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를 찾는 것은 사람의 본성을 느끼고, 사회 속에서 사는 인간적 특징을 확인하며,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여기서 사회 속에서 사는 인간적 특징을 확인하는 것은 다른 사람과의 조화로운 관계가 핵심이다. 따라서 이 분야는 바람직한 관계를 위한 구체적 방법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대신 자아를 찾기 위한 구체적 방법에서는 본성을 느끼고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에 대해 살펴보겠다.
1 자아의 본성 찾기
사람의 본성은 감각을 통해 직접 느낄 수 없다. 행동을 통한 실천이나 명상이나 삶의 음미를 통해 간접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실천을 통해 자신의 본성을 느끼자
사람은 많은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단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를 깨달으면 잠재된 힘을 느낄 수 있다. 진정한 행복을 얻으려면 내면도 외면도 모두 강해져야 한다. 감정과 같은 외면은 겉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본성과 같은 내면은 우리 눈이나 감각으로 보고 느낄 수 없다. 그렇다면 본성을 어떻게 느껴야 하는가? 본성은 간접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나의 경험을 하나 소개하겠다.
존심양성(存心養性)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맹자(孟子)」 진심상(盡心上) 편에 나오는 말이다. 마음을 보존하고 본성을 키운다는 이 말을 나는 처음 보는 순간 마음에 와 닿았다. 하지만 그 뜻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우연히 소학을 읽었다. 소학을 공부하면서, 존심양성의 뜻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생각했다.
본성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 선현들은 사람의 본성을 인(仁), 의(義), 예(禮), 지(智)라고 했다. 인(仁)은 사랑하고 사욕(私慾)이 없는 것이며, 의(義)는 바람직한 것이며, 예(禮)는 사양하는 것이며, 지(智)는 사실에 맞는지 맞지 않는가를 분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이러한 것을 어떻게 기를 것인가? 맹자는 그 방법으로 존심양성을 제시했다.
즉 본연의 마음을 보존함으로써 본성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마음과 본성은 같은 것이 아닌가 하고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넓게 보면 같다. 엄밀히 말하면 다르다. 마음은 사람이 육체를 가진 후 감정이라는 것을 가졌을 때를 의미한다면, 본성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순수한 것, 다시 말해 사람의 감정과 섞이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보존한다고 하는 것은 화나고, 우울하고, 불안하고 등과 같이 감정에 휩싸이지 않는 평상심(平常心)의 마음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이 평상심을 가질 때 우리는 옳고 그른 것도 판단하고, 남에게 사랑도 느끼며, 상대에게 예의도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존심양성이라는 이러한 해석만으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본성을 키울 수 있을까? 아니다. 이러한 내용을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 주변에는 비양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지 않은가?
여기서 문제는 어떻게 마음을 보존하고, 또 맑고 순수한 평상심의 마음에서 본성을 키울 수 있는가이다. 그 방법이 바로 어릴 때부터 소학의 행동 공부를 실천하는 것이다. 소학은 청소하고 인사하는 것과 같이 행동하는 것을 중요시한다.<「소학 집주(小學集註)」 총론(總論)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이 있다. “소학 공부는 말을 할 수 있고 밥을 먹을 수 있을 때부터 실천하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어릴 때부터 청소하고 인사하는 것 등을 실천한다. 이러한 실천을 오랫동안 함으로, 이런 일들이 습관화되어 마치 원래부터 있었던 것과 같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된다. 이렇게 되면 거짓된 말이나 의혹스런 말을 들어도 유혹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소학의 실천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마음속에는 편협한 생각이 생겨나고, 밖에서는 여러 사람의 다양한 주장을 듣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보존할 수 없다.”> 왜 그렇게 행해야 하는가에 대한 원리를 탐구하는 이론적 공부는 대학의 격물치지(格物致知)라는 궁리(窮理)에서 한다.
나는 소학의 실천 공부는 쇄소응대진퇴(灑掃應對進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부모에게 인사하고, 친구에게 친절하고, 선생에게 공손하며, 또 강아지를 학대하지 않으며, 물건을 함부로 버리지 않는 것 등등도 다 실천 공부이다. 이러한 것을 어릴 때부터 반복하여 습관화하여야 한다. 이런 바람직한 행동이 습관화될 때, 함부로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평상심의 마음을 갖는 것이다. 즉 마음을 보존하는 것이다.
일상생활 가운데 화평한 마음이 보존된다면, 자신은 물론 남도 사랑하고, 나쁜 짓을 하면 부끄러워할 줄 알며, 남에게 사양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하며, 도덕적으로 옳은 행위와 나쁜 행위도 자신의 양심을 통해 구분한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본성을 키운 것이다. 그래서 「소학 집주(小學集註)」 총론(總論)에서는 어릴 때부터 소학의 실천 공부를 한 사람은 20세 성인이 되면 성인(聖人)의 자질 3분 1을 이미 가지게 된다고 하였다.
