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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설 Feb 02. 2021

술 좋아하시는지?

에세이


술 좋아하시는지? 오늘은 술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한다. 정확히는 술과 인간에 대한 얘기이다. 날이 무더워질 때면 더위를 가시고자 시원한 맥주 한 잔이 간절해진다. 날이 추워질 때면 추위를 떨치고 몸을 덥히고자 따뜻하게 데운 정종 한 잔이 그리워진다. 인생의 고달픔을 위로하고자 소주 한 잔을 마시고, 기분 좋은 저녁 분위기를 누리고자 와인 한 잔을 마신다. 파티의 즐거움을 위하여 샴페인을 터뜨린다. 사람 사는데 술 없는 곳이 없고, 술 있는 곳에 사람이 없을 수 없다. 술의 발견 이후, 인간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술과 동고동락을 함께 해왔다.


포도 농사를 짓던 소년은 어느 날 우연히 널따란 대야에 담아두었던 포도를 발로 밟아 으깬다. 소년은 곧 이를 까맣게 잊고 만다. 시간이 흘러 평소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날, 낯선 냄새에 이끌려 발걸음을 옮긴 소년은 무심코 밟았던 그 대야 속 포도의 변화를 눈앞에 맞이한다. 대야 안에는 짓이겨진 포도가 액체가 되어 있었다. 소년은 호기심에 이를 떠 마셔본다. 유레카! 이 시큼하면서도 단 맛은 무엇일까? 이 쌉싸름하면서도 과일 특유의 단내, 마시고 나니 나타나는 기분 좋은 흥취. 바로 ‘술’이다. 이 이야기는 포도주의 유래에 관한 것이다.


이야기 속 소년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주신(酒神) 디오니소스이다. 이야기를 더 이어보자. 그가 올림포스의 열두 좌중 하나를 맡게 되자, 그를 따르는 많은 무리들이 축제를 벌였다. 왕은 백성들의 방탕함에 격분하여 나아가 흩어질 것을 요구했지만, 술에 취한 백성들은 왕을 때려잡아 죽였다. 술은 적당히 마시면 기분을 북돋우지만 지나친 음주는 광기와 폭력으로 이어진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나지만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술에 취한 백성이 왕을 죽였다. 왕의 후계자는 권력의 안정과 정치적 생존을 위해서라도 그들을 모조리 잡아다 처형했을 것이다.


이번엔 취한 왕들의 이야기다. ‘주지육림(酒池肉林)’이란 고사가 있다. ‘술로 연못을 이루고 고기로 숲을 이룬다’는 말이다. 중국의 고대국가인 하나라 걸왕 사이계와 은나라 주왕 제신에 관한 이야기다. 사이계는 주지육림을 이루고 벌거벗은 남녀 수백 명과 함께 음행을 즐겼다. 제신은 ‘포락지형(炮烙之刑)’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구리 기둥에 기름을 바르고 그 밑에 불을 피운 다음, 죄인들이 기둥을 건너면 죄를 사면해주기로 하였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걷다 미끄러져 불에 타 죽었고 제신은 이를 크게 즐거워했다. 그는 임산부의 배를 가르고, 충신의 심장을 도려내는 등 악행을 일삼았다. 그들은 결국 자신들의 나라와 함께 최후를 맞이한다.


21세기 왕조 국가인 북한에서도 술은 떼려야 뗄 수 없다. 북한의 김정은은 수억 원을 본인의 주류 창고를 채우는 데 이용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1만 병에 달하는 와인 창고를 상속받았다는 얘기도 있다. 아무리 두주불사(斗酒不辭)라 할지라도 그 술을 혼자 다 마시진 못할 것이다. 반면에 김정은은 금주령을 내리고 이를 어긴 군 장교들을 즉결 처형하는 등, 북한 주민들에게는 음주를 강제로 금하고 있다. 곡식이 부족한 북한에서 술을 제조하는 데 곡식을 쓰는 것은 ‘오용’이자 ‘남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배자인 그는 값비싼 주류를 마시며 향락을 즐긴다. 피지배자인 북한의 주민들은 오늘도 곡식 낟알 하나에 전전긍긍하는 데도 말이다.


니콜라이 2세의 금주령에 반발한 군인들은 러시아의 붉은 혁명을 방관하였다. 임오군란은 쌀 포대에 모래와 겨를 섞었기 때문에 일어났다. 일용할 양식이 있어야 술도 빚는 법이다. 삶의 애환을 달래주고 흥취를 돋을 술도 배고픔은 면해야 단 법이다. 보들레르는 그의 시 ‘취하라’에서 ‘시간에 학대받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쉬지 말고 취하라./ 술이든, 시든, 덕이든,/ 그 무엇이든/ 당신 마음 내키는 대로’ 취해야 한다고 말한다. ‘항상 취해 있어야 한다. 그게 전부다./ 그게 바로 유일한 문제다.’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독재자의 폭정에 학대받는 누군가를 두고 한껏 취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이는 ‘나’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인 탓인가? 아뿔싸! 주류 가격이 인상되었다. 취하는 것도 녹록지 않다. ‘나’는 아직 살아남지 못하였다. ‘나’는 ‘노예’이다. 술 좋아하는가? 그렇다. 다만 취하기 위해서 취하지 않아야 하는 나날일 뿐이다.


(17.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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