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년간 다닌 병원의 수가 지난 50년간 다녔던 병원 수를 훌쩍 넘어설 정도로 굉장히 아팠다. 내 몸이 무너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당시 의사들이 내게 해준 것은 통증을 완화시키는 진통제를 주거나 염증을 제거해주는 약뿐이었다. 약을 먹으면 잠시 괜찮다가 다른 곳이 아프고, 또 다른 곳이 아팠다. 끝없이 이어지는 고통의 행렬에 어딘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의사들에게 그간 다녀온 병원을 열거하며 지금의 병과 연관관계를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내 전문 분야가 아니다’라는 말 뿐이었다.
답답했다. 원인모를 이 질병의 향연을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두려웠다. 그러다 문득 짧은 질문이 스쳐지나갔다. 내 몸의 주체는 나인데, 난 왜 아플 때마다 내 몸을 처음 본 의사들에게 묻는 걸까? 한번 수면 위로 오른 질문들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들이 갖고 있는 전문적인 지식은 내 몸을 치료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 걸까? 그럼 나도 전문적인 지식을 배우면 나를 치료할 수 있는 걸까? 나는 내 몸을 얼마나 알고 있지?
물론 학교에서 인체에 대해 배웠다. 입에서부터 시작해 식도와 위, 소장, 대장을 지나는 소화기관과 신장과 방광 등의 배설기관 등 몸을 이루고 있는 장기에 대해서는 아직도 외우고 있다. 하지만 그건 시험을 잘 보기 위해 외운 것이었지 내 몸을 온전히 알고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 몸을 공부하기로. 관련 책을 찾아 읽고, 영상을 찾아보고, 기록을 남기면서 알게 되었다. 나를 아프게 한 것은 나의 무지와 무관심이었다는 사실을. 지난 20년간 세상 모든 이치를 다 아는 것처럼 떠들며 글을 써왔지만 정작 나 자신에 대해서는 몰랐던 것이다. 앞으로 풀어낼 이 이야기는 병을 치유하면서 발견한 내 몸에 대한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기록이 될 것이다.
나는 1974년생으로, 한국 나이로 쉰둘이다. 어린 시절 내 뒤에는 늘 이런 말이 따라다녔다. ‘쯧쯧쯧. 여자들이란.’ 다행히 나는 공부를 잘해서 ‘쯧쯧쯧. 여자들이란.’ 소리를 덜 듣고 자랐지만, 오빠와 나의 밥상이 왜 달랐는지, 오빠는 늘 새 옷을 입는데 나는 왜 늘 누군가가 입었던 낡은 옷을 물려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일찍부터 알았다. 내가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난 언젠가부터 ‘쯧쯧쯧 여자들이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늘 남자들과 경쟁을 했다. 남자애들이 서서 오줌을 누면 나도 서서 오줌을 눴다. 바지에 오줌이 젖어 엄마에게 등짝을 맞곤 했지만 나는 남자들과 똑같은 행동을 하면 남자와 같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첫 생리를 하던 날, 나는 결코 남자가 될 수 없음을 알았다. 게다가 매달 찾아오는 생리통으로 온 방 안을 구르며 몸부림쳤고, 학교를 가다 쓰러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남자들과의 경쟁은 애초에 불가능한 싸움 같았다. 내게 여자의 삶은 차별이자 고통이었기에, 나는 나의 여성성에 대해서도, 여자인 내 몸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다. 아니 애써 외면했다.
쉰 살이 되어 여기저기 아파도 나는 ‘내가 여자라서 더 아프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심지어 의사도 내가 여자라서 더 아프다고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간혹 40~50대 여성들이 이 질병을 앓는 퍼센티지가 30%가 된다고 설명을 들었지만, 남성들도 걸릴 수 있다는 말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다 산부인과에 가서 갱년기 진단을 받고서야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내가 여자라서 더 아팠던 것이고, 내가 여성으로서 내 몸을 외면한 결과 병을 더 키운 것이다. 결국 나의 피해의식이 내 몸을 더 깊은 어둠으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왼쪽 팔도 올라가지 않고, 다리도 붓고, 가만히 숨만 쉬어도 화가 나고, 잠을 못 자고, 행여 간신히 잠이 들면 무호흡으로 죽을 뻔했다. 내가 나의 화려한 질병 퍼레이드를 펼치자 가만히 듣고 있던 지인이 조용히 한마디 했다. 산부인과에 가보라고. 순간 어리둥절했다. 갑자기? 왜 산부인과를 가라는 거지? 그러다 체념했다. 역시 아무도 날 이해하지 못 해,라고.
그러다 사흘 밤을 꼬박 새우고 쓰러지기 직전이 되어서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산부인과에 찾았다. 정신도 없었지만 큰 기대 없이 내 증상을 늘어놓았다.
“힘드셨죠?”
의사의 말 한마디에 눈물이 떨어졌다. 내 고통에 대해 유일하게 공감해주고 끝까지 내 이야기를 다 들어준 유일한 분이었다.
“갱년기 증상인 것 같은데, 일단 피검사 하고, 결과 나오면 그때 더 이야기하죠.”
그날 처음 알았다. 갱년기는 사춘기처럼 질풍노도의 단순한 시기를 나타내는 게 아니라 질병 코드가 있는 질병이라는 것을. 따라서 의사의 처방에 따라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일주일 후 갱년기라고 확진을 받았고 호르몬제를 처방 받았다. 처방 받은 호르몬제를 먹자 나를 괴롭히던 모든 통증이 사라졌다. 정말이지 거짓말처럼 모든 통증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호르몬제는 나에게 기적의 약과 같았다. 그리고 기적을 접한 후 난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 아니라 호르몬의 노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동안은 행복했다. 전보다 몸이 가벼워지고 활기가 넘쳤다. 다시 젊어진 듯 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면서 새로운 통증이 찾아왔다. 산부인과를 다시 방문했더니 호르몬 부작용이라고 했다. 약을 끊자니 지옥 같았고, 계속 먹자니 부작용이 두려웠다. 나에게 맞는 호르몬을 찾기 위해 다시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갱년기는 단순히 내 몸을 안다고 해결되는 병이 아니었다. 여성으로서의 내 몸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하며, 더 나아가서는 호르몬이 내 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알아야 했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통증의 원인을 조금씩 찾아냈고, 나 자신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해 끝에서 비로소, 나는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나를 괴롭히던 ‘쯧쯧쯧, 여자들이란’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이후 병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병은 피해야 할 공포가 아니라 나를 알 수 있는 기회이며, 여성으로서의 나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이며, 내 몸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기회였다. 다행히도 난 쉰 살에 그 기회를 잡았다. 그리고 이제 그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