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의 혁명과 그 희생자들
<러시아 혁명>, <돌아온 희생자들> 서평
스티븐 스미스, 『러시아 혁명: 1917년에서 네프까지』와 스티브 F. 코언, 『돌아온 희생자들: 스탈린 사후, 굴라크 생존자들의 증언』을 읽고
처음 내가 이 ‘희생자’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한 도서인 ‘김병호, 『우크라이나, 드네프르 강의 슬픈 운명』’을 읽으므로 인해서다. 이 책에서는 ‘홀로도모르’란 용어가 나온다. 이는 스탈린이 중공업의 기반을 마련하고자 강제적인 ‘농업 집단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부농인 ‘쿨락(Kulak)’집단을 비롯하여 우크라이나 농민들이 착취 및 수탈을 당함으로써 1932~33년에 걸쳐 최대 1,000만 명에 이르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아사한 사건이었다. 이는 당시 우크라이나 전체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스탈린과 소련은 우크라이나인들의 죽음을 방치하였고, 이들에게서 토지를 빼앗으면서 살해·수용소행·추방 등 폭력을 일삼았다. 그러나 이는 스탈린 시기 ‘홀로코스트’의 한 사례일 뿐이었다.
스탈린 치하의 폭정에 따른 ‘희생자들’에 대해 알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스탈린이라는 희대의 악한이 등장할 수 있었던 계기를 마련해 준 ‘소련’의 탄생에 대해 알아야 한다. 스티븐 스미스의 『러시아 혁명』은 러시아 혁명의 배경과 과정, 그 결과 그리고 그로 인한 내전과 전시 공산주의, 신경제정책에 대해 집약적인 설명을 해준다. 레닌과 러시아 혁명에 대한 설명은 스탈린과 그의 집권 과정을 보여주며 끝이 난다. 그 과정에서 눈여겨볼 수 있는 것은 레닌과 볼셰비키가 희망했던 혁명의 이상이 ‘변질’했다는 것이다. 이 ‘변질’의 과정에서 스탈린을 비롯한 기회주의자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차지하게 되었다.
스티븐 F. 코언의 『돌아온 희생자들』은 스탈린 집권기 동안 스탈린에 의해서 소련 각지의 수용소에 강제로 끌려간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은 굴라크 생존자들의 증언과 스탈린 사후 정치지도자를 비롯한 소련 사회에서의 ‘희생자들’의 삶을 얘기한다. 희생자들은 스탈린이 살아 있을 동안에 그의 정적 또는 반대자이거나 그들의 일가 식구였었다. 그들은 모진 고문과 가혹한 폭력으로 인해 자신이 반체제 인사임을 거짓 자복하고, 혹한의 지역에 설치된 비위생적 시설인 굴라크(수용소)에서 강제 노역을 해왔다. 이들은 굴라크에서 삶을 포기했거나 마지막 희망을 놓지 않은 채 10여 년간 고난의 시기를 견뎌왔다. 스탈린에 의해 굴라크에 강제 수용된 피해자들은 수백만에 달하며 그로 인해 천애고아가 된 이들을 비롯하면 ‘희생자들’은 수 천만에 달한다고 한다.
스탈린 시기의 소련과 스탈린주의는 전체주의적 성격을 갖는다. 1917년 러시아의 붉은 혁명은 전제국가인 제정 러시아를 타파하려는 것이었지, 전체주의화를 꿈꾸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스탈린 집권 이후의 소련은 히틀러의 나치즘과 더불어 전체주의의 한 상징이 되었다. 또한 스탈린은 히틀러에 버금가는 학살자였다. 러시아 혁명은 성공했으나 스탈린의 소련은 그 혁명의 이상을 저버렸다. 스탈린의 소련은 과거 제정 러시아의 전제정에 비할 만큼 폭압적인 체제였으며, 1인 독재의 전체주의 국가였다.
