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로운 삶

헬렌 니어링, 스코트 니어링 씀, 류시화 옮김, 보리, 2000

by 차티 Chati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

평일에는 4시간 먹고살기 위한 노동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책을 읽고 사람들과 시간을 보낸다.
주말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계획 없이 하루를 보내고, 한 해 살림은 6개월 일해서 장만하고 나머지 시간은 여행을 가거나 쉬거나 저술 활동을 하거나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한다.


2000년 그때 그 책. 그때 붙여두었던 메모지가 그대로 있다.
손 때 묻은 책

첫 장을 들춰보니 2000년 5월 28일 동기가 선물로 준 책이었다. 벌써 16년 전. 그때보다 지금 더 절실한 삶의 지혜로 다가온다.


"사회가 붕괴로 치달아 해체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때에, 올바른 사회 체계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눈 시간과 힘을 얻을 곳은 어디인가?"


이 화두가 요즘처럼 절박할 때가 있을까.




2000년 5월 어느 날

2000년 이 책이 한국에서 첫 출간되었을 때, 나는 서울 북쪽에 위치한 어느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때 내 또래 친구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힘든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나는 취직할 마음도 없었고 공부할 궁리만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고작 이십 대 중반일 뿐인데, 나 같이 사는 이들은 철없는 무능아로 여겨지기 십상이었다. 아직 돈 없이도 살 패기(아니, 패기라기보다 돈에 관심이 없고 가난이 두렵지 않았던 때)가 있었던 그때의 어린 나는 가난해도 궁하다 여기지 않았고 돈을 벌기 위해 취직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어영부영 취직 대신 학자금 대출 제도를 잘 활용하여 또다시 학교 문을 두드렸고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행복했냐고? 그렇지만도 않았다. 사람 구실 못한다는 부모의 성화가 명치끝에 걸려 답답했던 시절. 많이도 울었다. 삼촌 내외 집에 지낸 탓에 눈치 살이만 늘어갔고 돈보다 마음의 지지가 간절히 필요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능 넘치는 학교 친구들에 기죽어 자신감은 바닥나고 무기력한 기분에 한탄만 늘 때였다. 그해 나는 그래도 용돈이라도 벌어보자 싶어 학교 신문사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한 달 활동비로 15만 원쯤 나왔던 것 같다. 그때 기준으로 그 돈도 내게는 컸다. 차비조차 없어 동동거리는 날이 많았던 때니.

지금 보면 나는 기자가 될 준비조차 없었다. 그저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동경만 품었다. 글쓰기 연습조차 없이 신문사 기자 생활을 했다. 신문이 한 달에 한 번 발행되고 규모도 작아 어찌어찌 넘치는 체력으로 밤을 새우며 가끔 기사를 썼다. 구구절절 그때 그 시절 얘기를 꺼낸 건, 오늘 얘기할 니어링 부부의 책 <조화로운 삶> 때문이다. 최근 계속 귀농과 자발적 삶에 대한 고민을 자주 하는데 새롭게 출간된 책만 몇 권 읽다 서가에 꽂힌 <조화로운 삶>을 다시 들춰보았다. 누렇게 바랜 오래된 책에서는 오래된 책향이 배어 나왔다. 살짝 앞장을 여니 놀랍게도 이 책은 그때 나를 기자로 인도했던 우리 과 동기가 나에게 선물로 준 책이었다.

이 책을 동기에게 선물 받았다는 사실을 지금까지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책 앞장에 동기가 이 책을 건네며 남긴 짧은 글이 쓰여있었다.

"000님에게 드립니다. 당신의 따스한 손길에 감사하며 늘 좋은 일이 함께 하기를... 푸하하하! 아이고 닭살이야. 하여튼 마지막 신문 마무리 잘하자! 다음 학기 달라진 문사부를 기대하며. 2000년 5월 28일 새벽에 000" 아, 이렇게 책에 글을 남기는 것도 좋구나. 훗날 읽게 되니. 시간 지나 보니 재미나다. 옛날 생각도 나고. 오래간만에 들어보는 "문사부"라니. 신문사 문화사회부의 줄임말이라는 걸 뒤늦게 기억해냈다. 아마 1학기 마지막 신문을 만드는 밤, 이 선물을 받았나 보다. 반갑다. 이런 식으로 이 책과 그때의 동기의 마음을 볼 수 있어서. 그래서 당장 책의 글귀를 찍어 보냈다. 16년 전이라, 벌써 아득하지?


1932년 세계 대공황, 파국에서 희망을 찾아

그렇게 다시 읽기 시작한 <조화로운 삶>. 최근에 나오는 이런 류의 귀농과 자발적 삶과 관련된 책들의 뿌리이자 사상적 토대가 아닐까 싶다. 최근 마을 만들기 운동, 반농반x, 자발적 가난 등은 <조화로운 삶>에서도 반복된다. 이 책은 쓰인 것이 1930년대인데 2010년대에 유독 이러한 대안적 삶의 형태와 관련된 논의와 실천이 많은 것도 어떤 역사적 유사성이 있지 않나 싶다. 세계가 파국으로 흐를수록, 파국에 저항하는 힘은 더욱 강해진다. 저항의 방법은 다양할 것이다. 니어링 부부처럼 스스로 자발적으로 자본주의에 저항할 조화롭고 소박한 삶의 일상을 되찾는 것도 그 방법이지 싶다.

