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읽지 않은 책과
내일 읽을 책이 있어요

동네책방 책방일기 #10

by 김지선

‘쿵’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책이

떨어져 있었다.


‘흑’

혹시라도 망가졌을까 봐

책을

서둘러 집었다.


‘휴’

이 정도로 약하진 않았구나.

책이

아직 멀쩡했다.




책을 팔고 싶다.


아무리 공간이 있고 책이 있다고 해도, 내가 꾸린 책방은 온전히 책방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책 보다 먼저 찾게 되는 커피와 맥주가 있고, 곰돌이가 반긴다. 책을 읽으려고 하면 어둑한 조명과 음악 소리에 집중이 안 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책방이니까 책에 집중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냥 여긴 책방이기보다 북카페가 더 잘 어울리는 표현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책을 팔고 싶어 책방을 시작했다. ‘책’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을 바라며 책방을 시작했다. 책을 팔고 싶다.


책방 오픈을 준비할 때 찾았던 어느 강연에서, 책방은 무조건 책으로만 승부를 봐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책을 팔기 위해서는 적어도 100평은 되는 공간에서 시작해야 하고, 다양한 분야의 신간과 베스트셀러를 꾸준하게 소개해야 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많은 책이 있어야 책을 팔 수 있는 거, 신간과 베스트셀러 등 팔리는 책을 가져다 놓아야 책을 팔 수 있는 건 너무 당연하다. 그렇지만 내가 책방을 운영하고 싶었던 이유는 ‘책을 팔고 싶어서’이긴 하지만 ‘팔릴 책을 파는 것’이 아닌, ‘내가 팔고 싶은 책을 파는 것’이었다. 내가 팔고 싶은 책이 100평을 가득 채울 만큼 많을 리도 없을뿐더러 100평을 책으로 가득 채웠다고 해도 팔릴 것 같은 신간과 베스트셀러가 없다면 책방이 운영될 수 없을 것 같았다. 팔고 싶은 책을 팔기 위해 팔고 싶지 않은 책까지 팔아야 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 이후에도 책방 오픈 강연을 몇 군데 더 가보곤 더 이상 가지 않았다. ‘창업’하는 방법, 돈을 ‘잘’ 버는 방법 보다, 책방에서 행복 찾기와 같은 강연을 원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나는 책방지기가 되고 싶지, 책방의 캐셔가 되고 싶지 않았다.


책방 오픈을 앞두고 있으면서 처음으로 책방에서 판매할 책들의 리스트를 꾸렸다. 사실 나는 다양한 책을 읽는 것보다 읽었던 책을 반복해서 읽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내가 읽었던 책으로만 매장을 꾸리기에는 한계가 있어서, 내가 읽은 책들의 장르나 비슷한 책 중에서 눈길이 가는 책들을 선택해 책방을 꾸렸다. 어떤 손님이 올지도 모르겠고, 어떤 책이 팔릴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좋아하는 선에서 최대한 광범위한 구성을 했다.




팔리는 책과 팔리지 않는 책


딱히 명확한 주제를 가진 책방은 아니었다. 여행작가로 살았으니까, 여행책 장르를 가져다 놓았고, 고양이를 키우니까 고양이책을 가져다 놓았고, 독립출판을 하고 있으니 독립출판 도서들을 가져다 놓았다. 그 외에 좋아하던 소설책이나 에세이, 책방에 어울릴듯한 책들을 가져다 놓았다.


‘책방에 오면 이런 이런 책들을 만날 수 있어요’라고 정의할 수 없는 책들이 두서없이 책장에 꽂혔다. 여행, 고양이, 독립출판과 기타 책들이라고 구분을 지었다고 해도 장르도 스타일도 다른 책들이 가득했고, 가나다순도 아닌, 작가명도 아닌, 그냥 손길 가는 대로 대충 책들이 책장에 꽂혔다.


오픈 초반엔 어떤 책방의 SNS에서 강력추천이라는 태그를 담아 책방의 베스트셀러라고 올린 책을 이곳에서도 잘 팔릴 것 같아서 전면에 배치하기도 했는데, 오히려 다른 책방에서 베스트셀러라고 강력 추천하는 책들을 사람들은 별로 쳐다보지 않았다. ‘이 책이 팔릴까?’라고 생각하며 소심하게 꽂아 둔 책을 오히려 좋아했다.


책방을 운영한 지 일 년 정도 되었을 때야 겨우 이 책방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책이 어떤 책인지, 내가 팔고 싶은 책과 원하는 책 사이에 간격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그 간격을 좁힐 수 있는 책은 어떻게 찾으면 될지 조금씩 알아갔다. 이곳은 정확한 어떤 책을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우연한 발견을 꿈꾸는 사람들이 찾는다. 그래서 그런 우연함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블라인드 북을 팔아 볼까


다른 책방의 베스트셀러나 신간 도서가 아니어도 판매되는 책들의 종류가 많아지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이쯤이면 블라인드 북을 구성해 보아도 괜찮겠다 생각했다. 책을 직접 고르는 것도 좋아하지만, 내가 추천한 책들을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어떤 책인지 상관없이 좋아해 줄 것 같아서 블라인드 북 정기 구독 서비스를 시작했다.


한 명, 두 명 늘어나던 구독자들이 최대 10명을 넘을 때도 있었고, 다시 줄기도 하고 또 늘기도 했다. 3개월 단위로 구독자를 모집했었는데 구독이 끝나면 재구독한 횟수도 생겼다.


