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정체성을 확립한 후 자기를 완성해 나가는 것이 자아실현이다. 자아실현이란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 즉 자아의 본질을 실현하는 것이다. 자아실현은 주관적이고 실천적 개념이다. 자신이 판단하고 평가하며, 또 그것을 실천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이 잠재적으로 실현 가능한 자신이 되는 것이다. 이 욕구가 잘 충족된 사람이 사회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다. 매슬로우는 이 욕구가 다른 욕구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있는지에 대해서 확신하지 않았다. 자아실현은 사람마다 다르다.
자아를 실현하자
자아실현이란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 즉 자아의 본질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 자아실현은 사람교육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이며, 윤리의 핵심 내용이기도 하다.
자아실현에 대한 학자들의 설명
사람의 삶이 자아실현을 위한 자아의 잠재적 가능성의 실현 과정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언급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이다. 그는 사람의 본질을 합리성으로 본다. 따라서 합리성을 최대한으로 발휘함으로써, 사람의 궁극적인 목적인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두산백과> 이밖에도 자아실현을 설명한 학자들은 더 있다. 예로서 E. 프롬은 사람이 자신의 잠재 가능성을 창조적으로 발휘하고 실현하는 것을 생산성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프롬이 생산성이라고 표현한 것은 바로 자아실현과 같은 의미이다. 왜냐하면 그는 생산성의 개념을 ‘사람의 특유한 잠재적 가능성을 사람이 실현하는 것, 곧 그의 힘의 사용’이라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A.H. 매슬로우는 자아실현은 성장 동기가 계속적으로 충족되는 것이라 했다. 그는 욕구단계 이론을 통해 모든 욕구가 충족된 후에 마지막으로 갖는 욕구를 자아실현의 욕구라 했다. T. 브라멜드는 문화에 의해서 성립된 사회 속에서, 자신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발휘하는 것을 자아실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개인은 문화의 전승과 창조에 참여함으로써 자아실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철학자 T.H. 그린은 신학적 관점에서 사람이 신의 성품과 같은 최고의 선(善)의 상태를 실현하는 것이 자아실현이라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은 잠재적 가능성을 생득적으로 타고나며, 또한 그것을 현실화하고 실현하려는 본래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윤리와 교육의 목적은 사람 각자가 자아실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여러 학자들의 주장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자아실현이라는 개념 속에는 사람의 합리성과 창조성 그리고 사회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전제 아랫사람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이 자아실현이다. <인터넷 지식백과 참고>
A.H. 매슬로우의 자아실현
자아실현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A.H. 매슬로우의 설명을 더 살펴보겠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 사람들은 성장기간이 길다. 다른 동물들은 대부분 태어나서 어미가 오랫동안 돌봐주지 않아도 잘 자란다. 하지만 사람은 성장하기 위해 오랫동안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사람의 성장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신체가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변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이 사회가 추구하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신체와 정신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즉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동기가 있어야 한다. 인본주의 심리학자인 매슬로우는 사람의 행동을 본능에 의해서만 설명하지 않고, 보다 높은 차원의 동기 요인들을 제시한다. 그는 사람에게는 자신이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고 한다.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 즉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시키려는 욕구를 다루어야 사람의 행동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사람의 동기는 위계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위계적 구조 안에서 동기는 어느 정도 긴박한가, 얼마나 강한가, 어느 것을 우선해야 하는가의 상태에 따라 5단계로 분류한다.
먼저 생리적 욕구이다. 생리적 욕구는 생존하는 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욕구로서, 공기, 물, 음식, 휴식 등이 이에 속한다. 생리적 욕구가 만족되어야만, 더 높은 차원의 사회적 욕구와 목표 지향적 행동이 발생한다.
다음은 안전욕구이다. 안전 욕구는 전쟁, 질병, 상해, 또는 천재지변 등의 위기에 당면했을 때 어떻게든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욕구이다. 사람이 위험에 처했을 때, 그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애정 욕구이다. 애정 욕구는 타인과의 애정관계를 맺으려 하거나, 어떤 집단에서 소속감을 가지려고 하는 욕구이다. 친구, 배우자, 또는 자녀가 없는 사람들이 이런 관계망을 바라는 것에서 이 욕구를 확인할 수 있다.