이 책은 "시골로 가니 희망이 있었다"는 머리말로 시작한다.

이 책은 다른 삶도 가능하다는 희망의 기록, 가능성의 기록이다. 이들이 버몬트로 이사한 것은 대공황이 최악으로 치닫던 1932년. 뉴욕에서 살던 니어링 부부는 1910년부터 계속되던 세계 경제 불황과 함께 세계 대전, 러시아 혁명 등의 여파로 직장과 생계 수단을 잃자 도시 생활을 결별하고 시골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이들이 시골로 이주한 이후에도 세계는 점점 더 나빠졌다. 파시즘이 세계를 뒤덮었고 장기적인 경제 불황이 이어졌으며 이를 타개할 목적으로 인류를 더더욱 최악의 상황으로 내몬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다행히 니어링 부부는 이러한 세계의 급변에도 자신들의 삶을 지킬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땅에 기대어 소비를 멀리하는 자립자족적 삶을 일구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목표는 아니 "모험은 그저 땅에 뿌리를 내리고 단순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것이었다. 자연 속에서 서로 돕고 기대며, 자유로운 시간을 실컷 누리면서 저마다 좋은 것을 생산하고 창조하는 삶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이들이 자신의 나라를 떠나는 대신, 자본주의가 소용돌이치는 미국 속에서 대안적인 삶을 찾아간다.

"우리는 삶으로부터 도피해 어딘가로 멀찌감치 달아나기를 꿈꾸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와 정반대로 삶에 더 열중할 수 있고, 삶에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찾으려 하고 있었다. 우리는 의무를 피해 달아나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가치 있는 의무를 찾고 있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남을 돕고, 삶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들고, 세상을 다시 설계하는 것은 고르고 말고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우리는 그것을 마땅히 지켜야 할, 사회와 맺은 약속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 가서는 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나 역시 이들 부부처럼 남을 돕고, 삶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 자신을 소모시키고, 소비에 길들여지고, 관계에 지치는 삶이 아니라. 좋은 벗을 사귀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자유로운 시간을 누리며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이고 싶다. 남은 생은 '조화로운 삶'이고 싶다.


시골살이는 그냥저냥 대충대충 살아지는 낭만적인 전원생활이 아니라고.

이들 부부는 자신들이 살 땅을 선택한 이야기, 그곳에 집을 짓는 과정, 농사짓는 과정, 자립할 기반을 마련하는 과정, 자신의 땅에서 나는 음식을 먹는 법 등을 자세히 써놓는다. 이걸 읽다 보면, 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자유로운 시간을 누리기 위해 얼마나 준비를 많이 하고, 노력을 많이 했는지 엿볼 수 있다. 그저 전원의 낭만적인 시간만을 생각하면 곤란하다. 이들은 아침부터 오늘의 할 일을 정확히 계획했으며, 농사를 지을 때는 일지를 빼먹지 않고 상세히 기록했다. 그래야, 땅을 이해하고 다음의 농사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렇게 꼼꼼하게 따져가며 자신들에게 맞는 농사법과 자신의 땅을 이해하는 데 몇 년을 보냈다. 그저 가만히 커피나 마시며 전원 풍경을 구경하며 노는 것은 돈이 든다. 이렇게 쉬는 건 호텔 놀이, 리조트 놀이랑 뭐가 다른가. 자본주의적 삶 속에서 가능한 삶일 것이다.

니어링 부부는 자신의 삶을 실험하고, 자신의 이상에 맞는 최적의 삶의 방식을 찾기 위해 책도 엄청 읽는다. 책에 대한 인용도 많은데 그중 헉슬리의 이야기는 니어링 부부의 삶을 요약해주는 말인 듯하다.

"사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되는 대로 그냥저냥 살아가는 것, 아니면 인생에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더 나은 길을 찾아 성실히 사는 것이다. 더 나은 것을 이루며 살겠다는 생각은 자기 자신의 삶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 더 나아가 인류의 미래까지 더 나아지게 만든다."
헉슬리, 생물학자의 생각, 1923


이 부부, 독하다. 이 부부, 꼼꼼하다. 이 부부, 성실하다. 이 부부, 검소하다. 그래야 하는구나.
그래야 평일 4시간의 노동 이후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며, 주말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일 년에 6개월은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우린 자주 이걸 잊는다.


니어링 부부는 더 나은 것을 이루기 위해 1년의 계획, 미래의 계획까지 꼼꼼하게 챙긴다. 그저 되는 대로 그냥저냥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런 성실함과 엄격함이 비로소 자유로운 시간을 가능케 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처음에 돈을 아주 조금만 준비해도 되고, 그 뒤로는 적은 돈으로 잘 꾸려 갈 수 있는 독립된 경제라고 생각했다. 노동 시간을 반으로 줄이고, 대신 조화로운 삶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나머지 절반의 시간에는 연구를 하거나 책 읽기, 글 쓰기, 대화를 할 수 있으니까. 이런 계획을 실천하는 데는 대도시나 미국을 벗어난 어떤 곳보다 버몬트 골짜기가 어울렸다. 그리고 실제로도 우리가 도시에 살았다면 먹고살기 위해 노동을 하며 다 써 버렸을 시간과 힘을 보존할 수 있었다... 우리는 자존심을 지키며 평온하고 단순한 삶, 마음에 그리고 있던 삶을 살았다."

