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한 강연 말고,
재밌는 놀이 없을까?

동네책방 책방일기 #09

by 김지선

어정쩡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특별히 무엇을 좋아해서 하겠다고 마음을 먹는 것도 없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 같지만 사실은 모든 가능성이 다 열려 있기도 하고, 때로는 확실한 취향을 드러내기도 한다. 특히 공간 운영에서 애초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모임'이 그랬다.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공간


책방 공간을 꾸릴 때, 책 정리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모임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원래는 커다란 테이블을 가져다 놓고, 빙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생각했지만, 6.5평의 공간엔 커다란 테이블을 놓을 곳이 없었다. 네모 반듯하지도 않은 구조와 6.5평 안에 화장실까지 들어서 있고, 계단이나 카운터, 싱크대, 냉장고 등등… 물건들을 배열하다 보니 손님들이 커피라도 한 잔 마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았다.


다락방 공간이 넓긴 했지만, 좌식으로 오래 앉아 있으면 불편할 것 같다는 내 생각 때문에, 모임이 있는 날이면 억지로 1층 공간에 가구들을 조절해서 겨우 6인이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6명이 꽉 차면 움직이기도 쉽지 않았던 공간이 생겼다. 처음엔 내가 진행하는 여러 수업, 그리고 그림 작가를 초빙해서 진행한 그림 수업 등을 하는 것은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차츰 책장이 늘어나고, 책이 많아지면서 가구를 옮겨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좌식으로 앉는 것이 불편할지 몰라도, 조금 더 넉넉한 공간에서 편하게 모임을 해보자고 생각했다. 오픈 후 6개월가량은 내가 할 수 있는 각종 수업들을 위주로 진행했기 때문에 크게 무리 없이 이곳저곳에서 모임을 하며 작가를 초빙하게 된다면 어떻게 이야기를 펼쳐 나갈 수 있을까 고민했다. 영화를 함께 보는 영화방 모임은 다락방에서, 그림을 그리는 그림 수업은 1층에서 각각 몇 회 진행해 본 후에야 처음으로 작가와 함께 하는 모임을 만들 수 있었다. 작가와 함께 하는 ‘다락방에 어울리는’ 모임들을 만들 수 있었다.




고민을 나눌까요? 음악을 함께 들을까요?


생각보다 다락방은 아늑했다.

옹기종기 모여 앉긴 했어도, 작가와 나를 제외하고도 10명이 넉넉히 앉을 수 있었고, 최대 15명까지 수용이 가능한 공간이었기에, 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최대한 많이 함께 할 수 있었다.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 두기로 여유를 두고 앉는 것을 권장했어도 작가를 제외하고 5명이 여유롭게 머물 수 있었다.


다리를 쫙 펼 수 없어도 등을 기대고 앉을 수 있는 공간, 때로는 누워도 좋은 공간. 나는 이곳에서 딱딱한 강연을 하는 것보다 감성을 나누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첫 행사는 ‘고민 토크’로 선택했다. ‘익명의 작가와 함께 하는 익명의 고민상담소’라는 제목으로 참여자를 모집했는데, 사람들은 어떤 작가가 오는지, 와서 무엇을 할 것인지 조차 궁금하지 않은 듯, 신청 페이지를 열어 두자마자 몇 시간 만에 마감이 되었다. 모임 때는 각자 익명으로 자신의 고민을 적어 두면, 작가는 누구의 고민인지 임의로 꺼내 읽고, 참여자 모두가 그 고민에 대한 해답을 주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자신의 고민도 남의 고민처럼 해답을 내어 놓아야 하거나 남의 고민도 내 고민처럼 상상하는 것, 우리는 다락방의 어둑한 조명 아래 서로의 고민을 이야기했다. 누가 쓴 고민인지 궁금해도 묻지 않았다. 짧은 고민에 대해 더 궁금한 점을 물어보고 싶어도 고민을 쓴 당사자를 알지 못해 뒷이야기를 알 수 없었다. 오히려 그 점이 좋았다. 조언이랍시고 남의 고민에 이래라저래라 말하는 사람 없어 서로 자신의 경험담만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한국에 아직 없었던 작년 말엔 작가와 함께 음악을 듣는 ‘해주는 라디오’ 모임을 했다. 참가자들은 각자의 사연과 함께 어울리는 신청곡 1곡을 적어 내면, 작가는 그 사연을 읽고 신청곡을 들려주는 라디오 형식의 모임이었다. 다락방에 옹기종기 앉아, 와인이나 맥주를 한 잔 하면서 각자가 적은 사연과 잔잔한 음악들을 듣다 보니 아늑했다.


또 한 번은 작가와 함께 마피아 게임을 했다. 평소 만나고 싶었던 작가와, 엠티를 하듯 다락방에 모여 앉아 마피아 게임을 하는 것은 참석자뿐 아니라 작가도 즐겁다 했다. 북 토크, 낭독회에서만 독자와 만나던 시간에서, 책 이야기 하나도 하지 않아도 작가와 독자가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좋다 했다.