네 번째는 자존의 욕구이다.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기를 원하는 욕구이다. 이 욕구가 충족되면 자신감과 자존감을 갖게 된다. 만약 충족되지 못하면 열등감, 무력감, 허탈감에 빠지게 된다.
마지막 다섯 번째가 자아실현의 욕구이다. 자아의 잠재력을 실현하여 최선의 인격체가 되는 것이다. 이 욕구가 잘 충족된 사람이 사회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다. 매슬로우는 이 욕구가 다른 욕구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있는지에 대해서 확신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욕구 수준은 매우 다양하다. 배고픔, 갈증과 같이 다른 동물도 가지고 있는 완전히 본능적인 것에서부터 사랑과 자기 존중감 등 사람에게만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는 욕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하지만 생리적 욕구는 가장 하위에 있고, 가장 강하다. 이것이 만족되지 않을 때는 이것을 만족하는 것이 선결 과제가 된다. 그리고 하위에 있는 욕구가 만족되면 그것보다 상위의 욕구가 나타나게 된다.
자아실현 욕구를 제외한 기본적 욕구들은 중요한 하나의 공통된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모두 무엇인가를 추구하며, 결핍에 의해서 활성화되는 역동적 체계라는 것이다. 이러한 결핍 동기들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 예로서 음식, 안전, 애정, 자기 존중감에 대한 욕구가 커질수록, 우리는 우리 자신과 타인을 포함해 주변의 존재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단지 결핍된 욕구를 충족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방해가 되는지에 근거해서 지각하고 다루게 된다. 어떤 것에 결핍되어 있는 사람은 결핍을 충족하는 것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주변 존재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고 정확하게 볼 수 없다.
하지만 기본적 욕구를 안정적으로 충족시킨 사람은 이 세상을, 곧 모든 측면에서 그 실체를 더욱 선명하고 객관적으로 본다. 이러한 사람은 결핍을 충족시키기 위해 더 이상 무엇을 요구하지 않으며, 또 더는 결핍으로 생긴 두려움과 의심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그는 더욱 포용적인 방식으로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과 상호작용하고, 세상을 더욱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며, 세상을 더욱 즐겁게 살 수 있게 된다.
이 단계가 바로 마지막 다섯 번째 자아실현의 욕구단계이다. 인격적으로 완성된 최고 위치에 있는 자아실현 욕구는 다른 욕구가 모두 만족되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는다. 이 단계는 사람의 생애를 통해 전혀 다른 종류의 동기가 출현하는 지점이다. 이들은 타인들의 평가보다는 자신의 내면적 충족과 성장에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살아간다.
매슬로우는 유명인과 우수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자기실현적 사람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특성이 있다고 보고했다.
먼저 자아를 실현한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현실을 더욱 효율적으로 지각하고 현실과 더욱 편안한 관계를 맺는다. 이러한 사람들은 더는 세상을 결핍 동기의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이고 인위적인(예: 관습적인) 것과 새롭고 구체적이며 개별적인 것(예: 개인적인 것)을 매우 쉽게 구분할 수 있다. 그 결과, 대다수의 사람이 인위적인 관념, 추상, 기대, 신념 그리고 고정관념의 홍수 속에서 살면서 이것을 실제 세상으로 착각한다. 반면 자아를 실현한 사람들은 자연이 만든 실제 세상에서 살면서 그 현실의 실체를 본다.
다음 특징은 자아를 실현한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지 않고, 남들을 도구로 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타인의 가치를 따지지 않고, 판단하지 않으며, 간섭하지 않고, 비난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다른 사람들에게 특별히 바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들을 전체로서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 덕분에 이들은 존재하는 것을 훨씬 더 명료하고 통찰력 있게 지각하고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복잡하게 얽히지 않고, 휘말리지도 않는 초연한 지각이다. <인터넷 지식백과 등 참고>
자아실현은 최고의 인격체가 되는 것이다
매슬로우에 따르면, 자아를 실현한 사람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또한 다른 사람을 수단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로 인정한다. 이러한 의미의 자아실현은 동양의 자기 수양과 같다. 수양(修養)이라고 하는 것은 심신을 단련하여 품성이나 지식이나 도덕을 닦는 것을 말한다. 동양의 수양은 말이 아니라 실천을 중시한다.
