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닭고기 공장 1-2

미리 알았더라면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by 채리



일단 닭이 죽고, 털이 뽑혀야 뼈를 바르고, 양념을 묻히지 않겠는가. 일은 공장에서 제일 먼저 시작됐다.

새벽 4시. 우선 철저히 저녁형 인간인 내게는 새벽 3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고역이었다. 남들이 다 잘 시간에 일어나기 위해서는 남들이 다 깨어있을 시간에 잠을 자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남들과 다른 생활패턴 때문에 누군가와 함께 방을 쓰는 것은 힘들었다. 또 대중교통도 없는 새벽부터 나와서 이동하려면 공장 근처에 위치한 숙소를 구해야만 했다. 공장 주변의 방값은 도심만큼이나 비쌌다.

난 독립적인 공간을 구할 여력이 없었다. 그곳에서 내가 당장 구할 수 있던 공간은 기존에 쓰던 2인 1실도 아닌, 구석에 침대를 둔 거실에서 지내야 하는 집뿐이었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거실에서 개와 함께 자는 꼴이라니.

상황이 어디까지 나빠질 수 있는지를 지켜보는 이 일, 이거 은 흔히 재미있다.


DSCN6670.JPG


다행이라고 할까, 육체적으로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말도 못 하게 괴로웠다. 갓 목이 갈린 닭들이 피를 쏟아내며 천장에 매달린 채 내가 있는 곳으로 넘어왔다. 그리고는 뜨거운 물에 들어가 삶아진 후 새로 도입됐다는 기계에 의해 털이 뽑혔다.

일을 빨리하기 위해 킬러들은 목을 완전히 베지 않았고, 닭머리는 몸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기계에 의해 ‘뽑혔다.’ 목이 갈리고도 살아서 발버둥 치는 닭들도 더러 있었다. 일하는 곳은 끓는 물 때문에 습하고, 닭 삶는 냄새와 피 냄새로 진동했다.


스크린샷 2019-08-14 오후 1.48.57.png


나는 기계 옆에 서서 하루 종일 닭 꽁지만 쳐다보며 털을 뽑았다. 가끔 바닥에 고인 피가 굳기 전에 청소도 하고, 닭머리가 쌓일 때쯤 삽으로 퍼서 분쇄기에 넣는 게 내가 할 일의 전부였다. 내가 무언가를 한다기보다는 기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게 돕는 ‘조수’ 역할이었다. 이곳에서도 내 말동무가 되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영어가 늘리 만무하다. 아니, 한국어 마저 잊어버릴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