오늘 밤 주인공은 바로 나


책방 모임에선 항상 주인공은 우리 모두였다. 작가와의 만남이지만, 작가와 독자의 경계가 없이 그저 놀았다. 작가로 함께 한 사람들은 사회자의 역할을 주로 했을 뿐, 모두 함께 수다 떨면서 노는 것이 좋았다. 1년 반 정도 꾸준하게 책방 모임을 진행하면서 느낀 큰 특징은, 참여자들은 모두 ‘어떤’ 작가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한 것보다, 자기가 올 수 있는 시간에 하는 모임이면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참석한다는 것이다.


자주 참석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알게 되었고, 작가와의 만남을 처음 해본다는 신인 작가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독자들이 늘어났다. 점차 나는 처음인 작가와 참석자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는 역할만 하면 되었다. 아니, 어느덧 북 토크를 하고 싶다는 작가가 생겼고, 새로운 참석자가 오면 기존의 참석자들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었다.





넓은 곳보다 좁은 공간이 더 아늑한 건 왜일까.






코로나가 시작된 후 가장 아쉬운 점이 바로 '모임'이었다.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니 공간으로의 매력이 점차 사라지는 듯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코로나 초반에 자동차를 판 돈이 있어서 그 돈으로 온라인 라이브 방송을 하기 위한 카메라와 노트북, 오디오믹서, 조명 등을 구매할 수 있었다. 그래서 '모임'을 꾸준히 할 수 있긴 했으나 공간으로의 모임이 없으니 감성이 떨어졌다.


그러나 코로나가 끝나도 여전히 온라인 모임을 진행한다. 물론 이전처럼 어느 사람들이 모이던 모임들도 잔뜩 진행하고 있지만, 온라인으로 더 편리했던 글쓰기와 독서 모임의 매력을 찾았기에 그 두 모임의 일부는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있다.


덕분에 빡빡한 일정으로 책방이 돌아간다.





2023년 여름 어느 날의 일기


쉬는 날이었지만 미리 잡아 놓은 모임이 있어 쉴 수 없는 날이었다. 오전에 일어났더니 쉬는 날 처리한다고 미뤄놨던 일들과 연락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순차적으로 처리하는데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렸다. 이 와중에 남편이 차려준 점심을 먹고, 커피까지 마시는 여유를 부린 것이 문제였을까. 시계를 봤더니 지금 씻고 나가기엔 너무 버거운 시간이었다.


‘참가자에게 조금 천천히 와달라고 문자를 보낼까?’


차라리 조금 여유 있게 오라는 문자를 보낸 후 씻으러 갈까 고민하다가 어차피 사람들은 모임 시간에 맞춰 올 테니 내가 아슬아슬하게라도 미리 도착한다면 큰 문제가 없을 거로 생각했다. 일단 빠르게 씻어 보자.


보통의 샤워의 과정은 이렇다. 적당히 따뜻해진 물줄기로 온몸을 따뜻하게 한 후, 폼클렌징을 적당히 짜서 거품을 내고 얼굴부터 씻는다. 그다음 묶었던 머리를 풀어 물을 적시고, 샴푸를 두 번 펌프질 한 후, 거품을 내어 머릿속부터 깨끗하게 감는다. 트리트먼트를 머리끝에만 바른 후 돌돌 말아 둔 상태로 칫솔을 꺼내 이를 닦고 보디 워시를 거품망에 풀어 몸을 비누 칠 해 닦은 후, 물로 씻으며 머리카락의 트리트먼트까지 모조리 씻어 내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이 급해서 머리를 감으려고 고개를 숙이는 순간 물이 코에 훅 들어갔다. 코로 물을 마시는 기분은 전두엽까지 전율을 찌릿하게 만들었다. 빠르게 씻고 싶은데 코막힘 때문에 더 더뎌지는 듯했다. 그 순간 초등학교 시절 일 년 동안 수영장을 다니며 수영을 배웠던 순간이 떠올랐다.


물속에서 뜨기까지 일주일이 걸렸다. 킥판을 잡고 발차기를 배우고 앞으로 나아가기까지 또 일주일이 걸렸다. 몇 달이 지나자 킥판이 없어도 혼자 물살을 가르며 나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일 년쯤 되었을 땐 25m 수영장을 한 번에 왕복하게 되었다. 물속에서 자유로워질 때까지 얼마나 많은 물을 마셨는지…. 지금, 나는 책방에서의 자유로움을 찾기 위해 발차기를 배우고, 숨 쉬는 법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일까. 코를 “흥” 풀며 남아 있는 콧속의 물을 밖으로 뱉고, 빠르게 씻고 머리를 말린 후, 책방으로 향했다. 대체로 모임 참가자들은 시간에 맞춰 오는데 하필 이런 날은 나보다 먼저 도착해 기다리는 분들이 있다. 시간 맞춰서 오더라도, 문자 한 통 미리 보내 놓을걸… 후회했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하고 싶은 모임이 너무 많아 휴일까지 몽땅 쓰는 건 좋지 않았다. 운영자가 즐거워야만 손님도 즐겁고 다 좋은데 운영자가 피곤하면 절대로 안 되는 일이 바로 모임이기에 말이다. 컨디션을 관리해야겠다.






무슨 일이든 적당히 해야 모두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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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별거 아닌 이야기도 가까운 사람에게 털어놓는 것이 어려울 때가 많다. 어쩌면, 속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속 이야기를 털어놓아도 내가 누군지 모를 사람들이 더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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