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구 20%가 부의 52% 차지, 이게 정상인가
미국에서조차 부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베이비 부머(Baby Boomer) 5명이 밀레니얼(Millennial) 25명보다 부유하다는 게 말이 되나? 베이비 부머(1946-1964년생)가 전체 인구의 20%에 불과하지만, 미국 전체 부의 52%를 독차지하고 있다. 반면 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생)는 전체 부의 고작 9.2%만 차지한다.
베이비 부머의 부 증가세는 가히 폭발적이다. 1990년 4조 5천억 달러(약 6,300조 원)였던 이들의 자산이 2023년 76조 2천억 달러(약 10경 7천조 원)로 늘었다. 33년 만에 무려 17배 성장한 것이다.
이는 1980년대부터 2020년까지 이어진 미국 경제 황금기를 고스란히 누린 결과다. 부동산 가격 폭등, 주식시장 호황, 연금 제도의 혜택을 모두 받은 세대다.
X세대(1965~1980년생)는 37조 8천억 달러(약 5경 3천조 원)로 전체의 28%를 소유한다. 베이비 부머에 비해 인구는 비슷하지만 부는 절반 수준이다. 이는 X세대가 2000년 닷컴 버블 붕괴와 2008년 금융위기라는 두 번의 큰 경제 위기를 겪으며 자산 형성 시기를 보냈기 때문이다. 베이비 부머는 미국이 세계 패권국으로 부상하는 시기에 청년기를 보냈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부동산 가격 상승, 1980년대 주식 대호황을 모두 경험했다. 베이비 부머가 1980년대 주식 대호황의 핵심 시기에 30-40대였다면, X세대는 경제 위기 때마다 타격을 받았다.
밀레니얼은 더 심각하다. 가장 경제활동이 왕성해야 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13조 5천억 달러(약 1경 9천조 원)에 그친다. 베이비 부머가 같은 나이였을 때와 비교하면 현저히 적은 수준이다. 밀레니얼은 2008년 금융위기로 취업 시장이 얼어붙었을 때 사회에 진출했다. 학자금 대출에 짓눌린 채 코로나19까지 겪어야 했다. 집값은 천정부지로 올랐지만 임금은 제자리걸음이었다.
침묵세대(1946년 이전 출생)조차 19조 7천억 달러(약 2경 8천조 원)를 보유해 밀레니얼보다 많다. 90세가 넘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30대 청년들보다 부유하다는 뜻이다. 이들은 대공황과 2차 대전을 겪었지만, 전후 복구 과정에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지금도 연금과 투자 수익으로 안정적인 수입을 유지하고 있다.
앞으로 20년간 베이비 부머에서 젊은 세대로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부의 이전이 일어날 예정이다. 추정 금액만 68조 달러(약 9경 5천조 원)에 달한다.
하지만 이것도 균등하게 분배되지는 않을 것이다. 부유한 집안의 자녀들은 더 부유해지고, 그렇지 못한 집안은 여전히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개인의 노력보다는 언제 태어났느냐가 부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 된 셈이다.
더 심각한 건 이런 구조가 영구화된다는 점이다. 부모 세대의 부동산 투자 시점이 자녀 세대의 계급을 결정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1970년대에 부동산을 샀느냐, 2010년대에 비트코인(Bitcoin)을 샀느냐가 개인의 노력보다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
결국 능력주의(metritocracy)는 착각이었고, 타이밍이 모든 걸 결정하는 시대가 되었다. "아메리칸 드림은 죽었다(the American Dream is dead)"는 말은 틀렸다. 아메리칸 드림은 이제 유산이 되어 부모 세대가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일 뿐이다.
한국의 상황은 미국보다 오히려 더 심각할 수 있다. 미국은 그래도 주식, 채권, 부동산 등 다양한 자산에 분산 투자가 가능하지만, 한국은 부동산 의존도가 압도적이다. 50-60대가 집값 폭등기에 여러 채를 샀다면, 20-30대는 전세금도 마련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더 큰 문제는 사회 이동성의 경직화다.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이 유행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부모 세대의 부동산 자산이 자녀의 미래를 좌우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미국은 적어도 창업이나 주식 투자로 역전할 기회라도 있지만, 한국은 부동산이 아니면 부를 축적하기 어려운 시스템이다.
결국 한국은 미국식 세대 갈등에 한국식 계층 고착화가 더해진 이중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금 손 쓰지 않으면 20년 후 한국의 부의 집중도는 미국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아메리칸 드림이 죽은 게 아니라, 베이비부머가 다 가져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