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2.15. 교코

희망을 춤추다.

by 차설

<교코>는 소설의 제목이자 주인공의 이름이다. 교코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읜다. 교코는 우연히 미군인 호세에게 춤을 배운다. 그로써 교코는 구원받았다고 한다. 짧은 인연을 뒤로한 채 둘은 헤어지고, 스물한 살이 된 교코는 호세를 만나고자 무작정 미국으로 떠난다. 교코는 낯선 미국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의 시선에서 교코와의 만남을 통해 이야기는 전개된다. 처음 교코를 만나는 이들은 그의 외양에 놀라고 교코의 의연함에 놀란다. 교코라는 인물과 교코의 춤은 그들에게 삶의 어떤 부분을 환기시켜준다. 시원한 바람 한 줄기처럼. 교코는 소문을 더듬어가며 호세에게로 향한다.


호세는 죽어가고 있었다.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고 돌아가지 못한 채 외로이 죽어가고 있었다. 호세는 쿠바계 미국인이자 동성애자였다. 그리고 지금은 중증 에이즈 환자였다. 그가 군에 입대한 것은 가족들의 영주권을 위해서였다. 호세는 군에 적응하지 못했고 군 생활은 외면하고 싶은 기억이었다. 호세는 바이러스가 뇌까지 미쳐 나날이 기억을 잃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좁은 병실에서 조각조각 가위로 오려 붙여 꾸며낸 거짓된 영광으로 삶을 견뎌내고 있었다.


호세는 교코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교코는 처연하지 않고 의연했다. 교코는 호세를 고향에 데려다 주기로 마음먹는다.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교코는 호세를 그의 어머니가 살고 있는 마이애미로 데려다 주기 위해 여정을 떠난다. 뉴욕에서 마이애미로의 여정은 고되었다. 에이즈 환자인 호세를 사람들은 기피하였고 거부하였다. 와중에 호세의 병증은 나날이 심해졌다. 호세는 어머니에게 선물할 램프 갓을 구해줄 것을 교코에게 부탁한다.
교코는 길을 물어보려 들린 민가에서 한창 춤 연습에 몰두하는 제시카네를 만난다. 교코는 이들에게 램프 갓을 받고 춤을 가르쳐준다. 램프 갓을 받아 기뻐하던 호세는 교코가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불현듯 과거가 떠오르려 한다. 호세는 이를 억누르지만 이후 자신이 손수 이름을 써 주었던 교코의 댄스 슈즈를 보곤 교코를 기억해낸다. 그리고 차 밖에서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린다. 남미 이주민 부랑아들이 교코를 겁탈하려고 했고, 힘겹게 몸을 이끌고 나간 그는 칼로 위협하는 부랑아들에게 에이즈를 옮길 거라 협박하며 쫓아낸다.


교코는 과거 아이였을 때처럼 호세에게 안긴다. 호세는 교코의 이름을 부르고 교코는 호세가 자신을 기억해낸 것을 깨닫는다. 둘은 서로를 부축하며 차로 돌아오지만 교코를 구하려다 폭행을 당한 호세는 죽음을 맞는다. 어머니를 만나러 마이애미에 도착하기 하루 전이었다. 호세의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에 교코를 원망하며 추궁한다. 교코의 입을 통해 호세가 유언 대신 에스페란사 노래에 맞춰 춤을 춘 것을 듣는다. 그녀는 그제야 교코에게 고맙단 말을 전한다.


쿠바인들에게 춤이란 단순한 여가생활이 아니었다. 노예생활에서, 이민생활에서 춤은 삶의 희망을 북돋는 행위이자 의식이었다. 호세 역시 그랬다. 한 평생 이방인이었던 그는 삶에서 절실히 희망을 갈구했기에 더욱 춤추었다. 동료들의 무시와 차별 속에서 호세는 춤을 추며 희망을 꿈꾸었다. 부모를 잃은 어린 교코에게 춤을 가르쳐주었다. 교코에게 희망을 나눠준 것이다. 교코의 삶은 철조망 곁을 도돌이 걷는 것이었지만, 춤이 있었기에 의연할 수 있었다. 교코는 호세를 찾아갔고 자신을 잃고 죽어가는 호세에게 희망을 나눠주었다. 호세가 죽기 전 교코와 함께 춤추었던 노래 ‘에스페란사’의 의미가 희망이다. 과거와 자신을 잃고 단절한 채 어느 것도 바라지 못하고 죽어가던 호세는 교코와 함께 춤을 추며 쿠바에 가고 싶단 바람을 품는다. 호세와의 여정에서 교코는 철조망을 벗어난다. 삶에 의연했지만 유리되었던 교코는 비로소 완연한 의연함에 이른다. 삶이란 노정 곳곳에 불안이 도사리지만 교코는 희망을 춤추기에 다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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