수양서의 대표적 책은 소학이다. 소학은 청소하고, 어른에게 나아가고 물러나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에게 공경하는 것과 같이, 몸으로 실천하는 것을 근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소학은 이러한 실천과정을 통해 흩어져 방탕 하여진 마음을 바로잡고, 올바른 인격자가 되어 본성을 회복하겠다는 뜻을 세우게 한다. 소학의 수신 내용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것이 대학의 격물치지(格物致知)와 성의정심(誠意正心)이다.
대학은 임금으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수신(修身)을 근본으로 삼을 것을 권유한다. 대학은 수신을 통해 개인 개인이 인격을 완성하기 위해 거쳐야 할 여러 단계를 규정하고 있다. 그것은 격물(格物)로부터 출발하여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으로 이어진다. 격물(格物)이라 함은 사물의 이치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물리적인 자연법칙의 탐구는 물론 인생관, 세계관, 역사관, 우주관등 정신적인 가치체계까지도 궁리하고 탐구한다. 이러한 진리탐구 과정을 통해서 치지한다. 치지(致知)는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는 것이다. 격물을 통해 얻은 경험을 가지고 깨달아 아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게 되면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할 지식을 갖게 된다.
사람이 분별능력인 지식을 가졌다고 하여 바로 완전한 인격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머리로는 옳은 것을 알면서도 몸으로는 그릇된 것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사람은 덕(德)이 완성된 사람이 아니다. 덕은 도(道)가 몸에 쌓여 자연스럽게 내면화 단계까지 들어간 것이다. 덕이 완성된 사람은 머리가 옳다고 생각하면 몸도 따라 한다. 이런 단계, 즉 몸에 덕이 자연스럽게 쌓여진 상태로 나아가기 위해서, 성의 정심을 해야 한다.
성의(誠意)라고 하는 것은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뜻이 거짓이 아니고 진실한 것을 의미한다. 내가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거짓이거나 과장된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그대로이다.
뜻이 진실하면 그다음으로 정심(正心), 즉 마음이 곧아야 한다. 마음이 곧다고 하는 것은 화나, 두려움이나, 욕심 등으로 동요되지 않고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성의로 뜻이 진실하고, 정심으로 마음이 흔들림이 없으면, 격물치지에 따라 올바르게 판단한 결정을 흔들림 없이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다.
이러한 행동이 반복되어 습관화되면, 그것이 곧 덕을 완성하는 것이다. 덕을 완성한 것은 바로 인격을 완성한 것으로, 자아를 실현한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자기를 기준으로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한다. 따라서 현실을 왜곡되게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며,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 보지 않고 인격체로 본다.
결국 동양에서나 서양에서나 자아를 실현하는 것은 자신의 본성을 회복하여 최고의 인격체가 되는 것이다. 최고의 인격체는 사욕에 의해 진실을 왜곡하고, 감정의 격정에 휩싸이지 않는다. 이러한 상태에서 자신의 잠재적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 가치를 삶의 과정에서 실현시켜나가는 것이 바로 자아실현이다.
마지막으로 설명하고 싶은 것은 자아실현을 잠재적 가능성을 실현시키는 것이라고 할 때, 잠재적 가능성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잠재라는 의미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숨은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잠재라는 개념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존재는 분명히 하고 있다. 다만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가능성의 의미는 어떤 일이 있을 수 있거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가능성의 개념 속에는 어떤 일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으며, 또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가능성은 현실성과 구분된다. 현실성은 현재 존재하거나 일어난 일이다. 그래서 가능성이 실제로 일어나거나 존재하게 될 때, 그것은 현실성을 얻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아실현은 될 수도 있고,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매슬로우의 경우와 같이 기본적 욕구들의 범위를 뛰어넘어 자아실현의 욕구로 들어가거나, 아니면 동양의 수신과 같이 격물치지와 성의정심을 통해 도덕적 최고 인격체가 되면,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아를 실현할 수 없다. 따라서 자아실현은 개인의 노력에 따라 될 수도 있고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매슬로우는 모든 사람들이 다 자아실현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