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법관이었던 올리버 웬들 홈스는 “나는 복잡성 이전의 단순성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이 없지만, 복잡성을 넘어선 단순성을 위해서는 목숨이라도 내놓겠다.”라고 했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몰라서 단순한 것은 사실 볼 가치가 없다. 하지만 세상 이치를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단순한 것은 좋다.
현대인들은 점점 더 많은 일을 하려고 욕심을 부린다. 그러다 보니 바쁘게 살아 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너무 많은 일을 하다보면 행복을 놓칠 수 있다.
그리고 복잡한 감정은 행복을 방해한다. 복잡한 감정은 강물의 거품과 같다. 복잡한 거품이 고요히 흘러가는 강물의 흐름을 막는 것과 같이 바빠서 여유가 없고 복잡한 감정은 행복을 방해한다.
사실 우리 눈앞의 세계에는 기쁨을 주는 일들이 많다. 생각하여 보자. 흘러가는 한 조각의 흰 구름을 쳐다보면 어떨까. 맑고 푸른 하늘 가운데 뜨가는 힌구름은 나의 마음을 끝없이 넓게 하여주지 않을까?
그리고 널빤지 나뭇결 하나에도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또 길 건너 검소한 부인의 스웨터 뜨는 정성스런 모습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면 우리는 입가에 미소를 짓지 않을까?
우리의 오감에 자극을 주는 낱낱의 것은 각각 그 순간에 모두가 마음의 양식이 될 수 있다. 생활을 단순화하지 않고 바쁘게 살면, 이런 것을 느낄 수 없다.
심리학자 팀 카세는 시간의 풍요가 물질의 풍요보다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말한다. 시간의 풍요는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반성하고 여가생활을 할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반대로 시간이 부족하면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받고 쫓기고 과로하고 뒤떨어져 있다고 느끼게 된다.
탈 벤 샤하르는 단순한 삶을 살기 위한 방법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보호하고, 일에서나 사람에게나 좀 더 자주 “아니요”라고 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한다.
바쁜 현실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가끔 일이나 걱정에서 해방되어, 평소에 놓치고 보지 않았던 자연이나 평범한 삶에서 그 아름다움이나 고마움을 느끼면 어떨까? 그것이 바로 생활을 단순화하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