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몰입>, 패티 스미스
하루에 한 권!(21일 프로젝트)
2019.09.11 수
한때 나를 사로잡았던 패티 스미스와 메이플소프
거의 아무도 없는 텅 빈 식물원에서 패티 스미스의 <몰입>을 읽는다. 바람은 솔솔 불고 글은 너무 아름답다.
패티 스미스가 걸었던 길, 읽고 있는 책, 예술가들의 자취를 상상만 해도 좋다.
"인용과 창조의 교향악을 소환하는 빛의 주크박스에 이끌려 여행을 떠났다. 파트리크 모디아노의 추상적 거리를 배회하며 심지어 내 것조차 아닌 세계를 실로 엮었다. 책 한 권을 읽고 시몬 베유의 신비적 행동주의를 알게 되었다. 한 피겨 스케이트 선수를 보았고 완전히 매혹되었다."
시몬 베유와 카뮈의 집을 방문하고, 정원의 기하학적 단순성에 감탄하고, 자신이 머무는 건물을 스쳐 지나간 작가들의 유령과 함께 한다는 사실에 뭉클해하고, 파트리크 모디아노처럼 불안한 거리들, 불완전한 주소들을 더듬어 간다.
"이 거리는 알을 깨고 나오기만 기다리는 한 편의 시다."
거리를 걸으며 그 거리를 한 편의 시로 깨어놓거나, 일곱 시에 일어나 여덟 시에 카페 드 플로르에서 아침을 먹으며 열 시까지 책을 읽는 일상조차 한 편의 시가 된다. 여행지에서의 모든 순간을 영감과 감탄과 상상력으로 채운다. 심지어 이동하는 기차 안에서 그 영감을 바탕으로 단편 소설을 휘리릭 쓰기도 한다. 작가의 눈에 비친 세상은 모든 게 영감이자 상상력을 자극하는 뮤즈들이다.
"처음 이 길을 보고 벅차게 설렌 마음을 주체 못 하고 끝에서 끝까지 단숨에 달려가서 허공으로 펄쩍 도약했다. 여동생이 사진을 찍어주었고 그 사진 속에 기쁨 충만한 공중에 영원히 동결된 내 모습이 있다. 분출하던 아드레날린, 강렬한 의지와 다시 접속한다는 사실 그 자체로 작은 기적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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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플소프가 찍은 패티 스미스의 사진을 보았을 때, 내 마음이 딱 그랬다. 콩닥콩닥 펄쩍펄쩍 뛰었던 심장. 그 심장의 기억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아드레날린이 넘쳤던 젊은 시절의 패티도 좋고, 나이가 들어가며 점점 더 깊어지고 넓어지는 패티 스미스의 모습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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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티 스미스가 읊조리는 만트라도 어찌나 멋진지.
"시몬과 파트리크. 파트리크와 시몬"
파트리크 모디아노는 불안하고도 차분한 마음 상태를 가져다주고, 시몬 베유는 위험스러우리만큼 친숙한 아드레날린으로 채워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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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만트라가 멋져서 나도 따라 읊어본다.
"패티 스미스 패티 스미스"
그렇게 따라 하다 보면 그녀의 영감과 열정과 글에 대한 헌신이 전달되기라고 할 듯.
패티 스미스는 파리로 강연 여행을 떠나기 전, 이번 여행을 함께 할 책부터 골랐다.
"책 없이 비행기를 탄다는 생각만 해도 파도처럼 공황이 덮쳐온다."
패티가 고른 책은 프란시스 뒤 플레식스 그레이가 쓴 시몬 베유에 대한 논문과 파트리크 모디아노의 <혈통>이다.
이 두 책과 여행지에서 보았던 피겨 스케이트 챔피언십 대회, 파리의 거리들, 그 거리를 채운 예술가들의 흔적은 새 책을 쓰는 힘이 된다.
패티 스미스처럼 여행하는 방식을 좋아한다.
여행에 앞서 책을 고르고, 여행지에서 그 거리를 걸었던 예술가들의 흔적을 찾거나, 지도 없이 거리 곳곳에서 영감을 일으킬 심상을 찾아 헤맨다. 어떤 예기치 못한 질량을 가진 영감이 떠오르길. 여행지에서의 순간순간이 내 말과 언어, 상상력으로 새로운 공간으로 기억되고 기록되길 바라는 바람을 가진다. 하지만 난 패티 스미스가 아니니깐. 그저, 내가 보았던 거리거리들, 책과 영화들 속에서 좋은 글을 길어 올려 인용하고 참조할 말들을 찾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여행이다.
패티 스미스에게 글은 몰입 또는 헌신으로 번역되는 devotion에 대한 역자의 해설처럼 '종교적 몰입'을 의미하기도 하며, '가장 숭고한 형태의 예배 의식"이기도 하다. 순수한 몰입과 헌신, 기도하고 묵상하는 시간이 응축된 것이다.
<헌신>이라는 단편소설에서 주인공이 스케이팅에 헌신하는 모습에서 대변되듯, 패티 스미스에게 글은 "놀라움을 선사하는 것, 열렬히 바라는 것'이다.
"그저 살기만 할 수가 없어서" 쓴다고 하지만, 살아가기 위해 절박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는 것처럼, 글을 쓰는 것이 곧 자신을 살게 하고 살아있게 하는 삶의 이유이자 사명, 온몸을 다해 바치는 절실한 의식, 신성불가침의 집인 셈이다.
"우리는 글을 써야만 한다. 고집 센 송아지를 길들이듯 헤아릴 수 없는 투쟁에 참여하기 위하여, 우리는 글을 써야만 한다. 부단한 노력과 정량의 희생 없이는 안된다. 펄떡이는 심장으로 살아 있는 독자라는 종족을 위하여 미래를 끌어오고 유년기를 다시 찾아가고 날뛰는 상상력의 어리석음과 공포에 고삐를 늦춰선 안 된다."
+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시몬 베유와 파트리크 모디아노의 책을 찾게 된다. 책과 책이 서로를 연결하고 끝없이 확장된다.
+ 패티 스미스처럼 파리의 거리를 걷고 싶어서 당장 몸이 근질근질. 이 책에 삽입된 단편 소설보다 글쓰기에 대한 작가의 생각보다 파리에 대한 단상이 더 인상적이었다. 패티 스미스의 여행책은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