이들이 도시를 떠날 때 세 가지 목표는,
1. 독립된 경제를 꾸리는 것
2. 건강
3. 사회를 생각하며 바르게 사는 것

이렇게 스무 해를 경험하며 쓴 책에서 이들은 자신들의 목표를 거의 이룬 셈이다. 특히 눈길이 가는 건, 해마다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시간을 여섯 달로 줄이고 나머지 여섯 달은 여가 시간으로 정했단다. 여가는 연구, 여행, 글쓰기, 대화, 가르치기들로 보냈단다.

과연 이게 가능하냐고?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냐만, 이들이 자신들의 삶을 조화롭게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책을 가만가만 훑어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이들처럼 아침에 일어나 매일 자립을 위한 노동을 꾸준히 하고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자신만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그리 녹녹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 앞에 새로운 삶을 살아낸 이가 상세하게 자신들의 지침을 보여주는 책을 써주어 얼마나 다행인가. 이게 곧 이들이 이야기하는 사회에의 기여가 아닌가 싶다. 내 삶을 바로 살아내는 것.

겁먹고 있는 나를 어찌 알았는지, 본문 첫 장의 이야기는 도시인들의 불안에 대한 사려 깊은 충고로 채워졌다.

"땅을 일궈서 먹고 입고 자는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을까? 힘든 농사일을 몸이 감당할 수 있을까?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나이를 먹은 게 아닐까?.. 시골 일은 내 허리를 휘게 만드는 또 다른 중노동이 되지 않을까?"

이런 몇백 가지 의문에 대해 단호히 얼마든지 가능하기에 이 책을 썼노라 답한다.

또한 요즘 같이 한국이 어수선할 때, 모두들 입만 열면 이민을 말한다. 나 역시도. 헬조선! 니어링 부부도 망명을 진지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의 결론은 삶으로부터 도피해 어딘가로 멀찌감치 달아나는 대신 삶에 더 열중할 수 있고 삶에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찾기로. 그리고 머리를 맞대며 삶의 기본 가치와 시골 생활의 목표를 정했다.

<삶의 기본 가치>
단순한 생활
긴장과 불안에서 벗어남
무엇이든지 쓸모 있는 일을 할 기회
그리고 조화롭게 살아갈 기회

구체적인 삶의 원칙들은 엄격하다. 구어거스 <뉴잉글랜드 농부>의 책을 인용하며 "농부는 여러 가지 조건상 철저하게 절약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이나 가릴 것 없이 낭비를 막으려고 노력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

평일이면 아침 먹을 때 그날의 날씨를 살펴보고 어떻게 보낼지 계획을 짠다. 예를 들면 아침 시간에 먹고살기 위한 노동을 하기로 했다면, 오후는 저절로 자유 시간이 되었다. 자유 시간에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햇살을 즐기고, 숲 속을 산책하고 음악을 연주하고 시내 나들이를 갈 수 있었다.

네 시간의 일을 하고 네 시간을 여유를 마련할 것. 그럼에도 이들은 일을 할 때 절대로 서두르지 않았다.

"먹고살기 위한 노동을 할 때는 비지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결코 죽기 살기로 일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더 많이 일했다고 기뻐하지도 않았다. 가끔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사람에게 노동은 뜻있는 행위이며, 마음에서 우러나서 하는 것이고 무엇을 건설하는 것이고, 따라서 매우 기쁨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먹고살기 위한 네 시간의 노동만큼 나머지 네 시간의 자유 시간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이는 일을 잘 하려면 가끔씩 자유로운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몹시 긴장된 사람에게는 일보다 자유로운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교훈을 배우게 되었다."

그이들의 목적은 반년만 일해서 한 해의 살림을 장만하는 것이며, 평일에는 노동과 자유 시간을 병행하고 일요일이 되면 평소와 달리 먹고살기 위한 아무 노동도 하지 않고 아무 계획도 없이 하루를 보냈으며, 그럴 만한 까닭이 있으면 언제든지 평일과 주말의 일과를 벗어나곤 했다. 그럼에도 이들의 계획에 따라 짜임새 사는 모습은 이웃들에게 놀라운 일이었다. 니어링 부부가 바른 규칙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일하는 목적과 이루고자 하는 분명한 목표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나 역시 새로운 삶의 가치와 일하는 목적, 목표를 찾아가는 중이라 2000년에 읽었던 느낌과 너무 다르다. 이들이 버몬트에 정착 과정이 더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국가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그럼에도 제대로 살아내기 위해, 새로운 것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더더욱 환경 문제와 국내외 정세가 흉흉할 때, 우리는 좀 더 땅을 믿고 자연에 의지해 스스로의 삶을 묵묵히 살아갈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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