그렇다면 러시아 혁명은 왜 스탈린과 그의 소련을 낳았을까? 이는 러시아 혁명 이후 ‘혁명’이 현실에 부딪혀, 또는 일련의 선택을 거치며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1917년의 혁명 이후 볼셰비키는 맨셰비키 세력과 내전을 겪는다. 내전 시기 동안에 레닌과 볼셰비키는 ‘전시 공산주의’에 들어서며 희생과 착취를 정당화였고 이를 위한 필요적인 수단으로 ‘폭력’을 아끼지 않았다. 레닌은 스탈린의 요청을 받아들여 반 볼셰비키 세력에 대해 철저하게 폭력으로써 응징하였다. 적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 체제를 위한 희생의 강요, 내집단을 제외한 외집단에 대한 배타성, 기회주의자들의 수용은 혁명의 이상과 달리, 그 이전의 전제국가였던 제정 러시아의 것이었다.
이러한 속성은 전시 공산주의에서의 폐해를 극복하고자 했던 신경제정책에서 완화하려는 기미를 보였으나, 레닌의 사망으로 변화를 겪었다. 레닌의 사후 실권을 장악한 스탈린은 정적들을 한 차례 한 차례 제거해나갔다. 결국, 그는 소련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반대자와 적들을 제거하고자 폭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체제 내 적을 만들면서 까지 폭력을 일삼았다. 그는 소련을 강대국의 반열에 올리기 위해, 농업 집단화를 강행하였고, 그에 대한 저항에도 폭력으로 일관했다. 그는 자신의 측근에 기회주의자들을 대거 등용하였다. 스탈린 시기 당료들과 민중은 ‘보다 나은 안락한 삶’을 위하여 스탈린에 순응하였고, 작은 스탈린이 되어 아랫사람들에게 전횡을 일삼았다. 스탈린과 당을 제외한 외집단은 모두가 ‘폭력’의 대상이었고 착취와 수탈의 대상이었다.
스탈린의 정치적 야심, 적에 대한 잔혹성, 광기에 가까운 편집증과 폭력성, 대 러시아 민족주의자 등의 개인적 요소만이 그의 공포 정치와 테러를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러시아 혁명의 변질과 퇴색이 스탈린 같은 정치지도자를 배출하였고, 그와 유사한 성격의 이들을 사회에 만연하게 만들었다. 스탈린과 소련 사회 내의 공포와 테러에 인민은 순응하였고, 희생자들을 외면하였다. 이들은 자신을 제외한 이들이 희생되는 것을 묵인하였다. 일부는 이를 기회로 여겼다. 한 사회가 가진 ‘벌거벗은 폭력’, ‘날 것의 폭력’이라는 원초적 폭력에 겁을 먹고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했다. 할 수 없었다.
스탈린 사후 집권한 흐루쇼프 역시 스탈린 시기에 ‘폭력’에 방관하고 일조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는 여타의 계승자들과 동료들과는 달리, ‘양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스탈린 격하 운동’과 함께 희생당한 이들의 복권을 위해 힘썼다. 그러나 그를 비롯한 개혁파들은 당내 보수파에 밀려 권력을 반납할 수밖에 없었다. 브레즈네프 시기에는 오히려 스탈린이 복권되어 그의 업적을 찬양하였다. 고르바초프와 옐친은 집권하고 나서 희생자들의 완전한 복권과 그들의 처지 개선을 위해 노력했으나,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붕괴로 옐친은 경제 정책의 실패로 그 성과는 미약했다. 현재 러시아에서는 민간단체에서 잊혀진 ‘희생자들’을 기억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집권 중인 푸틴은 한편으로는 스탈린의 폭력에 따른 희생자들에 애도를 표하지만, 스탈린의 강한 소련과 그에 따른 업적을 열망하기도 한다. 그와 그의 러시아는 ‘강한 러시아’를 목표로 하며 국제사회에서 행위하고 있다.
그러나 스탈린 시기의 ‘희생자들’에 대한 올바른 규명이 없다면, 러시아는 앞으로도 과거에 묶여 올바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동양에서 역사서에 거울 감(鑑) 자를 많이 쓰던 이유는 과거의 사례를 통해서, 오늘에 있어 과거의 잘못된 것들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의미를 담고자 했다. 러시아는 희생자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음은 흐루쇼프가 희생자 문제 해결에 대해 남긴 말이다. “물론 내가 정권을 쥐고 있을 때 이 일을 끝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한 사람이 못다한 일은 그다음 사람이 할 테니까요. 만약 그 사람도 못 한다면 또 다음 사람이 하면 됩니다. 정당한 명분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법이니까요.”
15.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