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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설 Apr 28. 2023

23.04.28. 앵커

‘앵커’의 세 가지 의미에 관하여

‘앵커’는 영화 속 주인공 정세라의 직업이자 위치이다. 아나운서인 정세라는 방송국 9시 뉴스의 메인 앵커이지만, 모종의 일에 휘말리며 ‘앵커’의 자리에서 밀려난다.     


영화는 미스터리, 스릴러를 표방하며 의문의 살인사건, 정신분열증과 최면요법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영화는 주재로 모녀 간 애증과 자녀살해를 다루지만, 영화의 주제는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양육에 대한 두려움과 어려움이다.     


영화는 한 건의 자녀살해와 한 건의 자녀살해 미수, 한 건의 의도치 않은 자녀살해 미수 사고를 보여준다.     

자녀살해 사건은 젊은 미혼모 가정의 이야기로, 중증의 우울증과 정신분열증을 앓던 윤미소의 분열된 자아는 아이를 살해하고 스스로도 죽음에 이르게 한다. 미혼모 여성은 죽기 전 방송국의 메인 앵커 정세라에게 이를 알리고 세라는 앵커 자리를 공고히 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어머니의 권유를 받아들여 이 사건을 취재하게 된다.     


자녀살해 미수는 어머니 소정과 딸 세라의 숨겨진 과거이다. 윤숙은 과거 기상캐스터로 방송 아나운서를 꿈꾸었지만 세라를 임신한 것이 언론에 들춰져 꿈을 포기하게 되었다. 미혼모로 세라를 양육하던 윤숙은 좌절된 꿈과 고된 삶에 실의에 빠지고, 자신의 삶을 뒤바꾼 세라를 원망하게 된다. 어느 날 윤숙은 세라와 함께 동반 자살을 시도하지만 시도 끝에 포기하고 만다. 그 후 과거를 철저히 숨긴 채 윤숙이 아닌 세라의 엄마 소정으로서 삶을 살아간다.     


자녀살해 미수 사고는 세라와 그녀의 뱃속 아기에 관한 것이다. 소정은 자신의 삶은 무너졌다 여기고 세라의 삶을 빚어내는 데 모든 것을 쏟는다. 소정은 세라의 삶에 자신의 욕망을 투영해 세라를 자신이 꿈꾸던 방송국 간판 메인 앵커로 빚어내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세라와 세라의 삶은 소정 자신의 것이 아니기에 소정은 세라를 보며 대리만족하면서도 무너진 자신의 삶에 고통스러워한다. 그렇기에 소정은 세라에게 양가적 감정을 느끼면서도 세라를 보다 더 자신이 욕망하던 존재로 만들기 위해 애쓴다.     


그러던 어느 날 소정은 세라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고 세라의 경력과 미래를 위해 아이를 지울 것을 강권한다. 세라는 잊혔던 과거를 우연히 기억하고 끄집어내 토해내고, 충격을 받고 절망한 소정은 딸에 대한 죄책감과 자신에 대한 혐오감을 못 이기고 목을 매 자살한다. 세라는 충격으로 정신이 분열돼 어머니의 자아를 빚어낸다. 그러나 어머니의 자아는 소정이 아닌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과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었고 결국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세라는 그것인 자신을 찌르고 만다.     


‘앵커’의 또 다른 의미는 ‘닻’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개인의 삶에서 양육자로서 삶이 뒤바뀌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바다를 누비며 자유로이 항해하던 배가 연안에 닻을 내리고 정박하는 것과 같다. 오랫동안 물결을 가르며 나아가지 못하고 격랑에 몸소 부딪혀 맞아야 한다. 자유와 바람, 가진 것을 일부 내지 전부, 자식과 나눠 길러내야 하지만, 양육에 대한 고뇌와 고통을 아이와 나눌 수는 없다. 임신과 출산, 양육은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두려움이자 어려움을 갖고 있다. 결국 자신의 아이를 살해하기에 이른 미혼모인 미소는 딸을 미워하는 생각이 드는 것에 너무나도 괴로워한다. 소정이 혼신을 기울여 세라를 빚어내고, 세라가 분열된 자아로 소정을 빚었듯.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고 미워하면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였다.

   

앵커(anchor), 닻의 모양새는 이집트의 앙크(ankh)와 유사하다. 앙크는 이집트어로 생명, 영원한 생명을 뜻한다. ‘ankh(anch)’에 접미사 ‘or’을 붙이면 ankhor(anchor)가 된다. 이를 ‘생명을 품은 사람’, ‘잉태한 사람’으로 나타낼 수도 있지 않을까. 인간은 불멸과 영생을 할 수 없기에 인간이 영생을 꾀하는 방법은 책을 쓰거나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라 한다. 기록과 기억을 전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원한 생명이란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일 수 있다. 아이를 낳아 기르고 그 아이가 자라 낳고 길러준 이를 기억하고, 자라난 그가 아이를 낳고 길러, 그와 그를 낳고 길러준 이들의 기억을 아이에게 전하는 것이다.      


세라는 혼수상태에서 꿈을 꾼다. 과거 어렸을 적 소정과 함께 즐거웠던 바닷가 한 때의 기억을 떠올리고, 소정과의 관계를 행복하게 여겼던 대화를 떠올린다. 이를 통해 어머니 소정과 못 다한 해원을 마치고 용기를 얻으며 깨어난다. 세라는 눈물을 흘리며 아이의 박동을 느낀다. 삶의 노정에서 생명을 품고 닻을 내린 이들의 삶이 보다 순탄하길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닻을 올리고 다시금 바다로 나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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