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죽음이 좋을까?

by 차성섭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좋을까?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어떤 존재라면 이 문제는 반드시 생각하여야 할 문제일 것이다. 사람을 포함하여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그렇다면 인간들도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를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살아가면서 자신이 언제 죽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지 않고 삶 그 자체에 주의를 집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개중에는 우연한 기회에 이것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도 그것을 경험하였다. 나이가 70이 넘어가면서 오래 사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죽자라는 생각은 전부터 하여 왔다. 깊이 생각한 것은 아니고 필요 없는 수술을 하지 않고, 주변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나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노후를 보내자고 생각하였다. 만약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오래 살아도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평소에도 하여 왔다.


우연한 기회에 뇌종양의 소견이 있으니 상급병원에 검사를 받아 보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 연락을 받으니, 뇌암이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감이 마음속에서 갑자기 일어났다. 차분히 정신을 가라앉히면서 다시금 생각하여 보았다.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그렇다면 조금 일찍 죽느냐, 늦게 죽느냐가 문제이지 죽는 것 자체는 받아들여야 한다.

자! 그렇다면 죽음을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여야 할까? 조금 더 살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여 산소호흡기에 의존하여 죽음과 싸워야 할까? 아니면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여야 할까? 나는 전부터 후자를 택한다고 생각하여 왔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일단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사실을 확인한 결과 뇌종양이 큰 문제가 되지 않으면, 자식이나 형제 등 주변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알리자. 이런 일이 있었다고 편하게 이야기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뇌종양이 위험하다는 진단이 나오면 다르게 행동하여야 할 것이다. 아내는 뇌종양이라는 소견을 받은 사실을 알고 있다. 아내에게 결과를 속일 수 없다. 아내도 병원에 같이 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내에게 주변 사람에게 나의 병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할 것이다. 대신 살날이 한두 달 등 얼마 남지 않고 또 통증이 심해지면 자식과 형제들에게 알리게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만날 사람을 만나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술 문제는 수술의 성공 가능성이 50%가 넘으면 수술을 하는 것으로 하고, 그 이하이면 수술을 하지 않을 생각이다. 나는 70살을 넘게 살았다. 살만큼 살았다. 병원에 입원하여 침대에 누워 생기 없는 삶을 사는 것보다는 집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즐겁게 사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내의 문제가 있다. 아내는 나와 같이 생활하기 때문에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있다. 아내를 속일 수는 없다. 내가 즐겁게 살면서도 아내가 원하는 데로 삶의 방법을 변화시킬 생각이다. 아내가 나 없이 혼자 사는 동안 불편한 것이 없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삶의 형태를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주지와 생활 방법 등을 아내의 의견을 따라 바꿀 생각이다. 지금까지는 나의 주장에 따라 거주지와 생활 방법 등을 결정하여왔기 때문이다.


상급병원에 뇌종양 검사를 예약하여 놓았다. 결과는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지 자연의 순리에 따라 나의 남은 생을 보낼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게 느껴졌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삶을 즐겁게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삶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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