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원자재가 무너졌는데, 금은 이제 무서울 게 없다
에너지는 바닥을 치고, 식료품은 곤두박질쳤지만, 금은 혼자서만 달에라도 갈 기세로 치솟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26% 급등하며 온스당 3,000달러(420만 원)를 넘어선 금값은 도대체 무엇이 이끌고 있는 걸까?
JP 모건(JP Morgan)의 예측에 따르면 중앙은행들이 2025년에도 900톤의 금을 매입할 예정이며, 이는 3년 연속 1,000톤 이상 구매하던 추세가 지속됨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골드만 삭스(Goldman Sachs) 분석에 따르면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매달 80톤씩 금을 사들이고 있으며, 이는 현재 금값 기준으로 85억 달러(11조 9,000억 원)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더 놀라운 건 이 구매의 상당 부분이 비공개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이 선두주자지만, 폴란드, 터키, 카타르, 이집트까지 너도나도 금 사재기에 나서고 있다. 폴란드 중앙은행은 금 보유량을 2023년 13%에서 20%까지 늘리겠다고 공식 발표했으며, 2023년 130톤, 2024년 61톤을 매입했다. 이는 단순한 분산투자가 아니라 달러 패권에 대한 노골적인 도전이다.
2025년 상반기 평균 일일 금 거래량은 3,290억 달러(약 461조 원)로 반기 기준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2024년 일평균 2,270억 달러에서 39% 급증한 수치로, 금 시장에 얼마나 많은 자금이 몰리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더 흥미로운 건 CME에서 거래되는 금 선물계약이 일일 2,700만 온스에 달해 SPDR Gold ETF의 80만 온스보다 30배 이상 많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투자를 넘어선 투기적 열기를 의미한다.
JP모건은 2025년 4분기까지 금값이 온스당 3,675달러(514만 원)에 도달하고, 2026년 중반에는 4,000달러(560만 원)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현재 수준에서도 15% 이상의 추가 상승 여력이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 전망의 배경이 더욱 흥미롭다. 경기 침체 확률 증가와 지속되는 무역·관세 위험이 주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즉, 경제가 나빠질수록 금값은 더 오른다는 역설적 상황이다.
세계 금 협회(World Gold Council) 조사에 따르면 응답 중앙은행의 73%가 향후 5년간 달러 보유량을 중간 정도 또는 대폭 줄일 계획이라고 답했다. 동시에 금, 유로, 위안화의 비중은 늘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럽 중앙은행(ECB) 분석에 따르면 "달러 준비금에서 벗어나려는 다각화가 중앙은행 금 매입의 70%를 설명한다"고 한다. 이는 금 가격 상승이 단순한 시장 현상이 아니라 글로벌 통화 체제의 근본적 변화임을 시사한다.
미국 조폐국(U.S. Mint) 보고서에 따르면 1/10온스 금화 판매가 2025년 1분기에 300% 급증했다. 금값이 높아지자 소액 투자자들이 분할 매입에 나선 것이다. 이제 5,000달러(700만 원) 미만에서는 분할 상품이 심리적으로 중요한 진입점 역할을 한다고 분석된다.
블록체인 기반 금 거래 플랫폼도 급성장하고 있다. 팍스 골드(PAX Gold) 토큰은 운용자산 20억 달러(2조 8,000억 원)를 돌파했다. 전통적인 금 투자와 암호화폐 인프라를 연결하는 혁신이 새로운 투자자층을 끌어들이고 있는 셈이다.
금이 홀로 상승하는 동안 에너지와 식료품은 하락세를 보였다. 이는 전형적인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지만, 그 규모가 예상을 뛰어넘는다. JP 모건 연구에 따르면 "통화 수요가 2025년 금 상승의 85%를 설명하는 반면, 2020년에는 40%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는 통화 불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과거보다 훨씬 커졌음을 의미한다.
세게 금 협회의 금 수익률 기여요인 모델(Gold Return Attribution Model)에 따르면, 위험과 불확실성이 지난 6개월간 금 수익률의 4%를 설명했으며, 이 중 절반은 지정학적 위험 지수 상승과 연관돼 있다. 더 놀라운 건 이코노팩트(Econofact) 연구에 따르면 글로벌 불확실성이 금 상승의 47%를 설명한다는 분석 결과다.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무역갈등, 중동 긴장 고조 등이 금에 대한 수요를 지속적으로 자극하고 있다. 특히 현물 금값이 온스당 3,328달러로 연초 대비 27% 상승한 상황에서 지정학적 불확실성과 전통적 안전자산에 대한 신뢰 저하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세계 금 협회의 최신 조사에 따르면 36개 응답 중앙은행 중 19개가 국내 소규모 금광에서 현지 통화로 직접 금을 구매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는 작년 조사의 14개에서 늘어난 수치다.
콜롬비아, 탄자니아, 가나, 잠비아, 몽골, 필리핀 등이 이런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현지 통화를 사용해 준비금을 늘릴 수 있어 다른 준비자산을 희생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주요 이유다.
이제 금이 아니라 달러가 '대체재'된 시대가 온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