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 책방일기 #에필로그
첫 번째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크리스마스에 무엇을 했는지 기억에서 잊힐 즈음, 꾸며 놓은 크리스마스트리를 치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겨울 내내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공간 한쪽에 깊이 스며든 크리스마스트리. 크리스마스트리를 치우면서, 이 트리가 없으면 허전하겠다고 생각했다. 크리스마스트리가 없던 가을이 기억나지 않는다. 반짝이던 것을 쉽게 치울 수없어 내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그렇다고 철 지난 크리스마스트리를 일 년 내내 세워둘 수 없는 노릇인데 말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허전할 것 같은 마음은 순간뿐이다. 무언가가 사라지면 그 자리엔 또 다른 것이 나타나 채운다. 내 삶의 모든 것이 그랬다. 괜한 미련 때문에 적절할 때 보내야 할 순간들을 질질 잡고 있던 것이 많았다.
책방지기가 되어서 첫겨울을 보낼 때, 가장 큰 고민이 ‘크리스마스트리’를 언제 치우면 되나였다. 두 번째 겨울을 보낼 땐, ‘크리스마스트리’를 가져다 놓는 것과 치우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아마도 첫겨울은 오픈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언가를 채워 넣기만 하던 시절. 작은 책방이었기에 공간에 놓인 모든 것들에 손길을 줄 수밖에 없었고, 크리스마스트리의 존재 유무도 꽤나 중요했다. 더군다나 아직은 채우기만 했지 치웠던 것이 없었기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더 큰 고민은 시선이었다. 크리스마스트리가 있고 없는 것에 사람들은 큰 의미를 두지 않을지 몰라도, 사람들이 ‘철 지난 것을 제때 치우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길 바랐으니까.
(2023년 기준) 6번째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고 있는 요즘엔, 전혀 다른 고민이 생겼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세월의 흐름만큼 공간에 많은 것들이 쌓여 갔다. 책장이 늘어났고, 책도 빼곡해졌고, 테이블도 많아졌고, 소품도 많다. 그래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어디에다 놓아야 할까라는 전혀 다른 고민을 한다. 치우는 것보다 채우는 것이 더 힘든 만큼 세월도 마음가짐도, 많은 것들이 변했다. 손님에게 하는 말부터 손님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처음엔 한가하게 공간이 비어 있더라도 당신의 추억으로 이 공간이 꽉 차게 될 거라고, 우리 모두의 소중한 공간이 되기 위해서 당신의 추억을 만들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요즘엔 고양이가 자기 몸보다 작은 상자에 들어갔을 때 더 편안해하는 것처럼 꽉 채워진 이 공간에 몸을 구겨 넣어서 안정감을 느끼라고 말한다.
처음엔 책방을 찾는 손님들의 작은 시선까지도 신경 쓰이던 것이, 지금은 시선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 책방을 가장 많이 머무는 내가 편안한 공간이길 바랐고, 내 취향이 최대한 반영되길 바랐다. 새로운 손님을 기다리며, 그 손님도 내 취향과 같기를 기대한다.
책을 소개하고 책을 읽을 때 행복한 책방지기
처음엔 책방을 유지하기 위해선 책뿐 아니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느끼는 첫인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일 년에 고작 1~2달 잠깐 장식하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신경 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정작 중요한 것은 ‘책’, 그리고 책으로 만드는 이야기인데 말이다.
누군가는 책방을 하면서 책 읽을 시간이 줄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책방을 하면서 책 읽는 시간이 늘었다. 눈앞에 책들이 잔뜩 있으니 책을 읽겠다고 다른 업무들을 빠르게 마무리할 때도 많다. 책방에 있는 모든 책을 다 읽어 보진 못해도, 어떤 책이라는 것은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책방지기의 임무고, 누군가가 읽은 책 중에서 추천해 달라고 하면 자신 있게 권할 책이 있어야 하는 것도 책방지기의 임무니, 책방 다른 업무보다 중요한 것은 책을 읽는 것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사장님이 요즘 읽고 있는 책이 뭐예요?’라고 물었고, ‘읽었던 책 중에서 추천하고 싶은 책 있어요?’라고 물었으니 책을 읽지 않고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손님들은 잘도 했다.
다행히도, 난 내가 읽은 책이나 좋아하는 책을 소개할 때가 가장 신났다. 분주한 일을 하다가도 손님이 책 이야기를 꺼내면 하던 일을 멈추고 이야기를 나눴다.