자신의 삶을 명상하고 음미하자
명상이란 마음을 자연스럽게 안으로 몰입시켜 내면의 자아를 확립하거나 종교 수행을 위한 정신집중을 말한다. 명상을 위해서는 먼저 조용한 장소를 찾는다. 의자나 바닥에 가부좌를 하고 앉는다. 등과 목을 똑바로 펴고 편안한 자세를 취하며 눈을 감아도 되고 떠도 된다. 코나 입으로 심호흡을 한다. 마음으로 몸의 구석구석을 탐지한다. 어느 특별한 부위가 긴장하고 있다면 그곳으로 숨을 불어넣어 편안하게 한다.
다음에는 적어도 5분 동안, 길게는 20분 동안 심호흡을 가다듬는다. 심호흡을 계속하면서 자신의 존재적 가치나 긍정적인 감정에 초점을 맞춘다. 명상은 매일 일정하게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하면 긴장을 해소하고 마음의 평안을 가져온다. <탈 벤 샤하르 저, 노혜숙 역, 「하버드대 행복한 강의 해피어」(서울: 위즈덤 하우스, 2007) pp.65-67>
음미란 삶의 내용을 새겨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음미와 몰입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음미를 하려면 그 체험으로부터 빠져나와서 되돌아보는 일이 필요하다. 대신 몰입을 하려면 그 체험에 완전히 빠져 들어야 한다. 그러니까 몰입은 체험 속에 직접 빠져드는 것이고, 음미는 체험에서 벗어나 제삼자의 입장에서 여유 있게 느끼는 것이다.
음미에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세 가지 요소가 포함된다. 예로서 길을 가다 아름다운 장미꽃을 보았다. 그때 가는 길을 멈추고 장미꽃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일은 현재의 입장에서 음미하는 행동이다. 자신이나 친구나 아는 사람의 성공을 생각하면서, 그 사람의 성공과정을 생각하고 또 그 사람의 성실성과 노력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과거의 입장에서 음미하는 것이다. 일을 하다 보면 지치거나 산만해질 때가 있다. 이런 피곤한 상태에서 벗어나, 지혜로운 삶의 방법을 설계하고, 이렇게 살게 되면, 삶에 얼마나 즐길 일이 많은지를 생각한다면 이것은 미래를 음미하는 일이다.
음미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은 더 자신감이 있고, 외향적이며, 감사를 느끼며, 덜 절망적이고, 덜 신경질적이라는 사실이 몇몇 연구에서 밝혀졌다. 긍정적인 사건이 우연히 일어났을 때 무심히 반응하지 말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음미하고, 긍정적인 체험을 의식적으로 기대하고, 즐거운 순간을 유념해서 강조하고 유지하는 것은 삶에 기쁨과 활력을 준다. 따라서 학자들은 음미하는 것이 즐거움을 만들어내고 강화시키고 연장시켜줄 수 있는 어떤 생각이나 행동이라고 말한다. <소냐 류보머스키 저, 오혜경 역, 「행복도 연습이 필요하다」(서울: 지식노마드, 2008) pp.165-182)
2 자아정체성의 확립
자아정체성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는 가운데 분리와 개별화 과정을 전개하면서 형성된다. 자아정체성은 유아기와 아동기를 통해 자아에 대한 개념을 발달시키는 데서 출발하여, 청소년기에 이르러 생물학적 성숙과 다양한 사회적 갈등과의 괴리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확립된다.
아동기 이전의 자아정체성 형성
자아에 대한 이해는 매우 어린 시기부터 발달한다. 세계를 나와 외부 환경으로 나누어 볼 때 자기와 환경의 물리적인 경계는 피부다. 피부는 신체의 내부와 외부를 분리하며 동시에 자아라는 마음의 내부와 외부를 분리한다. 엄마가 아기를 만졌을 때 1세 이전의 아기는 반사적 반응을 나타내지만, 1세 이후 아기는 의식적 반응을 나타낸다. 1세 이후 아기의 행동은 엄마가 어느 부위를 만지는지를 알고 하는 의식적 반응이다. 이때 아기는 엄마와 완전히 분리된 자신의 신체 감각을 느낀다. 프로이드는 자아는 궁극적으로 신체적인 감각, 주로 신체의 표면에서 유래하는 감각에서 생겨난다고 말했다.
