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김산하의 야생학교>, 김산하

하루에 한 권!(21일 프로젝트)

by 차티 Chati

2019.09.1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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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저래 채식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났지만, 한국에 와서는 간혹 생선을 먹고 고기 육수로 낸 국과 냉면, 우유와 버터가 들어간 빵과 치즈가 들어간 피자를 먹는다. 때론 여럿이 모이는 자리에서 어쩔 수 없이 같이 먹고, 드물게 스스로 찾아서 먹기도 한다.

주변의 지인들은 나의 변화가 어색한지, 힘이 없어 보일 때면 고기를 먹지 않아서 그렇다고 한 마디씩 거든다. 그럴 때마다 공장식 축산업의 문제나 환경 문제를 거론하며 자연과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시기에 채식은 정말 중요한 실천이라고 정색하며 말하진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먹이를 선택한 것이고 나는 나의 먹이를 고집하면 되는 일이다. 날 선 논쟁이 싫어서 말을 아끼지만 이마저도 그리 편하지는 않다. 그저 언젠가는 나와 함께 생각하고 먹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특히, 우리 아버지는 낚시광이다. 아버지는 단체 카톡방에 자신이 낚은 물고기를 한가득 보여주시거나 먹어보라며 꼼꼼히 포장해서 집으로 보내주시기도 한다. 이럴 때마다 난감하다. 부디 제발 아버지가 낚시를 줄이기를 기도해보지만, 아버지의 취미를 바꿀 재간은 없다.


하지만 자주자주 물고기들에게 미안하다. "이토록 오묘하고 멋진 생명인데도 그저 초장에 찍어먹을 재료 정도로만 치부되는 어류의 사회적 문화적 지위"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또 떠오르는 풍경.

이번 추석에 바닷가 해변을 잠시 거닐었다. 그곳은 회센터가 곳곳에 있고 바닷가 앞의 가게는 거의 빼곡하게 횟집이었다. 뿐만 아니다. 해변 곳곳에 가족끼리 친구들끼리 둘러앉아 회를 먹고 있다. 그날은 보름달이 휘청, 만월이 크게 뜬 날이었다. 보름달을 보며 시 한 수 지을 풍류는 없을지라도, 뭔가 회만 먹고 있는 모습은 괴이했다.


또 떠오르는 풍경.

지난여름, 더위를 피해 간 계곡.

발이 시릴 정도로 물이 깨끗하고 시원한 계곡에서 우리는 먹고 자고 책을 읽으며 한여름의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하지만 계곡에 놓인 평상에 하나둘 사람들이 모이고, 시끌벅적 냉장고에 든 음식을 통째로 다 가져온 듯 먹자판을 벌였다. 심지어 야채와 조리도구를 계곡물에 씻거나 비눗물로 몸을 씻는 이도 있었고, 수상한 냄새가 나서 눈길을 두니 개고기를 삶고 있어 기함하기도 했다.


어째서 우리의 풍류, 재미와 놀이는 이럴까.

"어째서 우리가 재미를 느끼는 방식은 이토록 파괴적이어야 하는가? 꼭 자연을 취하고 득하고 내 것으로 삼아야만 쾌감이 느껴지나? 점잖게 관조하고 음미하며 자연의 안녕을 확인하는 것은 그리도 지루한가?"


먹기에 대한 이 열기는 무서울 정도다.


김산하의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나의 먹거리와 내 주변의 자연과 동식물들을 생각한다. 손쉽게 자연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자연 가까이 있기 위해, 숲 근처에 높은 아파트를 짓고 자연을 내다보기 위해 점점 아파트 높이만 높아진다. 나의 편의와 쾌적함을 위해 자연을 논하지만, 정작 뭇생명들과 자연에 대한 배려와 생태감수성은 낮다. 기후 변화와 생태계 파괴의 규모를 보면 이것은 자연 재해가 아닌 인간재해에 가깝다. 인간이 자신의 종의 생존을 위해 지구의 다른 생명을 이렇게 착취하고 파괴해도 되는 것인가. 저자의 말처럼 이제 멈춰야 한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된다. 지나친 더위와 폭우, 추위, 미세먼지 등 이제 환경 문제는 인간의 생존마저 위협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생명의 가치를 인간에게만 협소하게 적용시킨다.


야생의 자연은 다양한 종이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공존하는 곳이다.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자연의 마음을 넘겨짚고 자연을 인간의 편협한 시선으로 재단하고 파괴한다.


이 책은 특별히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내용을 풀어낸 것도 아니다.

하지만 '다른 생명과 사는 법'과 생태적 감수성을 회복하는 일을 시작하는 이들에게는 친절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 같다.


특히, 이 말은 격려가 되었다.


일관되게 반환경적인 사람보다는 비일관되게 친환경적인 사람이 낫다.


조금씩 작은 것부터 시작해보는 것. 비록 완벽하지 않고 일관되지 않더라도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고 뭇 생명들을 존중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 여기서부터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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