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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성섭 Jan 23. 2024

어릴 때 학대한 부모를 만나야 하나

어떤 사람이 자식이 어릴 때 학대한 부모가 노후에 자식을 만나고 싶어하고, 자식은 부모를 만나지 않으려고 할 때, 이것은 부모의 업보인가 아니면 자식의 잘못인가를 질문하였다.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자식이 어릴 때 고막이 손상되고, 다리뼈가 부러질 정도로 학대한 70대 부모가 40대가 된 그 자식을 만나고 싶어하지만, 학대받은 그 자식은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그것은 부모의 업보인지 아니면 자식의 지나친 행동인지를 질문하였습니다. 가정사는 대부분 당사자가 아니면 정확한 답을 할 수 없다고 하기 때문에, 저도 정확한 답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은 이러합니다.  


자식이 어릴 때 고막의 일부가 손상되고, 또 다리뼈가 부러질 정도로 때렸다면, 그것은 분명히 부모의 잘못입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이제는 부모는 70대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고, 자식은 40대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자식을 만나기를 바랐지만 만나지 못하고 이미 돌아가셨고, 이제 아버지 혼자 살아계신 것 같습니다. 질문 내용으로 보아, 자식은 현재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지 않는 것이 확실한데 상호 소식은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 자식이 어릴 때 왜 그렇게 자식이 부상 당할 정도로 엄하게 매질하였는지를 자식의 입장이 아닌 부모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하여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식을 키우면서 자식으로 인해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식이 미워서가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자식을 매질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 40대의 자식이면, 그 자식이 어릴 때는 자녀의 인권이 지금보다 중시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자식이 말을 듣지 않았을 때 매질하는 부모도 있었습니다. 자식이 미워서라 아니라, 자식이 말을 듣지 않아 매질하는 가운데 자식이 장애를 당했다면, 성장한 자식은 부모의 입장을 이해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부모와 자식은 피로 맺어진 천륜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지나쳤지만, 그래도 그 자식이 그 부모님을 이해하고 자식의 도리를 한다면, 그것은 훌륭한 자식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부모가 어린 자식을 상습적으로, 그것도 이유도 없이 장애가 생길 정도로 자식을 때렸다면, 저는 나쁜 부모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자식이 성장한 후 부모를 찾지 않는다고, 그 부모는 자식을 나무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질문자가 말한 것과 같이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한 보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식의 입장에서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는 비록 자식의 보살핌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하여도, 자식은 부모와 인연을 강제적으로 끊으라는 의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천륜의 관계입니다. 아무리 부모가 자식을 학대하여도, 부모가 없다면, 어느 사람도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없습니다. 학대를 받은 자식도 부모가 있었기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자식이 태어난 것은 부모님의 공덕입니다. 성장 과정에서 학대받아 고통을 받고 있는 자식에게 꼭 부모를 만나라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부모는 부모입니다. 만약 부모를 이해할 수 있다면, 부모님이 생존하고 있을 때 만나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부모님을 찾아보고 부모님의 마음을 풀어줄 수 있다면, 그 자식은 그렇게 하지 않을 때보다 훨씬 마음의 편안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부모님도 자식을 학대한 것을 뉘우칠 기회를 갖고 편안하게 돌아가실 수 있고요. 


결론적으로 학대받은 자식이 부모를 만나고 돌보고 하는 것은 자식의 선택이라고 하여도 저는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부모를 만나보는 것이 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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