성장기 아기에게 가장 큰 사건 중 하나는 두 발로 서서 걷는 것이다. 아이들은 대부분 12개월이 되면 혼자 걷는다. 아기가 서서 걷게 되면 새로운 것을 느끼고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열린다. 만 20개월 정도 된 유아는 거울에 비친 영상이 다른 사람이 아니고 자기라는 사실을 이해한다. 2세가 되면 아이는 세상을 알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주관할 수 있다고 느낀다. 이때 자신의 독립성을 ‘싫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표현한다. 자아에 대한 이해는 3세가 넘은 아이들의 언어나 행동을 관찰하면 더욱 명백하다. 이들은 당황하거나 수치심과 같은 반응을 나타낸다. 이러한 반응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와 관련된 정서이다. 3세 아동에게 자기에 대해서 설명해라고 하면, 이들도 구체적인 신체적 특징부터 능력, 심리적 속성, 사회적 관계 등을 통해 자신을 기술한다. 이것은 자아에 대한 개념이 더욱 복잡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교에 들어가고 다른 또래와의 비교가 자연스럽게 진행되면, 자아에 대한 개념은 더욱 확장된다. 그리고 인지 발달 역시 자기에 대한 이해를 더 넓힌다. 나이가 든 아동들은 자신에 대한 단순히 파편적인 정보를 나열하는 것을 넘어, 여러 지식들을 통합하여 하나의 통합적인 개인에 대한 평가를 하기 시작한다. 유아기와 아동기에 자아에 대한 이러한 이해의 발달은 청년기에 이르러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주요 원천이 된다.
청소년기의 자아정체성 확립
12~18세의 청소년기에 이르면 자아정체성의 확립이 중요한 발달 과제가 된다. 에릭슨(Erik Erikson)은 청소년기가 사회적 요구와 생물학적 성숙이 최고조에 이르는 시기이며, 이에 따른 역동의 결과로써 정체성 확립이 요구된다고 보았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하나는 육체적-지적 성장에 따른 생물학적 이유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문화적 요구의 상충이다.
먼저 첫 번째 이유는 생물학적이다. 청소년기에는 신체적, 성적, 지적인 성숙이 급격하게 일어난다. 이에 따라 자신의 위치, 역할, 가능성, 가치, 이념 등에 대한 검토와 확인을 필요로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이 동일시하고 존경하고 좋아하였던 사람이나 대상에 대한 변화가 생긴다. 부모나 선생 등 기성세대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들을 비판하게 되며, 또래나 또래 문화에 대한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둘째 이유는 사회와 문화에서 요구하는 것이 서로 상충적이다. 청소년기는 아동도 아니고 성인도 아닌 중간단계이다. 이 중간단계에는 상충적인 요구와 모호한 기대가 늘어난다. 예로서 같은 행동에 대해 어떤 때는 “나이도 어린것이…”라는 반응을 받으며, 어떤 때는 “다 큰 녀석이…”라는 반응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선택을 강요받기도 한다. 선택은 책임이 따른다. 진학, 전공, 취업 등을 부모나 선생이나 다른 사람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다. 이러한 상충적인 사회·문화적 요구로 인해 청소년은 “내가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게 되며, 그리고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실험해 본다.
즉 청소년들은 급격한 생리적 신체적 지적 변화를 통해 수많은 충동과 동경심과 호기심을 갖는다. 그러나 이들은 경험 미숙으로 수많은 좌절과 회의, 불신을 경험한다. 이 시기의 중심 문제는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이다. 청소년들은 자신이 누구이며, 가정과 사회에서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고자 한다. 또한 타인의 눈에 비친 자기는 누구인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청소년들은 자아를 발견한다. 자아 발견은 가장 쉽게 말하면 자기 자신의 현실과 존재 이유를 아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지금 어떤 환경과 조건에 처해져 있고, 앞으로 어떤 가능성을 가지며, 자신의 이상이 무엇인지를 알면서 주위의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형성해 나갈지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현재의 삶이 의미 있고 보람 있으며 앞으로 더욱더 발전해 나갈 것이라 믿으며 생활하는 것도 또한 자아 발견의 과정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지 못하다.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고 이 과정에 도달하기도 쉽지 않다. 가끔은 사람들이 자기의 현재 상황이나 처지에 관심을 기울이기는 한다. 앞으로의 진로라든가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자신에 관심을 갖는 것보다 자신을 정확하게 알고 자신을 바로 아는 것은 더욱더 힘든 일이다. 자신의 주관으로 자신을 합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소년기에 도달한 모든 사람이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는 사람이 더 희소한지도 모르겠다.
<참고문헌>
[네이버 지식백과] 정체성 [Identity] (문학비평용어사전, 2006.1.30, 국학자료원)
[네이버 지식백과] 자아 정체감 [ego identity] (심리학용어사전, 2014. 4, 한국심리학회)
[네이버 지식백과] 자아정체감 [ego-identity, 自我正體感]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자아의 확립 - 거울 속의 나는 ‘나’인가, 타자인가 (사람의 모든 감각, 2009.04.20, 서해문집)
[네이버 지식백과] 자아발견 (통합논술 개념어 사전, 2007.12.15, 청서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