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형아파트프로젝트 : 어디사세요?
인구는 점차 줄어간다는데 집값은 점점 치솟는 이상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지어지는 아파트를 보고 있노라면, 과연 저기에 다 사람이 살고 있는 걸까, 몇십년 후에는 저 과다 공급된 아파트가 텅 비어 폐허로 변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죠. 그래서 생각해 본 <소멸하는 세상에서> 편 입니다.
소멸하는 세상에서 (상편)
https://comic.naver.com/bestChallenge/detail.nhn?titleId=704549&no=20
소멸하는 세상에서 (하편)
https://comic.naver.com/bestChallenge/detail.nhn?titleId=704549&no=21
어릴 적 살았던 집은 이상하게 향수를 자극합니다. 망가진 가구를 이리저리 활용해 만든 베란다의 아지트, 놀이터에서 올려다 보아도 우리집임을 단박에 알 수 있던 기괴하게 커다랗던 베란다의 고무나무, 시간 맞추어 울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던 낡은 뻐꾸기 시계, 한 두해 새끼 손톱만한 딸기를 맺고 어느새 죽어버렸던 딸기 화분 등등. 만화 속 할아버지는 그런 향수 어린 아파트를 떠나지 않고 한 평생 같은 곳에 살아왔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 신도시의 아파트는 구도시가 되고, 젊은 사람들은 신도시로 터전을 옮겨 아파트가 텅 비어가자 시에서는 아파트의 활용을 고심합니다. 재건축을 하기에는 영 매리트가 없는 지역인지라 마땅한 해결책은 없고, 아파트에 남은 노인들은 스스로의 묫자리를 자신들의 아파트에 꾸미기 시작합니다. 경제성이 없는 아파트는 자연스레 묘역으로 바뀝니다. 세월이 많이, 아주 많이 흐른 먼 미래에 이 묘역 아파트는 관광자원이 됩니다. 마치 지금 우리가 경주와 공주의 왕릉을 찾는 것 처럼 말이죠.
우리가 묘지에서 느끼는 감정은 주로 엄숙함과 경건함입니다. 고인에 대한 애도와 비통함의 감정이지요. 만화 속에서 언급한 3개의 묘역, <엔릭 미라예스의 스페인 이구알라다 묘역, 군너 아스플룬드의 스웨덴 숲의 묘역, 승효상의 봉하마을 노무현 묘역> 은 그런 감정을 디자인적으로 수려하게 풀어냅니다. 날카롭고 어지럽게 흩뜨려진 바닥의 패턴, 시멘트와 돌, 철의 재료가 주는 회색빛 감각, 시선을 비워냄으로써 연출하는 공간감, 산책하듯 사색하듯 펼쳐진 광장...
그러나 시간이 더 흘러, 몇백년이 지나고 나면 그런 감정은 사라지고, 옛 시대의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그 자리를 채우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경주의 천마총이나 공주의 무령왕릉 등 고대의 왕릉묘역을 참배의 감정보다는 고대 문화유산의 관람에 대한 태도로 접근하게 됩니다.
만화에서 묘사한 아파트 묘역은 세월이 후~~울쩍 흐른 뒤의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서글픔의 감정보다는 몇세기전 생생하게 살았던 조상들의 흔적이 담긴 생활사 박물관같은 모습을 떠올리고 싶었습니다. 지금 방안을 둘러보세요. 5세기 쯤 흐른 어느 날, 우리의 후손이 우리의 방을 우연히 발굴하여 우리가 사용하였던 가구, 책, 각종 생활용품 등 4천점 이상의 유물에 환호성을 지를지도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