책방에서 행복 찾기
책방을 하면서 책을 많이 읽게 된 것도 있지만, 글도 많이 썼다. 책방 운영을 하기 전엔 대부분 새벽 시간에 글을 썼는데, 요즘은 책방 운영 시간 내에 책방에서 글을 쓴다. 책방에서 매일 다른 업무를 하면서 느끼는 감정들과 책방에 들어온 책들을 읽고 느낀 감정들, 가끔은 소설이나 시, 때로는 의뢰받은 글을 쓰면서 책방에서 작가가 된다. 그게 내가 책방을 하면서 가장 큰 행복을 느끼는 점이다. 내가 행복하고 싶어서 시작한 책방인데, 이곳에서 단순히 책을 팔거나 자영업자의 삶만 살았다면 5주년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책방에서 쓴 글로 만든 책이 3권이나 되는 걸 보면 모든 열정은 절박할 때, 바쁠 때, 집중이 잘 될 때 나오는 것 같다.
책을 쓰는 작가가 운영하는 책방이어서 그런지 요즘은 대부분의 손님들이 글 쓰러 온다. 작가이거나 작가가 되고 싶거나 출판의 꿈을 가진 사람들의 아지트가 되고 있다. 그래서 '책 추천'이 아닌 '글쓰기'에 관한 대화를 훨씬 많이 한다. "얼마큼 썼어요?", "어떤 부분이 막히는데요?", "이번에 공모전 뜬 거 아시죠? 참여하세요?" 손님들이 왜 글을 쓰고 어떤 글을 쓰는지 알만큼 알게 되었기에 우리는 글 친구가 된 듯 매번 서로의 글의 첫 독자가 될 준비를 이곳에서 한다.
물론 때때로 처음 온 손님들이 "운영 괜찮아요?", "돈 못 벌어 힘들죠?"라는 오지랖에 가까운 질문을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장사하는 사람이 돈 못 벌면 때려치워야죠. 아직은 그 단계는 아니에요."라고 답한다. 실제로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행복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한다면 나는 이미 충분한 가치의 돈을 벌고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아침잠이 많아서 점심 때나 돼야 일어나던 생활 습관을 버리고, 늦어도 아침 10시엔 눈이 떠졌고, 아침 식사를 하고 출근하는 날도 많았다. 일어나는 대로 준비하고 책방에 도착하면 오픈 시간보다 1시간이나 빨리 도착해서 오픈 준비를 길게 하는 날도 생겼다. 가끔은 퇴근 시간이 다 되었는데 글이 잘 써져서 퇴근을 미루고 글을 쓴 적도 있다. 쉬는 날이 있는데도 굳이 대청소를 한다고 책방을 찾거나 책 정리를 쉬는 날 나와서 하거나 택배 업무 때문에 일부러 출근하는 날도 많았다. 이 모든 것들이 싫지 않은 것은, 난 이미 책방지기의 삶을 즐기고 있기 때문일 테지.
누군가에게 행복을 파는 삶을 사는데 불행 할리가 있나
요즘은 워낙 책방지기가 되고 싶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책방을 운영하면 얼마나 수익을 만들 수 있냐 묻는다. 책을 팔면 돈이 얼마나 남는지, 모임을 운영하면 얼마의 수익이 남는지를 궁금해한다. 그럴 때 되묻는다. "당신은 어떻게 책방으로 돈을 벌 건데요?"라고. 돈을 벌려고 하는 일인데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책방을 찾아다니며 돈도 못 버는 데 운영하는 이유를 찾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돈이 아니라면 '가치'를 생각하는 것도 좋을 텐데 아쉽기도 하다.
그런데, 수익들이 ‘돈’이 아닌 ‘가치’ 혹은 ‘행복’이라고 생각하면 난 정말 부자의 삶을 살고 있다. 6.5평의 작은 책방에서 사람들은 아무리 장사가 잘된다고 해도 돈을 많이 벌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 너무도 뻔하게 '돈 못 버는 책방'을 연상하겠지만, 벌써 5주년을 앞두고 있고, 또 앞으로 최소 5년은 더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나는 '행복을 파는 삶'에 즐거움을 값으로 매긴다. 이별한 후 울 수 있는 공간을 찾아온 손님이 편하게 울 수 있게 슬픈 책을 권하고, 이제 막 사랑이 시작된 새내기 커플의 취향에 맞게 설레는 책을 권하며, 고양이로 이어진 인연 때문에 갈 곳 없는 고양이를 입양하면서 새로운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는 삶. 이곳에서 쓴 글들이 책이 되고, 또 나아가 이야기의 시작이 되는 공간. 이것을 어찌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돈은 좀 없으면 어때.
난 행복을 파는 책방지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