주로 블라인드 북은, 책방에서 판매가 저조하지만 추천하는 책들을 꼽아 보낸다. 즉, 팔고 싶은 책들을 파는 거다. 그런데 요즘은 맘에 드는 책이 책방에 들어오면, 블라인드 북으로 책을 발송하고 싶어서 추천을 아낀다. 살짝 소개만 곁들이고, 이후에는 있는 듯 없는 듯 잘 보이지 않는 자리로 위치를 옮겼다가 독자들에게 발송한다.


블라인드 북은 내가 생각하는 책방의 모습과 닮았다. 많은 사람들이 선택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이 어쩌면 너무 많은 선택 중에서 하나를 꼽아야 하기 때문일 수 있다. 네와 아니오 중에서 선택하라고 하면 조금 더 수월하고, 1과 2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하면 더 편하다. 아니, 그냥 1이 좋은지 싫은지 고르라고 하는 것도 괜찮다. 그런 면에서 블라인드 북은 좋거나 싫거나 둘 중 하나이기에 선택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좋다. 내가 꾸린 책방도 아주 많은 책이 없으니까 책장을 오래 살펴보지 않아도 좋아하는 책을 찾을 수 있다. 혹은 좋아하는 책이 없다는 것을 빨리 깨달을 수 있다. 선택 장애가 많은 사람들이 큰 서점보다 작은 서점을 선호하는 것, 그리고 블라인드 북을 좋아하는 것은 묘하게 닮았다.






어제 읽지 않은 글 중에, 내일 읽을 것을 찾고 있다면,
대형 서점이 아닌 작은 서점에서 찾아보셔요!






앞으로 5년 남았습니다.


“당신의 생명은 앞으로 5년, 정확히는 4년 6개월 남았습니다. 남은 기간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책방은 시한부다. 애초에 태어날 때부터 오래 살지 못할 형편이었다. 10년을 바라보며 시작한 일이니까 곧 그날이 다가오겠지. 그래도 생각보다 쇠약한 몸으로 잘 버텨왔다. 앞으로의 생은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좌우하겠지만 그래도 판정받은 기간만큼은 버틸 수 있길 바란다.


그러나 요즘 부쩍이나 과연 남은 기간 잘 버틸 수 있을까 생각에 빠진다. 상업적인 공간이지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크게 돈을 벌 수 없는 일이어서 먹고사는 일은 계속 걱정해야 한다고 쳐도, 수 없이 생기고 사라지는 같은 업종의 공간들을 바라보며 떠맡게 되는 회의감은 상실 그 이상이다.


이번 주 두 명이 책방을 열고 싶다고 찾아왔다. 그리고 오랜만에 책방 운영 노하우 모임을 가져 미래의 책방지기와의 만남도 있었다. 그들을 만날수록 이 직업이 과연 좋은 직업인가 되묻게 된다.


“그냥 처음 계약 2년만 잘 버티는 게 목표예요.”라는 말을 들으면 그 사람과 더는 책방 운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 “책은 어디서 받아야 해요?”라는 말이 이미 오픈한 책방지기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내 직업이 이렇게 아무나 하는 거였냐며 짜증이 난다. 책방을 여는 게 그렇게 쉬워 보이는가? 책방지기는 아무나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가?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지, 진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조차 자기도 모른 채 떡하니 공간만 열어 놓으면 다인 거라 생각하는가? 어떤 책방은 누군가의 평생 꿈으로 이루어진 꿈의 공간일 테고, 어떤 책방은 그 마을에 꼭 필요한 사랑방이 될 테고, 어떤 책방은 미래의 작가들을 위해 길을 열어 두는 공간이다. 절대로 쉬운 것이 아니란 말이다. “돈을 못 버는 데 책방을 유지하는 비결은 뭐예요?”라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는데, 책방 운영에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그냥 좋아서요.”라고 답하고 있지만, 책방 운영을 하고 싶다는 사람에게는 “누가 돈을 못 번다고 말해요? 겉으로는 사람들에게는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도 안으로는 돈을 벌어야 현상을 유지할 수 있어서 정말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쉬는 날 없이, 잠자는 시간 쪼개고 쪼개 일을 해요. 돈 못 버는 거 아는 데 왜 하려고 해요? 그 마인드로는 책방 절대 못 해요. 책방지기는 대부분 돈을 벌기 위해 책방을 운영해요.”라고 답한다. “사람들이 찾아오기 좋은 곳에서 문을 열면 괜찮을까요?”라고 묻는 사람도 있는데, “장소가 중요한가요? 시간이 중요한가요? 사람들이 찾아가고 싶으면 산골짜기에 있어도 가고, 새벽에만 문 열어도 찾아가요. 가고 싶게 만들 생각을 하세요.”라고 답한다.


사실 책방 운영 기간을 10년이라고 정한 것은 10년이 지나면 내가 더 발전되어서 그때는 공간 이상의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 남은 시한부 기간에 무엇을 해야 더 나은 삶이 될 것인가 모르겠다. 15년 동안 여행작가에서 독립출판 작가 겸 창작자로, 그리고 독립서점 책방지기로의 삶을 이어오고 있으니 작가가 된 지 20년 정도 지난 사람이라면 어떤 것을 해야 성공한 삶이라고 여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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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책이 많이 팔리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지만, 처음 1년 동안은 책을 정말 못 팔았다. 책방 2주년을 지난 요즘엔, 그래도 하루에 1권 이상씩은 꾸준하게 팔고 있다. 손님이 아예 없는 날도 있긴 하지만, 손님이 들어오면 책장을 둘러보는 것이 낯설지 않은 요즘이 좋다. 책을 여러 권 집어 들고 오는 손님이 있을 때면, 나와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 같아서 너무 반갑다. 아마 서로 반갑게 생각하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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