 5일이었던 근무시간은 하루 4시간, 주 3 일로 반토막 나고 말았다. 자를 수 없으니 알아서 그만두라는 무언의 압박을 주는 것만 같아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자존심보다는 이 나라에서 살아남는 게 최우선이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대책 없이 일을 그만둔다면 정말로 길바닥에 떨어진 초코바나 주우러 다니는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마지못해 식당에 다니던 나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내가 호주에 온 목적인, 친구가 일했다던 그 닭고기공장에서 이력서가 통과했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웃긴 사실이지만 이 공장은 워홀러계의 삼성이라고 불린다. 돈도 많이 주고, 다른 공장에 비해 근무여건, 위치 등 모든 것이 좋기 때문이다. 이력서가 통과했다고 섣불리 좋아하기에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이 남았다. ‘고작’ 닭고기 공장에서 일하기 위해서 는 이력서, 전화 인터뷰, 면접, 신체검사, 마지막으로 최종 테스트까지 모두 통과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